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1년 7월 - 지금 지역에서는]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한노보연 선전위원 흑무

6월 26일 토요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산재사망노동자 합동 추모제가 열렸다. 산재노동자협의회를 비롯한 추모제 추진위는 매년 7월 2일 고 문송면씨의 기일에 맞추어 산재사망노동자 합동 추모제를 진행해왔다. 쏟아지는 비와 몰아치는 강풍 속에서 진행된 이번 추모제에는 60여명이 함께 했다.

문송면씨의 형은 "시간이 흘러가며 송면이에 대한 기억이 나도 가물가물해져가는데, 아직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우리 송면이를 기억해주시고 이 날씨에 여기까지 오셔서 함께 해주시는 것이 너무 감사드린다"며 "우리 송면이와 같은 죽음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데, 일하다 희생되는 사람이 더 생겨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가족을 대표해 감사와 추모의 말을 전했다.

이 자리에는 얼마 전 부분승소한 삼성반도체/전자산업 피해자들의 가족도 함께 했다. 법원에서 산재인정 판결을 받은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처음에는 5명이었던 피해자가 이제는 반올림이 알고 있는 것만도 130명이 넘었다"며 "피해자와 가족들이 똘똘 뭉쳐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정애정씨는 "일부이지만 승소해서 너무나 기쁘다"며 "여전히 산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훨씬 많음을 기억하고 싸워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반올림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유정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씨는 "하루 12~18시간씩 노동,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아들을 백혈병 판정 이틀 만에 하늘로 떠나보낸 아버지를 얼마 전에 만났는데 고통스러워하는 가족을 보며 문송면, 황민웅, 김주현이 겹쳐졌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추모제는 "오늘 모인 우리가, 앞으로는 더 이상 산재사망노동자가 생기지 않도록 더 힘차게 싸우겠다는 결의를 담고 돌아가자"는 박영일 대표의 말로 끝이 났다. 추모제 후에는 모란공원에 잠들어있는 산재사망노동자들의 묘를 참배하는 순서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태풍에 문송면의 묘를 참배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문송면은 누구인가

문송면은 충북 태안 원북면에서 태어났다. “일하며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말에 그는 중학교 졸업도 미룬 채 서울로 상경, 1987년 12월부터 온도계와 압력계 제조회사인 협성계공에서 일을 시작했다.

밀폐된 작업실, 바닥에 깔린 액체 상태의 수은, 수은주입호수에서 뿜어져 나옹는 수은증기. 문송면은 협성계공에서 일한 지 2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때, “허리도 아프고 머리도 너무 아프고 이빨도 아프다.”고 호소했고 설이라 내려간 고향에서 결국 쓰러졌다.

그가 고통 받는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마지막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이 아이가 무슨 일을 했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작업환경을 살펴본 끝에 수은중독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회사에서는 시골에 살았으니 농약을 의심하라며 산재가 아니라 주장하였고 노동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계속된 투쟁으로 3개월 뒤, 노동부는 문송면의 수은중독을 직업병으로 인정했으나 몇 일 뒤 그는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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