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1년 7월 - 특집] 삼성백혈병 사건을 통해 본 산재보험법 개정의 필요성

<특집 2>
‘삼성백혈병 사건을 통해서 본 산재보험법 개정방안’ 토론회가 6월 27일 국회에서 열렸다. 법원에서 4년 만에 산재를 인정받은 삼성백혈병 사건을 통해 드러난 산재보험 이용 상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토론회의 발제를 요약해 독자들에게 전한다.(정리_ 선전위원 흑무)
발제_1 삼성백혈병 사건을 통해 본 산재보험법 개정의 필요성
발제_2 산재보험 신청 간소화 및 수급권 입증 책임 전환 방안


발제 1. 삼성백혈병 사건을 통해 본 산재보험법 개정의 필요성

이종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활동가)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는 이런 자리가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삼성반도체에 일하다 백혈병에 걸렸는데 이것이 산재로 인정받을 만한 것이냐에 대한 확신도 부족했고 반도체도, 백혈병도 어려운 문제였다.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승소는 큰 의미가 있다.

먼저 반도체 공장에서 발생한 백혈병이 직업병이라고 공식적으로 확인을 해준 것이다. 반도체 공장에서 수백 수천의 유해물질에 노출되고 있다는 것을 어느 기관도 인정한 적이 없었는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일이다. 두 번째는 ‘삼성과의 소송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에 대해 99%이상이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승소해서 너무나 기쁘다. 승소를 바란 많은 분들의 승리라고 본다.
산재신청 후 법원판결까지 4년이 걸렸다. 2008년 4월에 5명의 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하고 판정까지 1-2년이 걸렸다. 이것은 ‘산재법이 신속한 보상을 해야한다’는 법 취지에도 어긋난다. 고 박지연씨를 아실텐데, 같이 산재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불승인을 받으면서 어마어마한 치료비 부담에 결국은 어머니가 소송취하까지 하는 일이 있었다. 산재보험이 얼마나 취지와 다른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사례이다.

뇌종양, 다발성 경화증 등 지금까지 18명이 산재신청을 했다. 그 중에서 산재로 인정받은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그 이유가 뭐냐’에 대해 오늘 토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젊은 노동자들이 그 나이에 잘 걸리지 않는 희귀병으로 사망하고 있는데 산재신청까지 ‘사망이후 3년 안에’라든지 ‘인지 이후 3년 안에’ 라는 것을 비롯해 남아있는 증거자료가 없고 내가 일했던 현장은 없어졌거나 하는 벽이 있다. 현장에 과거의 모습이 약간 남아있다 하더라도 모든 산재신청이 불승인 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어차피 해도 안 될걸’, 이라며 산재신청을 주저하고 미뤄두고 있다.


이 사건의 특징은 ‘직업성 암 문제’라는 것이다. 여러 산업 중에서도 첨단 전자산업인 반도체 산업이라는 것, 무노조경영의 삼성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특성이 있다. 지난 국회토론회에서 직업성 암 인정기준의 문제점을 살펴보았었는데, 전체 암 발병 비율 중에서 직업성 암으로 추정되는 것이 4%라 할 때 6,400명이다. 2007년도에 직업성 암 인정 건수는 7건이다. 0.1%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건 직업성 암 인정기준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피해 노동자들의 치료와 생계의 기본적인 권리가 침해당할 뿐 아니라 이 피해에 대해 정부 정책으로 예방해야 하는데 이런 것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고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다.

수년째 계속해서 ‘삼성반도체 백혈병 산재 불승인’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이 일자 고용노동부에서는 「직업성 암 등 업무상질병에 대한 인정기준 합리화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성균관대 산학협력단[책임연구자 : 김수근(삼성전자 건강연구소 부소장, 성균관의대 산업의학과 교수)]에 주어 연구용역 보고서를 마련하였다. 이 보고서를 토대로 고용노동부에서는 현행 산재보험법 시행령에서 규정한 7개 법정 발암물질 중에서 5개 암의 인정기준을 완화하는 방안과 관련법에 8종의 발암물질을 추가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현행 산재보험법령 뿐만 아니라 개정하겠다고 하는 발암물질과 암 종류는 매우 제한적이다. 따라서 이런 ‘열거방식’의 기준은 이에 해당하는 경우 조금이라도 신속하게 인정하는 가이드라인 정도로 사용해야지, 기준에 없다는 이유로 직업성 암이 아니라고 판정하는 기준으로 쓰면 안 된다. 백혈병이 발생할 것이라 의심되는 발암물질, 의심물질까지 현행 산재보험법은 포괄하고 있지 못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발암물질뿐만 아니라 얼마나 노출되었는가, 노출 수준과 기준에 대한 문제점도 있다. 첨단 반도체 산업, 전자산업의 직업병은 제조업 평균보다 높다. 발암물질, 신경독성물질 등이 폭넓게 사용되는 것이 반도체 산업이기 때문이다. 검증되지 않는 많은 물질들이 사용되고 있는데, 무어의 법칙에서 밝혔듯 첨단 산업에서의 속도경쟁으로 제품을 몇 달 만에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측정해도 과거의 노출을 보여주지 않는 것, 과거의 노출을 예상하기 어려운 것이 문제다. 암은 수년간의 잠복기를 거쳐서 나타나는데 현재를 검증해봤자 유해물질의 노출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근로복지공단에서는 노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승인했다.


산재신청 과정상 어려움을 이야기해보겠다. 산재신청 접수 이전 단계와 이후로 나누어보면 해당 질병을 직업병으로 의심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정애정씨도 남편(고 황민웅씨)의 백혈병이 산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고 운이 나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주치의나 사업주로부터 이런 가능성에 대해 들은 바가 없기 때문이다. 직업병으로 의심한다고 해도 누구에게, 어디에 가서, 어떻게 신청해야하는 지를 알 수가 없다. 사업주에게 산재신청을 해야하는 줄 아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도 회사에 산재를 처리해달라고 요구했었다.

스스로 산재를 신청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서류도 너무 전문적이다. 또 산재신청 양식에 사업주 날인을 받게 되어있다. 왜 국가 기관에 산재를 신청하는데 사업주 날인이 필요한 건가. 피해 노동자는 대부분 치료 후 회사에 복귀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사업주 날인과정에서 산재를 포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건 당장 없어져야 한다. 이렇게 어렵게 접수를 해도 수많은 어려움이 남아있다.

청구권자가 유족인 경우에는 행정처리 과정을 알기 어렵다. 또 유족이나 아픈 노동자가 어떻게 이병에 걸렸는지 입증을 해야하는 데 유족인 경우에 반도체가 뭔지, 어떻게 일했는지를 이해하고 설명하기 어렵다. 청구권자가 재해 당사자여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반도체 산업에서 사용하는 첨단 화학물질의 구성이나 반응 부산물에 대해서도 알 수 없고 흔하게 쓰는 TCE와 같은 발암물질 조차도 김은경씨는 화학물질인지 몰랐다고 했다. 다른 사용 물질의 제품명도 당연히 모른다.
산재신청을 하게 되면 물질안전보건자료, 작업측정자료를 내놓으라고 하지만 사업주 관리하의 이런 자료들은 과거의 작업환경을 반영하지 못한다. 작년 서울대 산학협력단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회사조차도 그 성분을 직접 확인해보지 않았다.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거나 작업환경측정 대상 자체가 전체 사용물질의 28%에 불과했다. 그 나머지는 안전한가? 산재신청을 하면 공단의 자문의사나 업무상 질판위원들은 MSDS나 작업환경측정자료는 객관적으로 입증된 자료이므로 여기서 해당 질병의 원인 물질이 없으면 산재가 아닌 것으로 판정한다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자료가 객관적이라고 했지만 법원에서는 판결문을 통해 반기에 한 번씩하는 작업환경측정으로는 제대로 환경을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근로복지공단의 형식적인 출석조사도 문제다. 재해조사과정에서 무엇이 어떻게 조사되고 있는지에 대해 재해 노동자는 결코 알 수가 없다. 지금 다 밝히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대한 무엇이 사실인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재해노동자가 제대로 반박하고 개입할 수가 없다. 어떻게 일했는지는 재해노동자가 잘 아는 것 아닌가. 나중에 산재 불승인을 받고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잘못된 사실에 근거해 불승인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보공개청구에서도 공개되지 않는 것이 있다. 영업비밀을 이유로 삼성에서 어떤 물질을 사용하는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리스트만이라도 좀 달라고 했는데 말이다.


이런 현실에서 산재인정 받기는 너무 벅차고 어렵다. 산재인정기준이 대폭 완화되는 것만이 아니라 재해 조사과정에서 여러 가지가 고려되어야 한다. 재해 당사자의 참여, 사업주 제출 자료와 역학조사 자료의 투명한 공개가 필요하다.

<사전 예방의 법칙>

1992년 브라질에서 열린 ‘유엔 환경개발회의’는 사전예방원칙이 담겨있는 ‘리오선언’을 채택했다. 사전예방원칙이란 ‘완전한 과학적 확실성’이 없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환경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을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다.
화학물질 제조부문에서는 독성에 관한 자료가 없다는 것을 안전성의 증거처럼 여기곤 한다. 그러나 사전예방의 원칙은 안전성에 대한 근거가 불확실할 때 이를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을 없앰으로써 환경과 지역사회 보건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바꾸어냈다. 사전예방의 원칙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지침으로 쓰이며, 어떤 물질이나 화학물질이 안전하다고 증명되기 전까지는 그 물질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한다. (그 물질에 의해 발생되는) 결과를 감시하고, 경고에 귀를 기울이며 만일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자는 것이다.
‘환경보호기금’이 100만 파운드 이상 생산되는 규제대상 화학물질 100가지를 골라 조사해보니, 이 가운데 발암물질 검사를 받지 않은 물질이 63%, 생식독성 자료가 없는 물질이 53%, 신경독성에 대한 자료가 없는 물질이 67%, 면역독성에 대한 자료가 없는 물질이 86%, 그리고 어린이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자료가 없는 물질이 90%였다. 만성 독성에 관한 어떠한 시험도 거친 적이 없는 물질이 반을 넘었다.
화학산업이 계속 성장하고 충분한 시험을 거치지 않은 새로운 화학물질들이 시장에 도입됨에 따라 공공의 안녕을 위해 사전예방의 원칙이 강조되어야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법원의 경우, 유발 발암물질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던지 특정 물질로 국한하지 않고 그 물질들의 상호작용을 고려하고 있다. 대폭적으로 인정기준을 완화해야한다. 노출수준 등도 현행 산재법의 벤젠이 1ppm 노출기준 미만이라 하더라도 개개인의 특성이 다른 만큼, 현행 법 상의 노출수준 기준으로 인해서 산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불상사가 없도록 해야한다.

이런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령과 시행규칙 등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 특히 과거 시행규칙에 제한적으로 머물던 조항인 ‘업무상 요인에 의하여 이환된 질병이 아니라는 명백한 반증이 없는 한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라는 규정을 상위 법 조문으로 승격하여 법적 구속력을 갖게 만듦으로써 재해 노동자와 그 가족이 적극적으로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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