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법은 인권침해나 차별행위를 당한 사람(피해자) 또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나 단체는 위원회에 진정을 할 수 있다(제30조). 또한 이 법은 국내 영역 안에 있는 외국인에 대하여도 적용된다.
노무법인 필 노무사 유 상 철
# 인사를 잘 하지 않아 문제다
국내 대학에서 강사를 하는 남성이 방대한 서류뭉치를 들고 인권위 상담실을 찾았다. 유학생활 중 외국인 부인을 만나 결혼을 했고 국내의 어느 대학에서 함께 강사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2009년 1학기가 끝날 무렵부터 내담자의 부인에게 학교측 관계자들이 강사업무외 불필요한 부가업무를 지시하기 시작했다.
강의 후 강의실 청소를 하라는 지시를 하는 등 강사로서 담당한 수업 외에 이해하기 어려운 지시를 하였고, 급기야 방학 기간 중 수업을 줄이기 시작하더니 2학기부터는 예정되었던 강의를 모두 취소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방식의 부당한 대우는 부인뿐만 아니라 내담자에게도 일어났다.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인지 추적을 해보니 부인이 학교 관계자들에게 제대로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복도에서 마주치거나 업무와 관련된 협의를 할 때 정중히 인사를 하지 않고 ‘하이’ 등 간단한 인사말만 하였던 것이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 수업을 폐지하여 사실상 부당해고를 하다.
이 부부는 학교 관계자들에게 부당한 처우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결국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성이 오가는 다툼도 발생되었고, 부인은 부당한 처우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본국으로 귀국해 버렸다.
부당해고 여부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사안이지만 내담자의 주장에 근거한다면 부당한 사유를 들어 학교 측이 수업을 폐지한 것은 해고의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결국 문화적 차이, 생활방식의 차이가 발단이 되어 부당해고를 당하고 외국인 부인은 본국으로의 귀국하여, 가정생활이 단절되는 등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엄청난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는가?
내담자가 상담을 왔을 때 이미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내담자의 상담내용으로 볼 때 외국인에 대한 차별행위에 대해 인권위가 적극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비록 인권위가 조사 후 권고하는 것이 법률적으로 강제되지는 않지만 인권침해나 차별행위에 대한 주요한 판단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었던 상태였다. 그러나 형사소송, 민사소송이 진행 중인 사건은 이미 사법기관을 통해 권리구제를 다투고 있는 상태이므로 인권위에서는 그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내담자뿐만 아니라 부인도 부당해고 구제신청 등 노동위원회를 통한 권리 구제의 절차를 진행할 수 있었지만 구제신청 기간이 도과된 상태였다. 사실상 원직복직을 원하지 않았던 상태에서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게 된 것으로 보였지만 다른 무엇보다 인권위를 가장 먼저 찾았다면 아마도 민사소송에 중요한 근거자료가 됐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외국인 부인의 권리를 구제해 줄 기관이 없다는 것이 × 팔린다!”
내담자가 상당 기간 동안 민사소송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인권위를 찾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학연, 지연으로 얽히고 설킨 사법시장의 모습을 보며 사법기관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결국 내담자는 내담자 부인의 국내 대사관을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하게 되었다. 대사관에서 “한국인과 결혼한 자국민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국가기관이 어딘가 있지 않겠냐?”는 답변을 듣고 뒤늦게 찾게 된 곳이 인권위원회였다는 것이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인권위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보다 많아지는데 사실상 인권위의 권한이나 조사대상은 너무도 한계가 많다. 최종적으로 진정 접수를 안내하면서 이러한 설명을 하자 내담자는 “나와 결혼한 부인이 외국인일지라도 권리를 보호해 줄 국내기관이 없다는 것이 너무도 ×팔린다”며 한탄을 늘어놓았고 난 그냥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