거대 국민연금기금, 어떻게 햐야 하나?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오건호
국민연금을 연구하면서 가장 곤혹스러운 질문이 국민연금기금에 관한 것이다. 거대한 규모로 이렇게 기금이 커가는 데, 대안은 무엇이냐는 ‘비판성’ 물음에 홀가분한 답을 못주어 왔다. 이 질문은 진보운동 내부에서도, 연금가입자단체들이 모이는 ‘연금연대회의’에서도 제기되고, 토론과정에서 만나는 정부 관료나 연구기관들도 묻는다.
2008년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기금 예상 적립액은 240조원으로 국가재정 256조원에 맘먹는 수준이다. 이후 국민연금기금은 계속 성장해 2043년에 2,465조원(2005년 불변가격 1,056조원)으로 증가한다. GDP 대비 최대가 되는 시점인 2035년에는 기금이 GDP의 52%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국민연금기금은 이명박정부, 일반 가입자, 진보진영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중대한 의제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래서 제목을 거창하게 붙였다. 이제부터라도 진보진영에서 진지한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했다. 하지만 아직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충분하지 못했기에 글의 내용은 시론적이다. 생산적 토론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1. 국민연금기금 주식투자 손실을 보며, ‘반대’에서 ‘대안’으로
국민연금기금의 주식투자가 논란이 되고 있다. 올해 9월까지 주식에서 입은 손실만 10조 2천억원이다. 10월 이후 코스피 지수가 전반적으로 하강 경향을 보이고 있어 연말에 이르면 주식부문 손실액은 더 커질 것이다. 이에 국민연금기금의 주식투자 확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국민연금기금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채권부문에 투자되어 온 편이다. 올해 8월 채권에 투자된 기금만 181조원에 달한다. 지금은 국민연금기금이 그나마 채권시장에서 운용 가능하지만, 향후 국민연금기금의 성장 속도가 채권시장에 비해 빠를 것이기에 채권 외 다양한 시장이 발굴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까지 정부가 취해 온 입장은 주식시장, 해외시장, 대체시장 등에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여러 차례 중장기투자전략 연구를 수행하였고, 실제 기금운용도 이러한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 시장들은 국내 채권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수익이 예상되지만 고위험이 수반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가입자들은 고위험 기금운용전략에 맞서 무엇을 말해야 할까? 지금까지 가입자단체나 진보진영은 ‘주식투자 반대’라는 네가티브 입장에 머물거나, 기금 규모가 너무 크다는 원론적 비판을 되풀이하는 수준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대안 없이 반대를 외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때마침 기금운용체계 개편 논의까지 겹쳐 있어 이번 기회에 대안운용전략을 공론화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과연 가입자단체나 진보진영은 기금운용에 대한 대안전략을 제출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그 내용은 무엇인가?
진보진영의 ‘국민연금기금 새판 짜기’를 논의하기 위해 다음 두 가지 질문을 살펴보겠다. 첫째, “국민연금기금의 거대화를 어느 수준까지 용인가능한가?, 지금이라도 기금을 줄여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국민연금기금이 거대화되면서 초래될 수 있는 부작용(금융세계화 수단화, 장래 현금화 위험 melting-down 등)을 주시하지만, 당분간 국민연금기금과 '동거'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사람들이 국민연금기금에서 벗어나려는 심정은 이해되나 지금 필요한 것은 '이별'이 아니라 '사회연대적 동거'이다. 둘째, “국민연금기금의 대안운용전략은 무엇인가?, 마냥 주식투자 반대만을 외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사회연대적 동거에 기반한 대안운용전략의 사례로 사회책임투자와 사회기반시설 투자를 제안하고자 한다. 모두 논란의 소지가 큰 내용인 걸 알지만, 대안논의는 이렇게 시작될 수밖에 없다.
2. 국민연금기금 거대화에 대한 판단
거대 규모로 성장하고 있는 국민연금기금에 어떠한 입장을 가질 것인가? 기금을 없애버린다면 굳이 대안운용전략을 따져볼 필요조차 없는 것 아닌가라는 지적도 있다. 워낙 국민연금기금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큰 탓에 여러 경우의 수를 살펴보고자 한다. 세 가지 길이 있다.
1) 국민연금 탈퇴?
첫 번째 길은 국민연금기금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그렇지 않아도 못 마땅했는데 이번 주식 손실을 계기로 국민연금을 떠나버리는 것이다. 솔깃할 수 있는 제안이지만, 위험성으로 보면 현행보다 더 심각한 방안이다. 현재 노후를 두고 사적연금과 국민연금이 사실상 경쟁관계에 있다. 그래서 국민연금의 탈퇴는 곧 사적연금으로의 편입을 의미한다. 모두 노후를 불안해하기에 공적연금이 약해지는 만큼 사적연금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
가입자들이 국민연금을 떠나고자 하는 데에는 국민연금기금의 불안정, 보험료 산정의 형평성 문제 등 이유 있는 근거도 있지만, 잘못 알려지 오해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보통 국민연금이 용돈연금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적연금에 비한다면 국민연금은 가입자에게 매우 유리한 제도이다. 사적연금은 가입자가 낸 보험료의 0.8배만을 돌려주지만 국민연금은 1.8배를 지급한다(사용자가 절반의 보험료를 책임지는 직장가입자의 경우는 본인 부담 대비 3.6배). 또한 사적연금에 쌓인 기금은 보험회사가 마음대로 투자하고 만의 하나 회사가 파산할 경우 가입자도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그래도 국민연금기금은 가입자들이 '주식투자를 비판'할 수도 있고, 기금운용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지니고 있으며, 혹 연금재정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국가라는 최후의 보증인을 가지고 있다. 국민연금에 분통을 터뜨리더라도 공적연금을 버리고 민간연금으로 가는 길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2) 국민연금 재정의 부과방식 전환?
두 번째 길은 국민연금제도 안에 남지만 기금을 쌓지 않는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는 길이다. 부과방식은 그 해 연금수급자에 필요한 돈을 그 해 가입자의 보험료나 국가재정으로 충당하는 제도다. 연금공단에 보험료를 적립할 필요도 없고 골치 아픈 기금 운용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부과방식 전환은 일부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주장인데, 기금이 없어 속 시원한 것 같지만 이것 역시 위험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부과방식 연금제도가 운영되기 위해선 공적연금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존재해야 한다. 서구 연금처럼 적립금이 없더라도 앞으로 연금이 지급될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선 국민연금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강하다. 그 중에서도 기금고갈론이 강력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스로 '기금 소진'을 주창하는 것은 연금 불신을 가중시키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첫 번째 길과 유사하게 '사적연금'을 위한 잔치로 귀결될 개연성이 매우 높다. 기금 소진 혹은 축소를 다루기 위해선 다음의 조건들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 첫째, 가입자들이 연금제도와 이를 보증하는 국가에 대해 신뢰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연금 효과를 체험하는 수급자가 많이 생기고, 국가재정 규모가 확대되는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
둘째, 미래 연금급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보험료를 부담하고 있는 현세대 가입자부터 연금 재정 책임이 확대돼야 한다. 사회보장세(혹은 노후연금세) 신설도 검토가능한 제도다. 이 재정은 조세방식으로 마련되는 것이기에 국민연금기금의 규모를 늘리지 않으면서 기초노령연금의 급여를 확대하는 재원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점차 기초노령연금 비중을 늘리고 그만큼 국민연금을 줄여 나가야 한다. 국민연금 비중이 줄어들수록 미래 급여지출에 대비하는 국민연금기금 적립금의 규모도 줄어들고 기금 운용에 대한 부담을 작아질 수 있다. 이는 한국의 공적연금제도가 부분적립방식에서 점차 부과방식에 가까워지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현세대는 기초노령연금 확대를 위해 지금보다 더 연금재정을 부담하고, 후세대는 미래 재정부담을 상대적으로 경감받는 효과를 얻을 것이다.
넷째, 고령화가 초래하는 '세대 부양' 딜레마를 해소하는 설득력있는 비전이 제시돼야 한다. 현재의 인구 전망으론 2065년에 노인부양비(65세 이상 인구/18~64세 인구)가 무려 90%에 이른다. 출산율과 사망률이 쉽게 변화되는 것이 아니기에 근본적인 해소방안은 노인부양비 산정방식을 바꾸는 것일 수밖에 없다. 즉 노인의 경제활동인구 참가율을 올려(은퇴연령 연장) ‘노인’의 개념을 좁힌다면 그만큼 공적연금의 재정 부담은 경감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고령화는 인구학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노동시장의 문제이다.
3) 국민연금기금과 사회연대적 동거
세 번째 길은 국민연금과 함께 지내는 방법이다. 한국의 국민연금기금이 거대한 규모로 성장할 예정이고, 이에 따른 국민경제적 부담과 위험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앞으로 국민연금기금의 축소 방안이 진지하게 논의돼야 한다.
하지만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거대 국민연금기금을 줄이거나 소진시키기 위해선 여러 조건들이 다음어져야 한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기금의 부과방식 전환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과제라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 부과방식 전환을 주장하더라도 아주 ‘당분간' 거대 국민연금기금과 동거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부과식 전환과 국민연금기금 대안전략 마련이 서로 상충되는 논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연금기금과의 동거는 이명박정부가 추진하듯이 고위험 투자에 지배당하는 '위험한 동거', 탈퇴하지 못해 억지로 머물러야 하는 '고통스러운 동거'가 아니라, 미래 노후를 사회적으로 대비하는 '사회연대적 동거'이어야 한다. 사회연대적 동거란 공적연금(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을 통해 소득재분배 방식으로 노후를 대비하고, 이 과정에서 노후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연대적 동거는 다음 세가지를 의미할 수 있다. 첫째, 급여에 있어선, 사각지대 해소와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기초노령연금 급여율을 확대하고(2028년까지 15%, 지급대상 80% 노인), 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을 합산하여 기본 노후소득이 보장돼야 한다(약 50% 실질급여율 확보). 둘째, 재정 책임에 있어선, 상위계층 가입자들의 보험료 부담을 확대하고, 불안정노동자․영세자영자 등 저소득계층에게 보험료를 지원하여 이들이 연금제도로 포괄돼야 한다. 셋째, 기금운용에 있어선, 국민연금기금의 안정성과 공공성이 중시돼야 한다.
3. 국민연금기금의 대안운용전략 모색
이제 국민연금기금의 대안운용전략에 대해서 살펴보자. 자본주의체제 내부에 존재하는 기금(펀드)인 이상 국민연금기금 역시 자산운용시장의 동학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그렇다고 다른 민간펀드와 동일한 행보를 보일 수도 없는 것이 국민연금기금이다. ‘공적’이지만 ‘기금’이기에 딜레마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국민연금기금 운용 문제는 누가 어떠한 방향으로 국민연금기금을 주도해가느냐의 ‘정치적’ 문제이기도 한다.
진보적 입장에서 제안할 수 있는 기금운용전략은 무엇일까? 아직까지 전체 기금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전략 논의는 매우 미흡하다. 최근 주식손실 논란을 접하면서 가입자단체들이 논의를 막 시작하는 단계에 와 있다. 이후 논의활성화를 기대하며, 우선 ‘연못 속의 고래론’을 평가한 후, 새로운 대안운용처로 주식부문에선 급진적 사회책임투자, 공공부문에서 사회기반시설 투자의 가능성을 살펴보겠다.
1) ‘연못 속 고래론’의 과도 지배
현재 주식투자 확대를 주장하는 주요한 논거가 '연못 속 고래'론이다. 장래 국민연금기금의 규모가 너무 커 채권투자만으로 기금을 감당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나는 이 주장이 지닌 근거를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지나치게 절대화되어 다루어지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우선 국민연금기금이 거대하게 성장한다는 것은 미래의 전망일 뿐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연못 속의 고래가 무한정 커지는 것을 기정사실화할 필요는 없다. 지금 당장은 연금불신이 강해 가능하지 않지만, 연금수급자가 많이 배출되어 연금신뢰가 구축되는 시점에 기금 규모를 적정수준으로 조정하는 사회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
게다가 '연못 속의 고래'가 반드시 주식투자 확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2007년 기준 국민연금기금의 72%가 국내채권에 투자되고 있다. 이것이 국내 채권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8%다. 작지 않은 규모이지만 그렇다고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향후 국민연금제도 변황에 따라 기금 규모가 유동적이긴 하지만, 현 제도를 기준으로 보면, 앞으로 국민연금기금 규모가 성장하더라도 약 60%가 국내채권에 투자된다면 국내 채권시장 점유 비중을 1/4 이하 수준에서 관리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경우 기금의 나머지 40%를 해외채권, 국내주식, 해외주식 등 기존 자산군과 공공부문 중심의 새로운 대안 자산군으로 배분한다면 주식부문 투자액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2) 사회책임투자 활성화 및 급진화
국민연금기금의 일부가 국내주식시장에서 운용될 수는 있다. 이 때도 기금운용에는 안정성과 공공성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며, 기본 방식으로 사회책임투자(SRI)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회책임투자는 연기금의 안정적 운용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여 연기금의 공적 성격을 강화하려는 대안투자전략이다. 현재 친환경적 가치가 기업활동에 중요한 기준이 되었고, 고용안정에 부응하는 것도 국민경제에 중요하며, 소비자권리도 확장추세에 있다. 공적 연기금의 자산운용 원칙에 사회적, 환경적, 윤리적 요소를 고려하도록 명시하여 기금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재정법과 국민연금법에 국민연금기금의 사회책임투자 조항을 명시하고, 연금공단은 사회책임투자를 위한 조직인프라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
물론 일반적인 사회책임투자가 지니는 한계도 인정해야 한다. 사회책임투자가 상대적으로 금융자유화가 심화된 영미권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은 사회책임투자가 그만큼 탈규제된 금융시장의 부작용을 치유하는 보완책이지 금융시장의 구조적 성격까지 바꾸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해 준다. 이 글은 사회책임투자가 ‘연기금 사회화론’의 측면에서 급진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 개연성을 열어놓고자 한다. 사회책임투자가 ‘주식 보유’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에, 주주로서 ‘간접적’ 참여를 넘어 ‘적극적인’ 지배적 의사결정자로서 경영의 성격을 바꿀 수도 있다. 가입자들이 연기금을 통해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을 직접 관리해 자본주의 내부 조절양식을 넘어서는 급진적 발판으로 삼자는 주장을 그냥 흘러버릴 것은 아니다.
나는 사회책임투자가 지니는 제도 개혁적 효과도 중시하지만 나아가 급진적 방식으로 확장되는 디딤돌 역할에 더욱 주목한다. 사회책임투자를 전통적 방식에 한정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경우, 국민연금기금은 '규모'가 거대하다는, 기업구조는 '재벌체제'의 소수 독점구조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재벌체제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는 제도적 경로로 국민연금기금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한국 경제구조의 혁신을 위한다면, 국민연금기금이 기업혁신을 위해 의결권을 적극 행사하고, 재벌의 공공적 개혁을 위한 주체로 나설 수도 있다. 급진적 사회책임투자의 성공 관건은 이를 수행할 ‘주체’의 전략과 능력에 달려 있다.
3) 사회기반시설 투자 참여
공공부문은 국민연금기금이 특별히 주목해야할 영역이다. 한국에서 공공부문은 '관료주의'의 상징이어서 국민들에게 달가운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이대로 공공부문을 방치할 수는 없다. 공공부문의 관료성은 타파해야겠지만, 애초 공공부문이 지닌 사회공공적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한국의 국가재정 규모는 공공부문을 확장하는 데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국민연금기금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민연금은 보험료 납부와 급여 지급까지 수십년이 걸리는 장기보험이다. 국민연금제도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선 최소한 2~3세대가 제도 수혜를 경험하는 '인내하는 기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국민연금기금은 가입자에게 실질적 효과를 보여줄 수 있는 '공공서비스' 사업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실버타운, 서민임대주택, 지역 문화․교육․체육시설, 생태환경 인프라, 도시 경전철사업 등 공공적 사회기반시설이 관심 대상이다. 이 시설들은 사회적으로 긴요하나 국가재정의 한계로 방치되고 있다. 근래 민간투자사업(BTO, BTL)이라는 이름으로 민간자본들이 이 사업들을 맡고 있다. 현재 이 사업은 민간자본의 수익성을 위해 주먹구구식으로 집행되고 있어 국가재정만 축내고 민간자본에 특혜를 주는 골치거리로 전락해 있다. 원래 이 사업은 사회적으로 긴요한 서비스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래서 안정적 재원 조달을 위해 국가가 일정한 수익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이 사업을 민간자본에게 넘겨줄 이유가 없다. 작년까지 추진된 민간투자사업 규모가 76조 원이고 앞으로도 늘어날 예정이다. 국민연금기금이 국가와 계약을 맺어 사회기반시설을 제공하고 이에 따른 운용수익을 보장받도록 해야 한다. 사회기반시설의 선정, 건설, 관리하는 전 과정에 지역사회, 연금가입자, 연금공단 등이 참여할 경우 새로운 민주적 공공부문 모델로도 자리잡을 수 있다. '사회기반시설에대한연기금투자법'(가칭)을 제정한다면 공공부문 투자의 법적 근거를 확립하고 민주적 지배구조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영리병원 허용을 포함한 서비스산업 선진화가 나라의 미래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왜 안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시장에서의 경쟁논리에 의해 병원비는 싸지고, 서비스는 좋아진다. 병원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효율을 추구할 것이다.”
한마디로 ‘경쟁과 효율’이다. 올해 1월 새로 취임하면서부터 뭔가 작정한 듯 거침없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MB정부의 핵심 관료인 기획재정부장관의 일성이다.
MB 정권 초기부터 시도했던 영리병원 도입, 당연지정제 폐지, 민간보험활성화 등의 일련의 의료민영화 정책이 작년 제주지역에서의 투쟁과 촛불 여론에 부딪혀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MB 경제정책의 핵심부서, 기획재정부의 주도로 다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