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09 / 11월호 / 송선생의특검일기] 반도체사업장 특수검진의 문제점

두 번째 이야기

반도체사업장
특수검진의 문제점


한노보연 / 산업의학전문의 송 윤 희



“어느 수준부터 업무와 관련된 증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반도체 회사에서 특수검진을 하면서 궁금했었다. 우선, 나의 경우에는 사업장 보건관리자나 기존 산업보건 일을 담당하는 행정담당자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함부로“일(작업) 때문에 그렇습니다.”라고 말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재 산업보건 분야의 공공연한 사실이다. 문진을 해서 노동자들의 호소를 파악하고 그것을 토대로 판정을 할라치면, 그들의 호소만으로 업무와 건강과의 관련성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업장의 전반적인 분위기이다. 문제는 모든 유해요인이 객관적인 임상 검사가 있어 그 유해의 정도를 파악하는데 지침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임상검사가 없기에 문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유해요인도 많다. 그런 보수적인 시각이 팽배해 있지 않았다면 C1(직업성질환요관찰자)으로 판단했음직한 사람도 몇몇 있었다.


문진의 의미가 무엇일까?

신경계, 호흡기계, 눈, 피부, 귀 문진에서 이상이 있다고 하면 그것에 얼마나 의미를 둘 수 있을까? 나의 경우 입사 이후 어디가 아프다고 본인이 확실하게 이야기하면, 현재 증상에 기록을 꼭 해둔다. 하지만 외부에서는“노동자들이 과장되게 호소를 하는 편이다. 그것만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문진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일까? 노동자가 증상을 호소해도 수치나 기타 객관적인 검사 결과에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해서 그의 증상이나 호소를 무시할 거라면 특수 검진에서 문진(요새 산업의학 의사가 하는 가장 전문성이 있는 부분인데)의 의미는 무엇이냔 말이다.
하루 종일 150명 정도의 노동자들에게 똑같은 질문과 대답을 하면서 의문이 든다. 특수검진이라는 노동에 가치부여를 할 수가 없다. 다행히도 하루에 5-6명 정도는 일과 관련하여 확실한 증상 호소를 하며 때로 객관적인 검사(심전도, 폐기능)가 그의 호소를 뒷받침해주어 그나마 의미를 찾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덧 수검자의 증상 호소에 둔감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예로, 수검자가 “가슴이 답답해요.”, “라인에서 일 할 때 눈이 뻑뻑해요.”, “여기 와서 생리가 불순해졌어요.”라고 대답을 하면 일일이 “스트레스 받았을 때 말구요, 아무 이유 없이 그러진 않죠?”, “눈 뻑뻑한 건 금방 좋아지죠? 라인이 건조해서 그럴거 에요.”, “원래 생리가 불순한 게 아니구요? 산부인과에 가보셨죠? 거기서 괜찮다면 괜찮은거에요.”라고 답하며 웬만한 호소에도 의미를 두려하지 않는다.


왜.....?

첫째 이유는, 한 번 더 확인했을 때 사실은 큰 이상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상 증상으로 노동자가 착각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문진을 통해 그들의 호소가 정말 의미 있는 것인지 재차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로 본인의 생리 주기가 불순하다고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경우, 되물어보면, 같은 날에 하지 않고 점점 날짜가 밀린다며 생리가 불규칙해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꽤 있다. 그랬을 때, “주기가 30일보다 긴 것일 뿐이지, 그 자체로는 규칙적인 것이에요”라고 설명을 해줘야할 때도 꽤 많았다.
둘째 이유는 노동자가 증상을 호소할지라도 특수 검진의 판정 결과에서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중재를 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 수검자가 밀리지 않을 때 큰 도움이 안 되더라도 수검자에게 건강 상식을 더 말해주는 서비스 정도랄까....
반도체 사업장이라서 조금 두렵기도 했는데, 막상 와보니, 삼성반도체와는 달리 이상자가 없는 것 같다. 아니면, 웬만한 생리 불순도 크게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단을 하는, 검진 태도가 존재하는 문제를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20대를 거치면서 원래 생리양이 다 작아지는 것인지, 교대제를 하면 생리가 조금 불순해질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산업의학적 관점으로 유해요인인 안티몬이나 기타 반도체 관련 화학물질로 인해 생식기 장해 초기 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을 내가 인식하려하지 않는 것인지..

그런데 생식기 장애 초기 증상이라고 그 노동자의 상태를 의사가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을 하며 생긴 생식계 이상 증후라고 확신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판정을 그렇게한다 한들, 무슨 대안을 만들어 사업장에서 실행하도록 할 수 있을까? 어떤 특정 화학물질을 꼬집어 내서 대체 물질을 쓰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환기 시설을 더 보완하라고 지적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노동자의 작업 전환 요구할 수도 없고, 또 노동자에게 퇴사하라고 권유할 수도 없다. 생리 불순쯤이야, 이 업무를 하지 않더라도 많은 20대 여성에게 나타나는 증상 아닌가?

자, 그럼 이상 증후이기 때문에 조심하라고 하거나, C1을 용감하게 때려서 안전보건팀의 관리를 받도록 한다면, (관리를 받는 것이 뭐 특별할 게 있을까 싶다. 리스트에 들어가서 그 다음 특수 검진때 한번 더 눈여겨 보는 것 말고는 말이다) D1 이나 D2의 질환 단계로 갈 때까지 무얼 할 수가 있을까? 계속 리스트
에 올리는 것일 뿐, 증상이 질환이 될 때까지 같은 환경에서 일 하도록 놔두는 것 말고 말이다. 질환이 되어야 작업 전환이든, 작업 제한이든 중재를 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기지 않나? 생리가 불순하다는 이상 증후 하나만으로 (즉, C1 판정으로) 작업 전환이나 작업 제한을 시킬 수 없는 현실이라면, 예방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실소가 나온다. 질병이 되기 전에 예방하고자 미리 건강 검진을 받는 것인데, 막상 예방적 차원에서 그 노동자의 작업을 변경할 수는 없다. 질병이 되면 그 때 가서야 회사와 어렵게 타협하여 변경할 수 있겠으나 이 역시 그 노동자가 그 때까지 회사에 다니고 있어 조치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런지도 알 수 없다.


D1은 정말 나오기 힘들고, C1은 나온다하더라도 리스트에만 올려놓고, 그런 판정을 받아도 작업은 계속 해야 하고...

자신의 노동력으로 먹고 살 수밖에 없는 이 틀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노동 때문에 병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자는 특수 검진이라는 것은 아예 처음부터 제대로 실행하기는 불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명시한 사업주의 의무를 지키기 위해 시행하는 것 일뿐. 검진 받는 노동자도 형식적으로, 검진하는 의사도 형식적으로 하는 쓸모없는 소모적인 일말이다. 그나마 판정에서 간혹 위험인 사람들에게 중재를 할라치면 부딪히는 벽이 너무도 많다.

이 글을 인내심 가지고 읽어준 산업의학 선생님들께 여쭙고 싶다.
일하고 나서 생리가 불순하다고 하면, 어떤 조치를 할 수 있나?
산부인과 가라? 일 그만 해라? 교대제라서 그런다?
부인과 가서 괜찮으면 괜찮은 것이다?
반도체 라인에서 일하다가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고 호소하면 무슨 말을 해줄 수 있나?
그냥 전날 과로해서 그러시는 거겠죠?
조금 있다 괜찮아지면 괜찮은 거에요? 신경과나 신경외과 가보세요?

반도체 라인에서 쓰이는 화학물질은 많고, 그나마 환기가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환경안전팀에게 물어본 결과, 순환 공기가 70%, 외부 공기가 30%란다) 이 증상이 화학물질 때문인지, 그냥 업무 과다와 스트레스 때문인지도 알 수 없다. 이 모든 것들을 모른 채로 계속 문진을 하고, 정상이라고 판정한다. 누군가가 ‘정상인 100명중에 1명의 이상자를 찾기 위해서 특수 검진을 하는 것’이라며, ‘그것에 의미를 두면 되는 거다.’라고 특수검진에 의미 부여를 달리 한다면 안심을 할 것 같기도 하다.

건강한 노동자 대부분은 큰 이상 없고, 그중에 1% 내외의 몇 명만이 질병에 걸리는데, 그런 사람들이라도 잘 골라내서 관리하고 질병의 심한 단계까지 가지 않도록 골라내는 것이 특수검진의 역할이고 의미라고 누군가가 말해준다면 계속해서 이런 반복 작업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은 항상 있다. 100명 중 99명은 괜찮기에, 그 나머지 한 명 역시 의사의 눈에 정상으로 둔갑하여 보일 수도 있다는 것.

아직까지 크게 의미 부여를 하지 못하겠다. 내가 검진한 2000명 중에 20명에게라도 어떤 구체적인 혜택이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역시 잘 모르겠다. 너무 건강한 사람들만 만나서, 환자를 만나는 임상과의 의사가 누릴 수 있는 업무 만족감이 없는 것 같다. 그냥 법의 테두리 안에서 내가 먹고 살 수 있는 일거리 하나가 주어져 있는 것 뿐, 거기에 의미 없어 보이는 반복 노동을 하며 돈을 벌고 살림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내 탓은 아니라고 위로해보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계속 이 틀에 만족해서 지내면, 내 탓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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