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09ㅣ12월ㅣ새세상열기-복지] 2 의료민영화와 일차 의료



2 _ 의료 민영화와 일차의료


포럼 사회복지와 노동 최 용 준


1. 들어가며


최근 인구에 회자되는 대표적인 의료 민영화 정책을 열거해 보면 영리 법인 의료기관 개설 허용,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 의료 법인 부대사업 범위 확대, 의료 채권 제도 도입, 의료 경영 지원 회사 설립 활성화, 건강관리 서비스 제공 활성화, 원격 의료 활성화 등이 눈에 띈다. 영리 법인 의료기관 개설 허용처럼 누가 보더라도 의료 민영화의 부정적인 영향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정책이 있는가 하면, 건강관리 서비스 제공이나 원격 의료 활성화처럼 그 영향을 쉽게 가늠할 수 없는 것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일차의료가 당장의 의료 민영화 정책의 직접적인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물론 향후 전개될 의료 민영화 과정에서는 달라질 수 있겠으나 현재의 정책 표적(target)에서는 분명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실 1차의료는 김영삼 정부 이후의 보건의료정책 결정 과정에서 진지한 의제가 된 적이 거의 없었다. 1차의료는 실제 보건의료정책에서 대단히 부차적인 대상에 불과하였고 의료민영화 정책에서도 그 점은 다름없어 보인다.
이 글은 이러한 전제 위에서 현재 한국의 1차의료가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살피고 의료민영화 정책이 1차의료에 미칠 영향을 내다보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또 그러한 예측을 바탕으로, 의료 민영화를 이겨내고 좋은 의료제도를 만들기 위해 1차의료가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는지 소견을 밝히려고 한다. 이 글이 인용하는 통계나 근거로 제시하는 자료들은 엄정한 검토를 거친 것이 아니므로 해석에 유의해 주시기 바란다.



2. 일차의료란?



일차의료란 ‘primary care’라는 영어 표현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이때 영어 단어 ‘primary’에는 여러 뜻이 있지만 일차의료에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순서로 따져 ‘첫째’라는 뜻이다. ‘일차’의료가 있다면 ‘이차’의료, ‘삼차’의료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 그래서 일차의료에는 보건의료 시스템으로 통하는 ‘첫째’ 관문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primary’의 또 다른 의미는 중요성 면에서 ‘근본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일차의료를 전체 보건의료 시스템의 기반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일차의료는 보건의료 시스템으로 통하는 첫 관문이다. 여기에서 건강 문제가 잘 해결되면 좋은 일이다. 일차의료가 문제를 바로 해결해 주지 못하더라도 알맞은 상급 의료기관을 제대로 안내해 준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보통 사람들은 아플 때 어느 의료기관으로 가야 할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료비도 적게 들고 시간 비용이나 교통비 등 간접비도 줄일 수 있다. 그래서 개인에게도, 사회적으로도, 좋은 일차의료는 전체 보건의료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지렛대 노릇을 한다. 사람들이 아플 때 처음 의료인을 만나는 곳이므로 일차의료는 한 나라의 보건의료 시스템의 인상을 결정짓는다는 의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료기관을 찾는 것은 흔하고 가벼운 병 때문이다. 평생 동안 가장 많이 보는 의사는 대학 병원 교수가 아니라 동네 의원의 의사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환자-의사 관계의 형성과 파탄, 의사 집단의 사회적 이미지 형성 등은 대체로 일차의료 수준에서 일어난다.
스타필드 같은 학자들에 의하면 일차의료는 질병과 사망을 예방하며, 전문의료에 비하여 건강 형평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하였다. 또 일차의료가 좋은 나라들의 국민의료비 수준이 상대적으로 더 낮다고 하였다.
하지만 어떤 나라든 일차의료는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일차의료가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학자들은 좋은 일차의료, 바람직한 일차의료가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밝히고 이를 실현하려고 한다. 이론적으로 좋은 일차의료는 최초 접촉, 가족과 지역사회 기반, 지속성, 조정성, 지역사회 주민 참여 등의 특성을 지녀야 한다. ‘좋은 일차의료라면 모름지기 이러저러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정의는 규범적인 성격을 띤다. 이러한 정의는 현실의 일차의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준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의 일차의료, 그 현실은 어떠할까?


3. 한국 일차의료의 현실



1) 바람직한, 좋은 일차의료란 무엇일까? 한국의 현실은?


앞서의 언급한 좋은 일차의료의 성질에 비추어 오늘날 한국 일차의료의 현실을 간단하게 짚어 보자.
‘최초 접촉’이라는 일차의료의 특성은, 일차의료기관이 사람이 아플 때 가장 먼저 찾는 의료기관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대다수의 사람은 증상이 쉽게 나아지지 않으면 '의원'을 먼저 찾게 된다. 주로 감기 같은 병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거나 진료를 받는 사람들은 일차의료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건강 문제를 자기가 다니던 큰 병원에서 해결하려는 경우가 있다. 일반적으로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고, 현재의 증상이 원래 갖고 있던 병과 관련이 있을 것 같은 생각에서 그럴 수도 있다. 제도적으로는 의원과 상급 의료기관 사이에 원활한 협력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탓이 크다. 흔히 말하는 의료 전달 체계의 미비다.
또 하나의 성질인 ‘지속성’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먼저 ‘정보’의 지속성이 있다.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누구든 환자의 건강 상태나 질병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서 환자의 필요에 맞는 진료 계획을 세우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지속성은 낮은 편이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환자가 다른 의사를 찾을 때 그 의사는 이 환자가 다른 의사에게 어떤 진료를 받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환자에게 물어 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환자가 의료 전문가가 아닌 이상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다. 진료 의뢰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경우도 있으나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거기에 들어 있는 정보도 많지 않다. 건강 기록의 표준화가 이루어지고 이것을 전산망을 통해 의료진들이 공유할 수 있는 여건이나 제도가 갖추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정보의 지속성 수준이 낮으므로 진료의 지속성이 담보될 수 없다.
또 하나, 환자와 의사사이의 '관계'의 지속성이 있다. 전통적으로 진료의 지속성은 이 ‘관계’의 지속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관계의 지속성을 제도화한 것이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도입하고 있는 '주치의' 제도다. 우리나라에는 '제도'로서 주치의 시스템이 도입되지는 않았다. 물론 현실에서 사람들은 늘 다니던 의원을 주로 이용한다. 그러나 정해진 의원을 이용한다는 사실 자체가 관계와 정보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환자가 지속성의 편익을 누리기 위해서는 의사의 역량과 진료 인프라, 환자의 협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현실 일차의료의 ‘조정성’은 극히 취약하다. 일차의료기관이 환자의 의료 이용을 효과적으로 안내할 수 있으려면, 의료 제공의 중심 기관이어야 한다. 이를 테면 동네 의원의 의사가 주치의로서 환자들의 복잡한 의료 필요를 충족시키는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입원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다른 전문 의료가 필요한 것인지, 의료 외적인 다른 서비스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럴 만한 권한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동네 의원은 우리가 흔한 건강 문제가 있을 때 그때그때 방문하여 도움을 얻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일차의료가 조정성을 발휘하려면 동네 의원이 주치의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런데 주치의가 제도화되지 않았으니 의사들이 역량을 개발할 필요성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현실 일차의료의 조정성이 취약한 이유다.
일차의료는 포괄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가? 역시 그렇지 못하다. 동네 의원에서 근무하는 이른바 ‘개원의’들의 상당수가 ‘단과’ 전문의다. 전문성이 강조되면 포괄성이 희생되기 마련이다. 좋은 일차의료 의사는 흔한 건강 문제를 폭넓게 알고 있고 그에 대한 진료 경험이 있어야 한다. 특정 질병만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을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련 과정에서 그런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최소한의 교육 과정을 갖추고 있는 분야가 가정의학과인데, 이쪽은 전공의 정원이 그리 많지 않다. 전체 전문 과목 전공의 정원을 병원협회가 정하기 때문이다. 병원협회가 어떤 곳인가? 병원들의 이익단체다. 회원 병원들은 전문 과목별로 가급적 많은 전공의를 배정받으려고 한다. 왜? 상대적으로 전공의의 임금이 싸고, 수련을 빌미로 장시간 노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정의학과에 관심을 둘 이유가 없다.
1차의료기관이 구조적 영세성을 띠고 있다는 점도 서비스의 포괄성을 가로막는다. 제 아무리 가정의학과 의사라 할지라도 환자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모든 역량을 갖춘 것은 아니다. 또 모든 일을 의사가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도 효율적이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 1차의료기관은 의사 1~2명 중심의 진료 ‘사무실’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영양 상담을 하거나 방문 진료를 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인력이 없고 능력도 부족하니 환자의 필요를 적극적으로 돌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환자 필요를 적극적으로 돌보지 않으니 서비스가 포괄성을 띨 리 만무하다.
환자와 가족을 중심에 놓고 진료하는 것도 좋은 일차의료의 특성이다. 그러나 환자를 중심에 두고 진료한다는 것은 흔히 말하는 ‘환자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과 다른 의미가 있다. 진료 과정에서 환자의 의견을 존중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구하여 함께 진료 방침을 정하고 실천한다는 뜻이다. 영국의 유명한 일차의료 의사인 하트의 말을 빌자면 ‘환자와 의사는 건강의 공동 생산자’라고 한다. 이 점에 비추어 보면 현실 일차의료의 ‘환자 중심성’은 그 본질에 충실하다고 보기 어렵다. 더 나아가 ‘가족 중심성’을 따진다면 더 말할 것이 없다. 어린이는 소아청소년과로, 어른은 내과로, 또 병에 따라서 이런저런 전문의를 찾기 마련이다.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일차의료기관이 되려면, 일차의료기관이 지역사회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아니 ‘중심적’ 역할까지 가지 않더라도 무엇인가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뚜렷해야 한다. 예컨대 요즘 같은 때라면 동네 의사들이 합심하여 인근 주민들을 모아 놓고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근처 학교의 교의(校醫)로서 학생들의 보건 교육이나 건강 상담에 적극 나설 수는 없을까? 동네 아파트 단지 놀이터의 안전성을 따져 보고 의견을 내어 시설을 개선하는 데 이바지할 수는 없을까? 그러나 그럴 이유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누구도 그런 일을 요구하지 않고 권한을 주지도 않는다. 오는 환자 막지 않고 가는 환자 붙잡지 않으면 그만이다. 일차의료가 지역사회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2) 일차의료를 둘러싼 물적 토대의 변화


마르크스(Karl Marx)의 말을 단순화하여 이해하자면, 자본주의에서 계급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트로 양극화된다. 한편 그 사이에 있는 중간 계급들은 지속적으로 생성되지만 부단히 몰락과 분해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한쪽 계급으로 편입되어 간다. 한국의 일차의료 현실만을 놓고 보았을 때 마르크스의 진술은 적어도 비유적 의미에서만큼은 적절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간 계급의 생성, 그러나 그보다 더 광범위한 몰락과 분해, 한국 일차의료의 현실은 바로 그런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있었던 국정 감사에서 민주당 전현희 의원은 흥미로운 몇 가지 통계를 제시하였다. 이것을 의료계 전문지와 몇몇 일간지에서 보도했다. 의사협회가 펴내는 KMA times가 뽑은 머리기사 제목 ‘동네 병의원이 무너지고 있다.’, ‘동네 의원 몰락한다.’는 주로 개원의로 구성된 이 단체의 시각을 반영한다. 10월 16일치 KMA times의 보도 기사 일부를 인용한다.
전현희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하루 평균 진료 건수 1~10건 미만인 의원 수가 지난해 2258곳에 달했다. 이는 전체 의원 2만 6973곳의 8.37%에 해당한다. 진료 10건 미만 의원은 2006년 1993곳에서 2007년 2166곳, 2008년 2258곳에 이어 올 9월까지 1840곳 등 해마다 늘어났다 … 하루 평균 30명 미만의 환자를 보는 의원이 올해 상반기까지 총 6996곳(전체 의원 중 약 27%)이나 됐다. ‘하루 평균 환자 30명’은 의료기관으로서의 명맥을 간신히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 결국 우리나라 의원의 열 곳 중 세 곳은 언제 도산할지 모르는 살얼음판 위를 하루하루 걷고 있는 셈이다.
사실 전현희 의원이 공개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는 조금 더 엄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진료 건수가 10건 미만, 30건 미만인 의원의 구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전문 과목에 따라서는 진료 건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료비 수준이 더 큰 의미가 있을 수 있고, 건강보험 비급여 위주의 진료를 하는 의원과 그렇지 않은 의원의 진료 건수는 그 의미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의원에 병상이 있어 입원 진료를 하느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다. 그러나 만약 이들 대다수가 건강보험 진료를 위주로 하는 내과, 소아과, 가정의학과 의원들이라면 전현희 의원의 말대로 전체 의원의 10%에 가까운 의료기관이 심각한 재정 상태에 놓여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고 할 것이다. 또 다른 기사를 보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한 의원급 의료기관이 2061곳(폐업률 7.75%)에 달한다. 동네 의원 폐업 수는 2006년 1795곳(6.96%)에서 2007년 2015곳(7.70%) 등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불과 5년 전인 2004년 폐업률 6.55%(2만4301곳 중 1593곳)와 비교하면 동네 의원의 폐업에 얼마나 가속도가 붙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이 통계 역시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폐업한 의원이 다 어디로 가겠나. 다른 곳에서 다시 개업했겠지.’ 같은 반응이 대표적이다. 맞는 얘기다. 개업과 폐업, 휴업, 재개업, 취업 등 의사들의 이동 경로를 파악해야만 정확한 실태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통계는 일차의료기관인 동네 의원들의 경영 실태를 어느 정도 반영한다. 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한 연구 보고서에 실린 조사 결과에 따르면 평균 개원 소요 비용이 53,893원으로 1억 원 미만, 5억 원 이상이 각각 15.8%를 차지하였고 2~5억 원이 42.1%로 가장 많았다고 한다. 억 단위를 넘어서는 개원 비용은 개원의로서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즉 이들이 폐업 후 재개원을 하였다 하더라도 적지 않은 재정 부담을 안게 되는 셈이다. 그만큼 폐업과 재개원 자체가 의원들의 어려운 경영 상태를 반영한다는 얘기다. 환자의 처지에서도 진료의 지속성을 감안한다면 이는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이와 같은 현상들의 등 뒤에는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비중이 커지고 동네 의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축소되는 상황이 있다. 의원급 의료기관의 진료비 비중도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있는 경향이다. 결국 일차의료기관은 제 나름대로 ‘살 길’을 강구할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하여 앞서 말한 연구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개원의들은 의원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 전략으로 진료 시간 연장 및 대체 의학 시술이나 자기 전공 과가 아닌 다른 과 진료, 비만 클리닉 운영 등 업무 영역 확대를 선택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와 같은 의원들의 ‘경영난’ 타개책이 과잉진료나 전문성 부족 등의 이유로 그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을 뿐더러 일차의료의 본원적 기능을 발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 아님은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들에 비추어 볼 때 ‘동네 의원의 위기’는 간과해서는 안 될 지점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도대체 의료 민영화 정책과 관련이 있을까? 필자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부 직접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주로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일차의료의 현 상황을 빚어내는 데 영향을 미쳐왔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본다.



4. 의료민영화 정책이 일차의료에 미치는 영향



머리말에 썼듯이 일차의료는 김영삼 정부 이후 보건의료 정책에서 진지한 의제가 된 적이 거의 없었다. 정책 우선순위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정책론자의 입장에서 볼 때 동네 의원은 성가신 존재다. 수도 많고 다양하다. 개원의라는 동질성을 바탕으로 의사협회라는 전문가들의 이익단체로 뭉쳐 있다. 정책 당국으로서는 의약분업 당시의 뼈아픈 기억도 남아 있다. 시장에 맡겨 놓으면 국민들이 ‘알아서’ 의료기관을 선택할 일이므로 그대로 놔두는 것이 낫다. 한편 동네 의원들은 동질적인 동시에 이질적인 성격도 있어 일화(逸話)적 사례가 진지한 정책 의제가 되기 어렵다. 반면 병원은 다르다. 수가 적고 다양성이 크지 않다. 병원협회는 전문가 단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기업 회원 단체에 가깝다. 오래 전부터 이들에게 직간접적인 재정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부로서는 그에 대한 발언권도 어느 정도 있다고 보아야 한다. 병원시설과 고가 의료장비, 난이도 높은 시술은 언론의 관심을 모으기도 쉽다.
이런 배경에서 대다수의 보건의료 정책들은 모두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을 정책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의료 민영화 정책도 마찬가지다. 영리법인 의료기관 개설 허용,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의료법인 부대사업 범위 확대, 의료채권 제도 도입, 병원경영지원회사 활성화, 건강 관리서비스 제공 활성화, 원격의료 활성화 등 거의 대부분의 정책이 그렇다. 개원의 중심의 의사협회에서 여러 의견을 내지만 부차적이고 스스로도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 점에서 의료 민영화 정책이 일차의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들 정책이 보건의료 정책의 우선순위를 점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일차의료에 대한 정책 투입 요소가 줄어듦을 통해서다. 정책 투입 요소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을 향한 투입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일차의료에 대한 투입은 방치 상태에 놓이게 된다. 동네 의원들이 겪는 재정적인 어려움이 커지면 커졌지 나아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설령 사정이 나아지더라도 그것은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라 일부 의료기관에 국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한층 심화될 뿐이다.
물론 의료 민영화 정책이 직접 일차의료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 가깝게는 원격 의료나 건강관리 서비스 시장의 활성화가 일차의료의 본래의 기능을 더욱 축소할 수 있고, 멀게는 민간의료보험 활성화에 따라 동네 의원의 다양한 재편이 일어날 수 있다. 의료 경영 지원 회사의 업무 범위가 확대되어 기업형 의원 체인 같은 것이 생기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이에 관한 충분한 정보가 없어 아직은 개연성의 수준에서만 예측할 따름이다.


5. 나오며


이명박 정부의 의료 민영화 정책은 일차의료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바람직한 일차의료의 역할을 확립해 나가기는커녕 그 물적 토대마저 취약해질 공산이 크다. 기존의 문제점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일차의료에 대한 정책 투입 요소는 전무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개원의들은 외부적 충격에 막연한 기대를 건 채 전망이 뚜렷하지 않은 경영난 타개책에 매몰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동네 의원에게도, 시민에게도, 사회 전체적으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거시 정책면에서 이에 대한 처방은 분명하다. 포괄적으로는 일차의료에 대한 정책 투입 요소를 늘려야 한다. 그러나 투입 요소 증대는 의료 제공 체계 개선,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 의사 인력 수급 정책 변화 등을 요구하는 중장기적인 정책으로 연결되어야 하므로 정책의 일관성과 정책을 조정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도 필요하다.
정책의 콘텐츠 면에서는 일차의료에 배분하는 건강보험의 재원 크기를 늘려야 한다. 일차의료에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고 진료비 지불제도도 바꿔야 한다. 일차의료기관의 영세성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일차의료 의사를 기술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의사인력 수급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그에 따라 의학교육 과정의 개혁도 불가피하다.
정치적으로는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보수 정치 세력의 집권 하에 이들 정책이 실행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정권이 바뀐다고 하여 호조건이 형성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가능할까 의심스럽지만 시민 사회와 의료계의 합의와 연대가 필요하다. 시민 사회와 의료계가 똑같이 원하는 것을 정부가 무시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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