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시기 ‘의료산업화'란 이름으로 추진된 의료민영화, 의료시장화 흐름은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는 ‘의료선진화'란 이름으로 포장을 바꾸어 추진되고 있습니다. 의료채권법 도입, MSO활성화, 건강관리서비스의 활성화, 의료법인간 인수합병 허용 등이 이미 입법 예고되어 있으며, 제주도에서 영리법인 도입 확정이 초읽기에 들어가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대응하여 의료민영화에 대한 비판과 반대 흐름도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아직 의료민영화 흐름을 제어할 정도로 헤게모니를 쥐고 있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의료민영화에 대한 대응은 주로 담론과 이데올로기적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주요하게는 제도적, 법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하여 향후 그것이 미칠 영향 -의료비 폭등, 의료양극화 심화, 의료서비스 질 악화 등- 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아직은 보건의료 현장과 각 영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검토는 미미하며, 의료민영화에 대한 비판을 넘어 대안 담론에 대한 논의와 실천의 모색은 활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의료민영화가 보건의료 각 현장과 영역에서 야기하고 있는 모습에 대해 살펴보고, ‘공적 건강보험’과 ‘민간시장위주 공급시스템’이 결합된 한국사회 보건의료에 대한 대안 담론을 모색하는 토론의 장을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이 토론을 통해 대중적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형성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09년 10월 28일 공동심포지엄 준비단
4_의료민영화와 지역개발
- 제주 영리병원 논란을 중심으로
제주의대 의료관리학교실 박 형 근
1. 들어가며
2008년 6~7월, 의료민영화 논란의 핵심 쟁점이었던 제주 내국인 영리법인병원 허용 건은 제주도 당국이 추진한 제주도민 여론조사 결과 찬성 38.2%, 반대 39.9%로 과반의 찬성을 얻지 못하고 일단락된 바 있다. 그런데 2008년 말, 김태환 도지사는 영리병원이라는 이름 자체가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투자개방형병원’으로 이름까지 개명하면서 2009년 법개정을 재추진 하겠다고 밝혔다. 실패한 바 있는 여론조사 방식은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기준은 일찌감치 세워 놓았고, 도내 언론매체를 통한 광고와 홍보, 방송용 의료관광 특집 프로그램 제작 지원, 공무원을 통한 대민 교육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도의회의 동의(도의원 재적인원의 2/3이상 찬성)를 도민 동의로 간주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이후 제주도민의 숙원 사업인 국세의 자율권 부여, 자치재정권 강화, 녹색성장산업 육성, 관광객 전용카지노 도입을 영리법인병원 허용과 하나의 동의안으로 묶어 도의회 동의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도의회 통과를 위한 사전작업을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2009년 7월 21일 이루어진 도의회 전체회의에서 찬성 29명, 반대 9명, 기권 3명으로 재적의원의 2/3 이상의 찬성을 얻어 내었다. 영리법인병원 허용을 간절히 바라는 현 정부의 입장과 영리법인병원 허용에 조심스러운 입장이지만 ‘제주와 경제특구에 내국인 영리법인병원을 허용하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는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입장에 따라 쉽게 정부입법으로 제출될 것이며, 예정된 일정대로라면 2010년 초 국회에서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의료민영화 논란의 핵심 정책인 내국인 영리법인병원 설립 허용 건이 제주를 시작으로 가시권 안에 들어온 셈이다. 제주 내국인 영리법인병원 허용이 미칠 파급효과를 살펴보기 위해서 제주에서 진행된 그간의 논의 과정 및 쟁점과 전망에 대해 짚어보기로 하자.
2. 제주 의료서비스산업육성 전략과 관련 쟁점 분석
1) 영리법인병원을 통한 의료산업육성
: 서비스산업 육성인가? 혹은 토건사업인가?
제주도가 의료산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준비과정에서 의료관광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경제부처의 제안을 수용하면서부터다. 제주의 자연경관과 고급 의료 인프라가 맞물리면 해외환자 유치에 있어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상당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핵심 논리였다. 제주 실정상 의료관광이라는 명함을 내밀기 위해서는 도내 의료 인프라의 대대적 혁신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구체적 실천전략으로는 자본시장으로부터 자본을 조달해 투자하는 영리법인병원 허용 방안이 채택되었다. 이후 제주도 당국과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등 관계기관들은 영리법인병원 설립 허용을 제주 미래를 좌우할 핵심과제의 하나로 영리법인병원을 부각시켜왔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의료관광 전문기관들을 유치하기 위한 ‘헬스케어타운’이라는 단지조성 계획이다. 제주도 남서부 산림지역을 개발하여 투자자에게 부지를 분양, 의료관련 시설을 특정 지역에 집중시켜 경쟁력 있는 전문 단지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이다. 의료라는 전문서비스산업육성 추진계획에서조차 ‘어떻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제공하게 할 것인가? 제주 의료산업의 경쟁력 제고 방안은 무엇인가? 나아가 마케팅 전략을 어떻게 세워나갈 것인가?’ 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영리법인병원이라는 외부 자본조달을 활용한 대규모 단지조성 및 건설사업, 즉 토건사업에 전력을 기울이는 양상으로만 나아갔다는 점이다. 외양은 의료서비스산업육성인데 사업추진방식은 주택단지개발방식 그대로다. ‘영리법인병원만 허용해주면 서비스 질이 좋아지고, 해외환자들이 몰려들겠느냐?’라는 추궁에는 관련 규제만 풀어주면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영리법인병원들이 다 알아서 할 것이라는 간단하면서도 무책임한 답변으로 일관해왔다. 즉, 제주도 당국의 역할은 관련 규제를 풀고 단지를 조성하여 관련 기관을 유치하는 데까지이고, 나머지는 당사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며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관련하여 짚어볼 문제는 네 가지다. 첫째, 영리법인병원 허용 이후 제주에 과연 투자할 병원이 있겠는가? 둘째, 신설될 영리법인병원이 과연 좋은 병원이겠는가? 셋째, 해외환자 유치가 기대만큼 이루어질 것인가? 넷째, 국민건강보험제도 등 기존 의료제도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없겠는가? 이와 관련된 문제가 영리법인병원 허용 논란의 주된 쟁점이었다.
2) 제주 영리법인병원 논란의 쟁점 분석
① 제주에 투자할 영리법인병원이 있겠는가?
2006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는 출범과 동시에 이미 외국인 영리법인병원 설립이 가능하였다. 하지만 다른 경제자유구역과 마찬가지로 투자실적이 전무하고, 현재 협의 중인 곳도 하나도 없다. 경제자유구역이나 제주도에 규제만 풀어주면 투자자가 줄을 설 것처럼 이야기 했지만 실제 투자실적은 전무한 상태이다. 아직은 중간 평가이긴 하지만 시장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봐야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망이 어두운 외국인 영리법인병원 유치 대신에, 제주도 당국은 내국인 영리법인병원 허용론을 본격적으로 꺼내들었다. 투자할 의향을 내비치는 병원이 여럿 있고, 아산병원이나 삼성병원 같은 서울의 초대형 병원의 분원을 유치할 수 있으며, 제주도민들도 서울에 가지 않고 제주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논리를 펴기 시작한 것이다.
투자 의향이 있다는 병원사업자를 접촉한 제주도내 의료인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실제 제주에서 병원사업을 하는 데 관심이 있기보다는 제주 영리법인병원을 자본조달 창구로 삼아 서울 등 제주 이외 지역 소재 의료기관에 투자하기 위한 투자 자본을 확보하는 것이 제주 영리법인병원에 관심을 갖는 근본 이유라고 한다. 현재로서는 피부, 성형, 치과, 관절수술 전문 등 소규모 영리병원들의 진출 전망밖에는 없는 것이고, 다른 경제자유구역 등으로 내국인 영리법인병원 허용범위가 확산되거나 전국적 허용 국면에 이르면 ‘먹튀’ 자본이 될 공산이 큰 곳들뿐이다. 제주도 당국에서는 규제만 풀리면 적극적인 유치활동을 벌여 반드시 성과를 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영리법인병원 전국적 허용 여부가 이미 공론화된 상황이고, 비영리법인병원에도 부대사업으로 주식회사 형태의 MSO 설립을 허용해주겠다고 공식화한 마당에 과연 제주에 투자할 병원이 있을 것인지 의문스럽다. 제주도가 영리법인병원 전국화의 물꼬만 터주고 헛물켜는 꼴이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② 신설될 영리법인병원은 과연 좋은 병원이겠는가?
아직 국내에 영리법인병원 사례가 없기 때문에 외국의 경험을 토대로 유추해 볼 필요가 있다. 영리법인병원의 성과는 의료보장체계와의 관계에서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영리법인병원이 비영리병원과 의료보험회사로부터 동일한 대우를 받는 경우이다. 미국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영리법인병원이든 비영리병원이든 관계없이 개별 병원이 갖고 있는 시장 지배력에 따라 보험회사로부터 받는 보상수준이 결정된다. 규모와 수준이 비슷한 영리법인병원과 비영리병원을 비교해보면 보험회사로부터 비슷한 수준의 진료비 보상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입이 비슷하다는 뜻이다. 반면, 지출구조를 비교해보면, 비영리병원은 상당한 세금감면 혜택을 받고 있지만 영리법인병원은 세금감면이 없고, 투자자에 대한 수익배당과 주식가치 상승의 부담으로 인력의 양과 질에서 비영리법인병원보다 떨어진다. 기존 미국에서 이루어진 영리법인병원과 비영리병원 간의 성과 비교 연구를 종합해보면 영리법인병원의 의료서비스 질이 비영리법인병원에 비해 떨어지고, 의료비는 높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반면, 태국이나 인도와 같이 그 나라 일반 국민들에게 적용되는 의료보장제도와 관계없이 자국이나 인근 국가의 상류층과 장기체류 외국인들 그리고 선진국 의료소외 계층을 상대로 병원이 자유롭게 의료비를 결정할 수 있는 나라의 영리법인병원들은 기존 공공병원이나 비영리병원보다 아주 높은 의료수준을 유지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전국민의료보장제도가 갖추어져 있지 않은 개도국, 특히 최근에 의료관광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나라들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모습이다.
국내에 내국인 영리법인병원이 허용되더라도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적용받을 것이라는 입장을 정부당국에서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향후 국내에 설립될 영리법인병원들도 건강보험수가를 동일하게 적용받게 될 것이다. 영리법인병원이 부담해야할 법인세, 이익배당, 주식가치 상승을 위한 인건비 부담 최소화 등으로 인해서 일반적으로 비영리병원이나 공공병원에 비해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한 투자 여력이 적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조건에서 영리법인병원이 비영리병원이나 공공병원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초기의 비용부담을 감수하고라도 지명도 높은 의사를 다수 확보하여 보다 많은 환자를 끌어들이는 방법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과잉진료나 비급여 진료의 확대를 통해 의료수익을 높이고 의사외 인력에 대한 인건비 부담을 최소화하는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왜곡된 진료행태가 지금보다 더 만연해지고 기존 비영리병원과의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영리법인병원의 출현이 의료비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우수 의료진 확보가 지금도 쉽지 않은 상황에 있는 제주와 같은 지방이다. 의사의 지명도나 병원 브랜드에 의지한 경쟁전략이 불가능한 조건에서 영리법인병원이 이윤을 확보하는 동시에 양질의 서비스 제공을 위한 비용부담을 감내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과잉진료 혹은 비급여진료 확대나 값싼 개도국 병원노동자 활용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제주에 내국인 영리법인병원을 허용하더라도 제주도 당국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좋은 병원이 들어설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한 실정이다.
③ 해외환자 유치가 기대만큼 이루어질 것인가?
내국인 환자 유치 전망이 어렵더라도 대규모 해외환자 유치 성사가 가능하다면 헬스케어타운 단지 조성의 성공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제주도 당국이 내국인 영리법인병원 허용 명분으로 해외환자유치를 끝가지 고집한 것도 이 때문이다. 태국이나 인도와 같은 나라도 의료관광으로 1년에 수십만 명에서 수백만 명까지 유치한다고 하는데 제주와 같은 아름다운 경관을 갖춘 우리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핵심 근거였다.
해외환자 유치사업의 전망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최근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의료관광(medical tourism) 시장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의료관광은 암에 걸린 우리네 재벌회장님들이 치료차 미국 일류병원을 찾아가는 의료관광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인건비가 낮고 부대비용이 저렴한 개도국들이 영리법인병원이라는 특화된 소수 기관에 자국의 우수 인력과 고가장비를 집중하여 미국 등 선진국 의료보장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양질의 수준 높은 서비스를 미국 의료비 대비 10∼30% 수준으로 제공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의료관광 소개 및 알선 전문업체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외래와 응급은 미국 의료기관을 이용하고 입원치료는 태국의 영리법인병원을 이용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저렴한 보험 상품이 출시되어 상당한 관심을 끄는 단계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중동이나 러시아 등 의료보장제도와 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나라의 일부 부유층들까지 시장을 넓혀나가고 있다.
이들 시장은 양질의 서비스를 기본 조건으로 한 ‘가격경쟁’ 구조이다. 누가 더 양질의 서비스를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내놓을 수 있는가에 따라 경쟁력이 결정된다. 서비스 질은 기본 조건이고, 가격이 경쟁력의 관건이라는 점이다. 의료관광을 떠나는 미국인들이 세계 최고의 병원들이 미국에 있다는 것을 몰라서 멕시코 국경을 넘고, 태국이나 인도 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대변한다.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동남아 의료관광시장을 주도하던 싱가폴이 2000년대 초반 저렴한 인건비, 부대비용, 관광인프라를 무기로 빠르게 부상한 태국에 주도권을 넘겨준 이유도, 최근에 의료관광 강국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인도가 갖고 있는 잠재력도 여기에 있다. 물론 그들 나라 내부에서 우수 인력이 영리법인병원에 몰리면서 기존 공공병원의 인력수급이 어렵고 질적 수준이 떨어진다는 문제제기가 있지만 그 사회 내 일부의 비판적 목소리에 그칠 뿐 대세에 큰 영향은 없어 보인다.
이제 우리나라의 의료관광 경쟁력에 대해 짚어보자. 병원서비스 원가의 절반가량이 인건비인데, 병원서비스 노동자 임금 비교의 근사치로 제조업 노동자 평균임금을 비교해보면 2003년 한국제조업 노동자 월평균 인건비를 100으로 보면, 태국은 9.6%, 인도는 1.4% 불과하다. 우리나라가 간호사 1명을 쓸 비용이면 태국은 10명, 인도는 50명을 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리고 기존 국내 병원들이 선진국이나 태국, 인도 등의 영리법인병원에 비해 매우 적은 인력을 활용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과 국내의 높은 부대비용을 고려하면 태국이나 인도와 경쟁이 어렵다. 국내 신발산업, 섬유산업이 중국이나 동남아에 밀리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의료관광 성공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런데, 왜 국내에서는 해외환자유치 사업에 대한 기대가 이렇게 높은 것일까? 싱가폴 의료관광 사례가 본격적으로 소개된 2003년 당시만 해도 국내·외적으로 의료관광 실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일천한 시절이었다. 의료를 통해 외화벌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영감을 얻어 의료기술 수준에 비해 만족도가 낮은 체감 서비스의 고급화만 이루어진다면 우리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단순한 사고가 뿌리 깊게 자리를 잡았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자유구역, 제주도의 영리법인병원 설립 허용, 해외환자 유인알선 허용 등 정책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확대 재생산 되었기 때문이다. 국내외 문헌을 통해 의료관광 실상에 대한 소개가 본격화된 것도 2006년 말부터이었기에 의료관광에 대해 잘 몰랐던 탓이 가장 크다고 하겠다.
제주에서도 2008년 제주 영리법인병원 허용 논란과 2009년 도의회 동의과정에서 주된 논쟁거리는 의료관광 의 실체에 대한 것이었다. ‘제주도가 의료관광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근거와 구체적 방안은 무엇인가? 향후 시장전망에 대한 구체적 전망자료라도 있는가?’에 대해 제주도 당국과 찬성론자들은 영리법인병원이 들어서면 해외환자들이 들어올 것이라는 이야기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었다.
④ 국민건강보험제도 등 기존 의료제도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없겠는가?
영리법인병원 허용이 기존 국내 의료제도에 미칠 영향과 관련한 핵심 쟁점은 의료비 인상과 건강보험제도의 지속 가능성 여부 두 가지다. 과잉진료나 비급여 진료로 인한 의료비 상승은 일반인들도 쉽게 수긍하는 부분이니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현 시점에서 건강보험제도 유지의 핵심인 당연지정제도에 미칠 영향이다. 2002년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위헌 소송에 대해 헌법재판소 판결문의 관련대목부터 살펴보자.
‘일정 비율의 의료기관에게 일반의(一般醫)로서 진료할 수 있는 예외를 허용한다면, 의료공급시장의 자유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든 의료기관은 건강보험에 편입되기를 원할 것이고, 보다 양질의 의료행위를 제공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은 요양기관으로서의 지정에서 벗어나 일반의로서 활동하게 되리라는 점이 쉽게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보험진료는 결국 이류 진료로 전락하고, 그 결과 다수의 국민이 고액의 진료비를 지불해야 하는 일반진료를 선호하게 되고, 이는 중산층 이상의 건강보험의 탈퇴요구와 맞물려 자칫 의료보험체계 전반이 흔들릴 위험이 있다. 따라서 강제지정제의 예외를 허용한다면, 의료보장체계의 원활한 기능이 확보될 수 없다는 판단이 가능하고,
문제는 영리법인병원이라는 주식회사 병원이 생산하는 서비스의 생산범위와 가격을 건강보험이라는 제도를 통해 하나하나 규제하는 것이 헌법의 기본정신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규제도 위헌소송 때문에 어렵다는 게 행정부 수장의 판단이라는 점을 비교해 보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초기에 영리법인병원은 건강보험을 자양분 삼아 성장해야 하기에 초기부터 위헌소송이 제기되지는 않겠지만 영리법인병원의 양과 규모가 일정 수준이상 성장하고 민간의료보험 활성화가 어느 정도 진전되면 행정부의 어떠한 조치 없이도 위헌소송을 통해 건강보험당연지정제의 틀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은 행정당국이 영리법인병원을 허용하면서 건강보험당연지정제를 고수하겠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라는 점이다.
3. 제주 영리법인병원 이후의 전망과 과제
OECD 주요 국가 중 민간 비영리병원의 비중이 높은 네덜란드, 캐나다, 일본, 한국을 제외하고는 영리법인병원의 설립이 허용되어 있다. 영리법인병원이 허용된 나라라고 해서 보편적 의료보장체계가 흔들리거나 붕괴된 것도 아니다. 영리법인병원이 허용된 보건의료체계의 제도적 맥락과 보편적 의료보장체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신뢰에 따라 결정될 문제라고 보는 게 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해석일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현실에서 영리법인병원을 수용한 이후에도 건강보험제도 틀의 훼손 없이 안정적인 의료비 관리가 가능하겠는가에 대해 자신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병원의 90%가 이윤추구 경향이 강한 민간병원이고, 병원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대다수 민간병원들이 건강보험이 아닌 민간보험과의 자율적 수가계약을 통해 보다 높은 수준의 보상을 희망하는 상황에서 신규로 진입할 영리법인병원 허용이 안정적으로 건강보험제도에 머물기만을 바란다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사고일 뿐이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의 하나로 줄기차게 제기되고 있고, 실제 일부 보험회사를 중심으로 의료보험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건강보험과 경쟁하거나 대체하는 시스템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한 개인 질병정보의 사보험 공유를 허락하여, 민간의료보험회사들이 건강보험과 전면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상품출시가 가능한 능력을 갖추게 되면 영리법인병원을 비롯한 상당수 의료기관들이 민간의료보험과의 자율계약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이 정도 상황까지 발전하면 건강보험제도의 축소나 존폐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아주 빠른 속도로 미국과 같은 의료제도로 변화하는 것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4. 나오며
제주 영리법인병원 허용 건은 구체적 입법단계에 들어섰다. 그리고 11월이면 영리법인병원 전국적 허용 여부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예고되어 있다. 2005년부터 시작된 제주영리법인병원 논쟁과 논란의 과정에서 주요 쟁점의 대부분이 다루어졌다. 그러나 제주도를 비롯한 정부당국은 설정된 정책을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밀어붙이려고만 할 뿐 세부 추진내용의 문제점과 정책 추진 이후 초래될 부작용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지방정부일수록 의료의 문제를 의료시장이나 의료서비스를 중심으로 접근하지 않고 의료를 매개로 한 지역개발 측면에서만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이미 수립된 정책의 집행을 위한 단순한 주장과 명분만 나열할 뿐 근거에 기초한 합리적 대화와 논쟁, 새로운 대안의 모색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이 무척이나 아쉽다.
오늘 11월 중앙정부 차원에서 영리법인병원 허용 여부와 허용 범위를 결정한다고 한다. 또한,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비영리법인병원에 부대사업으로 주식회사형태의 병원경영지원회사를 허용하는 법안 개정이 처리될 예정이다. 그리고 내년 상반기 국회에서는 제주에 내국인 영리법인병원을 허용하는 법안 논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나하나가 기존 의료제도와 국민건강보험제도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은 내용들이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지만, 우리 사회의 진지한 대화와 고민을 기대해 본다.
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