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0 | 1월 |특집]산재피해자 권리를 위한 아시아 네트워크 회의 참가 후기(2)

재피해자 권리를 위한 아시아 네트워크 회의 참가 후기(2)

한노보연 상임활동가 콩!!!

지난 11월호에 소개한 것처럼 9월 22일 첫날 오전에 전체 모임을 가진 뒤, 오후에는 ‘피해자 조직화’, ‘직업성 폐 질환’, ‘효과적인 노동안전보건 훈련’이라는 세 가지 주제별 워크샵으로 나뉘어 진행했습니다. 작년에는 전자산업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안전보건교육 워크샵에 참여했었더랬지요(작년 워크샵 얘기는 ‘일터’ 2008년 10월호에 자세히 실었으니 관심이 가는 분들은 한노보연 홈페이지에서 찾아 읽어보세요.^^) 올해는 다른 주제를 들어보고 싶어서 ‘피해자 조직화’ 워크샵에 들어갔습니다.

함께 한 사람들
워크샵은 서로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작년과 같은 방식이었어요. 가까이 앉은 사람들끼리 서로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왔는지를 소개한 다음, 전체 참가자들에게 자기 짝궁을 소개했지요.
참가자들은 대부분 한국, 중국, 타이완, 홍콩, 캄보디아, 미국 등에서 산재상담 등 노동자 지원 활동을 해온 단체 활동가들과 산재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이 워크샵을 통해 산재 피해자들을 조직하는 활동의 고충과 한계를 나누고, 무언가 한발짝 진전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보고 싶다는 소망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저는 주로 중국, 타이완에서 오신 분들이 기억나네요.
우선 피해자 조직화 워크샵을 준비하고 진행한 분들. 타이완 산재 피해자 조직 ‘타보이(TAVOI)’ 활동가들이 몇 분 있었습니다. 타보이는 1992년에 만들어진 단체로, 산재 사고 피해자와 업무상 질병 환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조직하는 활동들을 해왔대요.
타보이 소속으로 참석한 산재 노동자 한 분이 제법 길게 자기 소개를 했는데, 중국어-영어 통역을 맡은 분들이 잘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통역자들의 표정으로 보아하니 말씀하신 분의 얘기가 너무 빠르거나 중구난방이었나봐요. 낯선 사람들 앞에서 짧은 시간에 자기 얘기를 조리있게 풀어내는 게 참 어려운 일이잖아요. 하지만 기왕 어렵게 참석한 이들에게, 좀 버벅거리더라도 자기 얘기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시간과 조건을 마련할 수 있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텐데. 역시 비용이 문제인 걸까요.
중국에서는 젊은 활동가와 노동자들이 여럿 참석했더군요. 그 중에서도 ‘동관노동센터’의 지준 리, ‘노동교육서비스네트워크’의 웨이퐁 포크씨는 특히 한국 활동가들이나 ‘반올림’ 활동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고, 사흘 중 이틀 저녁을 함께 수다 떨며 보냈습니다. 선진 지역 ‘홀딩 핸드 센터’의 얀디 첸씨는 이십대 초반의 젊은 여성인데, 자기도 공장에서 손가락을 다친 산재 노동자라면서 한국 산재노협의 활동에 대해 무척 궁금해 했구요.

누군가 먼저 고민하고 애쓴 덕에
9월 22일 오후에 시작한 워크샵은 23일 아침에 다시 시작해서 그날 저녁까지 쭉 이어졌습니다. 이틀 동안 워크샵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토론하고 정리하고, 다시 토론하고 정리하는’ 방식이었다고나 할까요. 22일 저녁 프로그램을 끝내면서 ‘자 오늘 나눈 얘기를 정리해 봅시다’하더니, 다음날 아침에는 또다시 ‘자 어제 나눈 얘기를 정리해 봅시다’하면서 시작하더라구요.
저는 이런 방식이 맘에 들었어요. 언어의 장벽,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새로운 얘기들, 빡빡하고 피곤한 일정, 이런 것들 때문에 열심히 듣고 말하고 기록하면서도 도대체 무슨 얘기가 오고간 건지 정리는 안되고, 머리 속이 멍했거든요. 그걸 두 번씩이나 훑어주니 얼마나 좋던지요. 암튼, 9월 23일 아침도 전날 오후에 나눈 얘기들을 정리하면서 워크샵을 시작했어요.

“어제 워크샵 활동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워크샵에 참가하고 있는지, 우리의 관심사와 필요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첫째, 어떻게 피해자와 소통하면서 그 지난한 과정을 인내할 수 있을까? 둘째, 어떻게 (피해자의 문제를 돕는데 머물지 않고) 기업에 맞선 투쟁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셋째, 피해자들이 스스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동기부여를 해야 할까? 넷째, 피해자들의 필요에 기반한 활동이란 어떤 것일까? 이게 어제 우리들이 서로에게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그렇겠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서로의 얼굴과 이름만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산재 피해자 조직화를 위해 노력해온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우리는 어떤 지점에서 공감하는지, 무엇을 함께 풀어가야 하는지, 바로 그것이겠죠.
그러고 보니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게 있더군요. 서너 시간 토론한 내용을 5분짜리로 요약했을 누군가의 수고 말이예요. 워크샵 내내 잠시도 한눈을 팔지 못하고 오고 가는 얘기들에 열심히 귀기울였을, 행여 잊어버릴까봐 열심히 받아 적었을, 그리고 중요한 내용을 뽑아 짤막하게 요약하느라 남들만큼 잠을 푹 자지도 못하고 맥주를 마시러 나가지도 못했을 누군가의 수고. 지금 이렇게 몇 달이 지난 뒤에도 워크샵에서 끄적인 메모들을 보면 그때 생각했던 몇 가지 고민들이 다시 떠오르는 것도, 그 누군가 먼저 고민하고 애쓴 덕분이겠죠.

소집단 토론 - 피해자 조직화 운동의 요구
전날 토론한 내용을 정리한 뒤 진행자는 오늘의 토론 주제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어제 여러분이 얘기한 고민들은 모두 피해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어떻게 소통하고 조직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요구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인 얼굴(아마 사회적 환경이나 처지를 말하는 것이겠죠)에 기반해서 발생합니다. 그에 따라 오늘은 농업․이주노동자 조직화, 노동조합의 역할 증진, 비공식 부문․외주화 부문 조직화, 직업병 진단과 평가 시스템 개선이라는 네 가지 주제로 나누어 소집단 토론을 해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각 주제별 소집단에서 어떤 질문들에 답해야 할 지, 일종의 토론방법 지침을 보여줬어요.
1. 피해자의 필요와 특성에 초점을 맞추자.
2. 자기가 속한 단체나 조직에서 이런 특별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최근 어떤 활동을 펼쳐왔는지를 공유하고, 성공적인 활동 사례를 얘기해보자.
3. 제일 큰 장애물이 무엇인지를 공유하고, 각자 얘기한 장애물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도출해보자.
4. 다른 나라 또는 다른 조직들로부터 가장 배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공유하자. 다른 참가자들에게 하나씩 질문을 던지자.
5. 좀 더 효과적으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가까운 미래에 달성하고 싶은 조직 역량은 무엇인지 말해보자.

피해자 조직화의 목적은 무얼까
헌데 이런 설명을 듣다보니 여러 가지 고민들이 피어오르더군요. 피해자들의 다종다양한 요구들에 대해 그 배경의 사회 현실은 무엇인지, 어떻게 바라보고 조직해야 하는지를 토론하는 것도 중요하긴 한데, 내가 ‘피해자 조직화’라는 영역에서 고민하고 있는 초점에 조금 더 주목하고 싶었어요. ‘산재 인정 투쟁’이 ‘현장 개선과 예방 투쟁’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현실 말이예요.
피해자 운동은 대개 예방을 위해 현장을 개선하라는 요구를 함께 내걸긴 하지만, 정작 피해자들은 그 요구를 좀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생존과 생활의 무게 때문에 차마 차마 요구하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고, 정책과 제도의 한계가 너무 명백해서 말해봐야 안될 것 같다고 지레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걸지도 몰라요.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피해자 ‘원조’나 ‘봉사’가 아니라 피해자들의 필요를 온전히 드러내고 그걸 다수의 필요로 넓히고, 다수로 하여금 자기의 필요임을 확인하게 하는 ‘조직화’와 ‘운동’이잖아요.
그래서 용기를 내어 손을 들고 얘기를 했습니다. 요약하면 ‘산재피해자 운동, 즉 산재인정투쟁이 다수 노동자들의 운동, 즉 현장을 바꾸는 예방투쟁으로 이어지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할까?’라는 질문이었죠. 하지만 언어의 벽 때문일까요. 제 제안은 ‘어떻게 해야 사고성 재해와 직업병을 더 잘 예방할 수 있을까?’라는, 조금 다른 내용의 질문으로 해석되어 여섯째 질문으로 추가되었어요. 아쉽더군요.

노동조합과 피해자 조직화 - 각국의 경험, 고민, 꿈
하여간 네 가지 주제 가운데 각자 원하는 주제를 골라서 들어가면 된다길래 저는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한 소집단에 들어갔어요. 아무래도 한노보연에서 주로 노동조합을 통한 활동들을 해온데다가,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로 시작된 반올림 활동을 하면서도 미조직사업장 피해 노동자를 조직하는 일에 기존 노동조합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할 수 있는지가 점점 고민되는 중이었으니까요. 저 말고도 캄보디아, 홍콩, 미국, 한국 활동가들이 함께 했어요.

캄보디아 ; 노조운동을 바로 세우고 산안법이 제대로 지켜지게 하고 싶다
캄보디아 참석자들은 다들 캄보디아노총(CLC) 활동가들이었어요. 총 6천명 정도의 조합원이 있는데 주로 의류, 여행, 공공서비스, 식품, 건설 부문의 노동자들이라고 하더군요. 노총에서 추진했던 피해자 조직화 경험은 대부분 의류업종에 몰려있고, 특히 바늘에 찔리는 사고성 재해 문제가 많았대요.
이들이 노동조합의 피해자 조직화 장애물로 꼽은 건 첫째, 정부의 규제나 역할이 거의 없고 노동조합도 안전보건문제에 관심이 거의 없으며 사실은 노동조합 활동 자체가 물리적 폭력을 동원한 탄압 때문에 심하게 제약을 받는다는 점이었어요. 둘째는 안전보건체계가 부실하고 무책임하다는 건데, 예를 들어 산업안전보건법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고, 산재 보상 범위도 너무 협소해서 손이 절단되어도 보상금은 1천 달러 정도에 불과하다더군요. 셋째 장애물은 산재보상에 대해 노동자들이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현실이구요. 넷째 장애물로 꼽은 건 폭력적인 탄압을 일삼는 캄보디아 사회의 정치적인 불안정, 그리고 다섯 번째로는 상당수 노동조합이(특히 섬유 부문 노동조합들은 거의 모두) 어용이거나 자본과 정권에 매수되어 있다는 현실이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노동조합의 안전보건활동은 단위 사업장 수준으로 꼼꼼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산별교섭도 없고, 총연맹 수준에서 사업주와 직업안전보건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정도라고 하더군요. 가까운 미래에 갖추어야 할 역량과 과제에 대해서는 조만간 제정될 산업안전보건법을 사업주들이 준수하도록 감시하고 현장의 요구를 조직하는 일이라고 했어요.

홍콩 ; 건강권과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 마카오 건설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싶다
홍콩에서 온 참여자는 건설업 노동조합 활동가 출신이었는데, 건설노조 차원에서 교섭이 이루어지고,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법과 제도가 비교적 명확하며, 대부분의 산재 노동자들은 건설노동조합을 통해 상담하고 조직된다고 해요.
하지만 홍콩 건설 노동자들 중 약 2만 명이 마카오에 가서 일하고 있는데, 그곳에서는 홍콩의 안전보건제도가 적용되지 않아 큰 문제라고 합니다. 홍콩의 건설노조에서 마카오 현장의 상황을 잘 알기도 어렵고요.
한번은 여러 단체들이 연대해서 마카오에서 일하는 건설 노동자들의 산재 투쟁을 함께 벌여 보상을 쟁취하고 사업주의 책임을 물었던 적이 있었지만, 이런 투쟁을 조직하는 일이 쉽지 않다더군요. 자신조차 2007년 건설 노동자 파업을 조직했던 뒤로 마카오 입국이 금지되어 답답하다는 얘기도 했어요. 앞으로 강화되기를 바라는 역량 역시 마카오의 피해 당사자들과 가까이에서 돈독한 관계 맺기, 건설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피해자들을 직접 조직하기, 그리고 제대로 교섭을 할 수 있는 역량이라고 하더군요.
미국에서 온 활동가들은 ‘안타깝지만 산재 피해자 조직화에 대한 미국의 노동조합운동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노동조합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지 오래되었다’라고 간단히 소개했어요.

한국 ; 다수의 직접행동으로, 현장을 바꾸는 예방투쟁으로 확장시키고 싶다
한국의 노동조합과 피해자 조직화에 대해서는 제가 간단히 소개했어요. 전문가와 외부 단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온 산재추방운동의 역사가 있었고, 80년대 말부터는 노동조합이 직접 조직하고 투쟁하면서 해묵은 법제도를 개선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는 점, 그 뒤로 노동조합이 주도권을 잡았지만 인적, 조직적 역량이 넉넉지 않은 현실이라구요.
노동조합의 피해자 조직화 투쟁 사례 중에는 여러 역사적인 일들이 많지만, 얘기할 시간도 적고 제가 잘 아는 것도 아닌지라, 비교적 최근에 직접 경험한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에 대해 얘기했어요. 이 투쟁을 통해 산재인정투쟁이 현장개선・예방투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과, 소수의 노동보건 담당 활동가를 넘어 다수의 현장노동자들의 실천으로 조직해가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확인했다는 것. 지금 자본은 전략적으로 전국 수준의 대응을 공세적으로 펼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노동은 그런 태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아픈 얘기도 했어요.
그렇게 얘기를 해나가다가 문득, 내가 피해자 조직화 운동에서 조만간 시도해보고 싶은 일이나 한층 강화하고 싶은 역량은 뭐지? 하는 질문에서 탁 막히더군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뭐지? 반올림 활동을 통해 만나온 삼성반도체 암 피해 노동자들과 더불어 하고 싶은 건 과연 뭐지?
답은 간단하더군요. ‘여럿이 함께 꿈꾸기, 싸우기, 만들기’예요. 뿔뿔이 흩어져있던 피해 노동자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고, 함께 그리고 직접 행동하면서, 자기 자신의 요구를 발견하고 확장해가는, 그래서 다수의 현장 노동자들에게 울림을 만들고 그들이 자기 일터를 바꾸기 위해 스스로를 조직해가는, 그런 거요.

어디서나 똑같은 - 이주 산재 노동자
1.5일을 꼬박 진행한 워크샵, 그 마지막인 23일 오후에는 모두 모여 네 개의 소집단으로 나누어 진행한 토론들을 정리해서 한 팀씩 발표하며 정리했어요.
모든 팀의 발표 내용이 공감거리, 고민거리, 토론거리를 던져주었지만, 농업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 산재 피해자를 조직하는 문제를 다룬 첫 번째 팀의 발표를 들으면서는 무엇부터 고민하고 토론해야 할 지 먹먹해지기만 하더군요. 어쩌면 이렇게 국제적으루다가 똑같은 건지.
이들이 발표한 이주노동자 산재 피해자 조직화의 어려움은 지방정부건 중앙정부건 전혀 이주노동자의 산재 문제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 이주노동자 스스로 안전보건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거나 그럴 수가 없다는 것, 노동조합이나 운동조직들의 지원도 없다는 것, 그리고 이주노동자 산재 피해자들을 조직하려는 시도는 곧바로 강제출국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었어요. 어디서나 똑같죠 정말.

이런 국제적(비록 제가 직접 들은 건 몇 개 나라의 상황이긴 하지만) 동일성은 무얼 뜻하는 걸까요. 이주 산재 노동자들이 태어난 나라와 일하다 병들고 다친 나라를 잇는 연대를 얘기할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 내년 아니면 내후년의 안로브 회의에는 이주 노동자 운동 주체들이 함께 참여해서 얘기를 시작해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투쟁의 현장에서 다시 만나자 친구야
24일 오후, 안로브 공식 일정을 마치고 나니 사흘 동안 낮이고 밤이고 사람들을 만나 숱한 얘기를 듣고, 잘 통하지 않는 영어와 손짓 발짓으로 그만큼 숱한 얘기를 해서 그런지 기력이 완전히 소진된 기분이었어요.
그치만 또 재미있는 건, 일할 때는 바닥난 것 같던 힘도 노는 자리에서는 다시 샘솟는다는 거. 둘쨋 날과 세쨋 날 저녁은 내내 중국과 타이완에서 온 젊은 친구들과 보냈는데요. 처음에는 서로 자기 지역에서 해온 활동과 투쟁에 대해 얘기해주느라 바빴지만, 나중에는 일상의 소소한 얘기들을 손짓발짓 섞어가며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답니다. 그러다보니 불과 사흘 만에 퍽 친해졌어요.
마지막 날 밤, 우리는 호텔 로비에서 ‘참이슬’ 한 병을 돌려가며 한 모금씩 마신 뒤 사진 몇 장을 함께 찍으며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제3의 지역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지역에서, 우리 자신의 투쟁에 직접 연대하며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인사를 서로에게 건넸습니다. 영어로 뭐라고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마디로 이런 인사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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