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 11월호 / 삼성반도체와 백혈병] 1. 기획연재를 시작하며
1.기획연재를 시작하며
현대자동차사내하청지회 조합원 권 수 정
“삼성 나쁜 놈들, 일하다 병 걸린 노동자 치료하라!”
10월 9일 오후 1시 서울 근로복지공단 앞에서는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들과 유족들의 산재신청에 불승인 판정을 낸 근로복지공단에 대한 규탄 집회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 주최로 열렸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여러 집회에 참석하지만 개인적으로 번번이 가장 마음 아픈 집회가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을 비롯한 희귀병에 걸려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한 집회다. 대한민국 아니 세계에서도 손꼽히게 잘나간다는 삼성, 한해 2조원대의 당기순이익을 낸다는 삼성,
초일류기업이라는 그 삼성의 신화가 그저 하는 관용구로가 아니라 진정으로 노동자들의 피가 라인에 흐르는 대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무결점’ ‘무재해’ ‘무노동조합’을 자랑하는 삼성은 자신들의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백혈병을 비롯한 희귀병에 걸린다는 ‘결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젊어 꽃다운 노동자들이 일하다 병에 걸려 죽어가는 것은 치명적인 결점이고 매우 중대한 결점이다.
그러나 삼성의 가장 심각한 결점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황유미씨가 처음 문제제기 했을 때 삼성은 삼성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중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는 황유미씨 단 한 명이라고 했다. 이후 반올림에서 제보자를 찾고 5명이라고 하면 삼성은 삼성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는 5명뿐이라고 했고,
다시 11명이라고 반올림이 확인하자 삼성은 삼성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중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는 11명뿐이라고 했다. 어떻게 삼성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의 숫자가 반올림에서 찾은 제보자의 숫자란 말인가.
이제 반올림은 20명의 노동자의 사례를 확인했다. 황유미씨가 처음 문제제기 했을 때부터 이미 20명이 있었던 것이다. 아니 황유미씨가 문제제기 하기 전부터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더 고통 받았는지, 지금도 또 다른 누가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이제 삼성은 겨우 20명뿐이라고 말할 것인가? 200명이 확인 되야 하는가? 아니면 2000명의 죽음이 확인 되야 하는가? 더 많이 죽어야 하는가? 20명중 11명이 죽었다. 그것으로 부족한가?
이 더러운 오만함이 삼성의 가장 큰 결점이다.
황유미씨는 2003년 10월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열아홉 살의 나이에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입사했다. 3라인 현장에서 2인 1조가 되어 화학물질 앞에서 바구니에 담긴 ‘RUN'을 세척하는 업무를 담당해서 하루 8시간씩 3교대로 일을 했다.
2005년 5월부터 멍, 구토, 피로, 어지럼증 증상이 나타났고 다음 달에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2005년 12월 골수이식 수술을 받았으나 재발하여 2007년 3월 6일 사망했다. 그녀 나이 스물 셋이었다.
황유미씨와 2인 1조가 되어 함께 일했던 최은선씨는 유산으로 퇴사했고, 그 자리에 이숙영씨가 와서 일했다. 이숙영씨는 2006년 7월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한 달 만인 2006년 8월 17일 사망했다.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에 입사해 12년을 삼성에서 일한 이숙영씨는 사망 당시 나이 서른한 살이었다.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2007년 6월 1일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에 산재신청을 했고 장장 2년의 시간동안 산안공단의 역학조사와 자문의사회의를 거쳐 2009년 5월 15일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세상에 이유 없는 죽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건강한 딸이 삼성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리고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황상기씨는 오늘도 집회에 참석해 삼성뿐 아니라 일방적으로 삼성편에서 판단을 하는 근로복지공단을 향해 억울한 마음을 토한다.
“오늘 근로복지공단에 와봤더니 전에 왔을 때 없던 것이 있습니다. 공단 앞에 ‘공공기관 경영평가 1등급’이라고 써 붙여 놓았습니다. 누가 근로복지공단을 평가해서 1등이라고 했습니까? 삼성 이재용이가 뽑은 1등입니까? 간판에 ‘희망드림’이라고 써놓았습니다.
누구한테 희망을 줍니까. 노동자들이 죽고, 그 가족들은 치료비 때문에 쫄딱 망하는 동안 모른 채하면서 누구에게 희망을 주었습니까. 삼성 이재용이에게 노동자들 죽이면서 더 열심히 죽도록 일시키라고 희망을 준 것입니까.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에게 발생한 백혈병이 직업병인지 아닌지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모르겠거든 삼성반도체 공장에 가서 한 달만 일해 보십시오. 온갖 화학약품과 방사선에 손을 담갔다 뺐다 하면서 한 달만 일해 보십시오.
그래도 모르겠거든 삼성의 이재용이를 공장으로 보내서 한 달만 일하게 해보십시오, 이것이 개인질병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삼성의 이재용이는 건강이 중요하고 노동자는 죽어도 괜찮고, 이재용이 목숨이 중요하면 내 딸 목숨도 중요합니다. 삼성 나쁜 놈들입니다.”
오늘 집회가 더욱 마음이 아픈 이유는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또 다른 피해자 박지연씨가 백혈병이 재발해 위독하다는 것이다. 삼성에서는 자기네 책임이 아니라 하고,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의학적이고 과학적인 인과성’ 운운하며 사실은 파렴치하고 뻔뻔스럽게 삼성 편을 들고 있는 동안 또 다른 피해자가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이따위 기업과 이따위 근로복지공단을 허용하고 살고 있다는 것이 화가 나고 부끄럽다.
◎ 이 기사는 미디어충청에서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