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석면기업 니치아스가 공해 수출한 석면공장인
부산 제일화학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
악성중피종암으로 끝내 숨져!
일본에서 공해 수출된 석면방직공장 ‘제일화학(현 제일ENS)’에서 일하다 악성중피종암에 걸려 고통 속에 살던 전직노동자 정난희씨(여, 58세)가 지난 1월10일 오전 사망했다. 부산 연산동에서 태어나 자란 정씨는 18세인 1969년 동네인근에서 가동 중인 석면방직공장 제일화학에 입사하여 1971년 말까지 약 2년간(중간에 1년 정도 다른 일함)일한 경력이 있다. 정씨는 제일화학에서 일할 때 백석면과 청석면 두 개의 공정 모두에서 석면에 노출되었다. 이후 38년의 긴 잠복기를 거쳐 2007년 부산 동아대병원에서 흉막중피종암 진단을 받았고 2008년 초 산업재해인정을 받아 치료를 받아왔다. 악성중피종암은 석면노출이 발생원인의 85~95%를 차지하여 대표적인 석면암으로 불리며 예후가 극히 불량하여 평균 생존시간이 9개월여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최초의 직업성 암환자를 발생시킨 회사
제일화학(현 제일ENS)은 1969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가동되기 시작한 석면방직공장이다. 이 공장은 부산시내 한복판 (현주소 연제구 연산1동)에 세워져 1992년 양산으로 옮겨갈 때까지 23년간 인구밀집지역에서 가동되었다. 1969년 처음 세워질 때 백석면을 사용하는 방적기계를 일본 오사카 지역에서 들여온 것으로 추정되며, 1971년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석면기업인 일본의 니치아스(구 일본석면)가 자회사인 다츠타공업(일본 오사카 인근 나라지역 소재)의 청석면(crocidolite)을 사용하는 방적공장 기계를 부산으로 들여와 ‘제일아스베스트’라는 합작회사를 세워 청석면 방적제품을 생산 전량 일본으로 수입해 갔다. 청석면은 6가지 석면종류 중 하나로 가장 독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국제적으로 1970년대 초반부터 유럽 국가를 필두로 사용이 금지되었다[1]. 문제의 석면방직공장 제일화학은 1994년 우리나라 최초의 직업성 암환자(여, 중피종)를 발생시켰다. 2007년12월4일에는 대구지방법원이 이 회사의 전직노동자이며 중피종환자인 고 원점순씨 유족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근로자를 석면피해로부터 보호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대부분 수용되어 약 2억원 여의 피해보상을 지급하라는 석면피해배상에 관한 최초의 법원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일반 노동자에 비해 517배~4,502배나 높은 악성중피종 발병율
노동부는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09년에 펴낸 ‘석면방직공장 퇴직근로자의 건강실태 역학조사’보고서에서 제일화학 부산공장이 가동했던 70-80년대의 퇴직노동자 1,515명의 명단을 확보하여 조사한 결과 2008년 10월까지 접수된 모두 32명의 석면관련 사망자를 파악했다고 밝혔다. 이중 중피종3건(남자1건, 여자2건)에 대한 일반인구 대비 표준화사망비는 일반 남성근로자에 비해 약 517배가 높고, 여성근로자는 4,502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2]. 이 보고서는 ‘퇴직 근로자들의 건강영향 평가’부분에서 “2008년 6월까지 석면관련 질환으로 산재보상신청을 한 자는 30명으로 나타났다. 질병별로 악성중피종 5명, 석면폐증 25명으로 악성중피종 5명은 모두 승인되었으나 석면폐증은 5명만이 승인을 받았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석면피해자와가족협회 회장 박영구씨(제일화학 전직노동자, 석면폐환자)는 “대학병원에서 진폐증인 석면폐증으로 진단받았는데도 노동부가 산업재해 인정을 제대로 해주지 않고 있다. 2007년 12월 석면피해자모임이 생겨 피해자가 많아지자 이전과 달리 산재판정을 탄광진폐 기준을 적용해 보상액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 건물관리인 등의 생업을 계속해야 하는 실정이다. 얼마 살지 못할 산업재해 피해자에 대해 정부가 정당한 피해대책을 세워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다못한 일부 피해자들은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중이다. 제일화학 피해자들을 직접 검진한 바 있는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산업의학 전문의)는 “석면폐증을 일괄적으로 탄광진폐와 같이 취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독일 등 다른 나라는 엑스레이 사진판독으로 석면폐증이 확인되면 바로 석면질환자로 보상이 되는데 우리나라는 탄광진폐와 마찬가지로 폐기능저하증명까지 요구하고 있어 발암물질인 석면문제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재인정 못 받고 고통 속에 신음하는 십여 명 석면폐환자 속히 구제되어야!
석면방직공장의 피해는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만이 아니다. 공장 인근지역에서 거주하던 주민들의 피해도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2004년 악성중피종암으로 사망한 고 원학현씨는 1970년부터 4년간 부산 제일화학 석면방직공장으로부터 반경 2km이내에서 살았다. 석면과 무관한 직장은 공장으로부터 1km미터가 채 안 되는 곳에 있었다. 원씨는 오랫동안 가슴통증을 호소해오다 2002년 울산대병원에서 악성중피종암 진단을 받았다. 부산시 공무원인 김모씨도 2006년 악성중피종암으로 사망했다. 김씨는 10대 후반인 1982년부터 10여 년간 제일화학 부산공장으로부터 1.5km 떨어진 곳에서 산 거주력이 석면관련성의 전부다. 2006년 4월 암진단후 6개월 만에 사망한 김씨는 사망 당시 44세에 불과했다. 이들 주민피해자들의 유족은 현재 제일화학, 대한민국정부, 일본기업 니치아스를 상대로 피해보상소송을 제기중이다.
1992년 제일화학 부산공장이 경남 양산으로 옮겨갈 때 일부 석면기계들이 인도네시아로 다시 공해 수출되었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서 동남쪽으로 1시간여 거리에 있는 보고르(Bogor)시 시비농(Cibinong)이란 인구밀집 지역에서 PT JEIL FARJAR와 PT TRIGRAHA란 이름의 한국-인도네시아 합작회사형태로 19년째 가동 중이다.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는 2007년부터 매년 인도네시아 현지를 방문, 노동자와 인근주민의 건강피해여부 그리고 환경오염을 조사하면서 석면피해우려를 경고하고 국제사회의 대책을 촉구해왔다. 최예용 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아시아 이웃나라로 석면피해를 확산시킨 일본정부와 니치아스는 공해수출의 과거 잘못을 사과하고 피해기금을 마련하여 피해조사 및 피해자구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최위원장은 올해 한국에서 열릴 예정인 제2회 아시아태평양환경보건장관회의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공동현안인 석면피해문제를 의제로 상정하여 국제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22일 국회 환경노동상임위원회를 통과한 ‘석면피해구제법안’은 새해 예산을 둘러싼 여야의 힘겨루기에 밀려 법제사법상임위원회와 본회의가 열리지 않는 바람에 올해 2월 임시국회로 처리가 미뤄졌다. 석면피해보상법 제정촉구 국민서명운동에 앞장서 온 악성중피종환자 최형식씨는 “작년 초에도 여야간의 쌈박질로 민생법인 석면법이 미뤄졌는데 이번에 또 미뤄졌다. 이게 국민을 위하는 정치요 행정이냐? 매우 실망스럽다. 정부와 국회가 여러 가지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에 석면피해자들이 하나 둘 죽어가고 있다”며 조속한 석면피해법 제정을 촉구했다.
2010년 1월 11일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한국석면피해자와가족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