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노보연 운영집행위원 이 진 우
‘조선업’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 2003년 이후 수주량, 건조량, 수주잔량 모두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조선강국’? 2008년, 한국 조선산업의 수출액이 431억 달러로 자동차, 반도체를 제치고 수출 1위에 등극했다는 소식에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실제 조선 현장은 ‘향(享)’연장이다. 불황을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소리소문 없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고, 하청에 하청이 거듭되는 구조에서 노동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감내하며, 중대재해에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노동자들의 죽음이 끊이지 않는 현장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금속노조 조선분과에 따르면 지난 8개월 동안 대우조선에서 7명, STX조선에서 8명의 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사망했다. 2007년에서 2009년까지 조선업 재해율은 평균 1.5~1.76%로 전체 산업 재해율(0.7%)의 2.4배에 달하고, 2007년 46명, 2008년 45명, 2009년 53명의 중대재해 사망자가 발생했다. 평균 5일에 한 명 꼴로 조선업 현장의 노동자가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금속노조 조선분과는 “생산-이윤 중심의 경영 시스템에 따른 생산 제일주의와 안전보건조치 방기, 수주 증가에 따른 노동강도 강화, 하청노동자(비정규직) 증가와 동반되고 있는 물량튀기를 비롯한 다단계 하청급증 및 안전 확보 없는 공기단축 속에서 재해예방은 뒷전인 상황”이라며 “재해예방시스템의 붕괴, 노동부의 사업장 지도․감독 소홀 등이 조선업종 중대재해의 원인”이라며 현 상태가 방치되면 조선소 노동자들은 대책 없이 죽거나 산재를 당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사진=프레시안 여정민)
현재 STX조선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는 2,000여명 정도이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는 4,500여명에 달한다. 전체 생산 공정의 80%를 비정규직이 담당하고 있으며, 정규직은 20%만을 담당하고 있다. 대우조선 역시 13,000여명의 정규직 노동자가 있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는 15,000여명에 달한다. 다른 조선 사업장의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비율도 206%에서 443%에 이른다.
지난 2010년 2월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2007년 1월부터 2009년 6월까지 조선업에서 발생한 사고성 중대재해 발생률이 원청 대비 사내하청에서 4.42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10년 10월 고용노동부가 제출한 ‘조선업종 사고성 중대재해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0년(7월까지) 조선업종에서의 사망 사고 중 81.3%가 하도급업체 소속인 것으로 조사되었고, 2009년에는 74%, 2008년에는 81%가 하도급업체 소속인 것으로 각각 조사되었다.
일을 빨리 많이 할수록 하청업체 몫이 늘어나는, 원청과 하청의 물량도급 구조와 원청에 소속된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더라도 위험한 일은 주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맡는 것이 조선업계의 현재 모습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중대재해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많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이다. 중대재해는 그나마 신고라도 되지만 중대재해가 아닌 경우 고용상 불이익을 우려해 신고조차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노동부는 2006년부터 조선업종에 한해 '자율안전관리제도'를 도입해 시행 중이어서, 사실상 관리 감독을 방치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 제도는 안전 시스템을 갖춘 대형 사업장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안전관리를 하고, 정부는 영세한 사업장의 안전관리에 집중한다는
(사진=프레시안 여정민)
취지로 도입됐다. 이 제도에 따르면 사업장 안전관리를 노사가 함께 평가하고, 우수업체로 선정되면 안전보건 감독이 면제되는데 안전보건 감독이 면제되면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는 한 근로감독관이 사업장을 출입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도는 '자체 평가 과정'에서 노조가 배제되고 사측이 허위사실을 기재하는 등 산재를 은폐하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 실제 3년 동안이나 노동부로부터 자율안전관리 사업장으로 지정되어 사업장 지도 감독이 면제되어 있던 STX조선에서 중대 재해가 발생하였다.
고용노동부 통영지청 관내 조선업체는 1,224개(2010년 12월말 기준), 전체 사업체는 11,328개소이다. 조선업 종사 노동자만 72,418명, 전체 노동자는 178,443명이고 세계 최고라는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통영지청 관내에 있다. 그러나 관할 지청의 산재예방지도과(산업안전과)에 배치되어 있는 근로감독관은 3명뿐이다. 그 중 조선업 재해예방 담당 근로감독관은 제조업 산재예방을 겸직하는 1명에 불과하다.
2010년과 2011년 대우조선과 STX조선에서 각각 2차례에 걸쳐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이 실시돼 1,000여 건에 달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례가 적발됐다. 사업주들이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해도 노동부는 ‘자율안전관리정책’을 내세워 관리감독과 처벌을 방기하고 있고 개선명령 정도의 경고에 머물고 있다.
조선업에서 2010년에 이어 2011년에도 산재사망사고가 계속 발생하자, 노동조합에서는 더 이상은 안 된다며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나섰다. 금속노조 조선분과는 “노동부의 잘못된 정책 및 근로감독관 인력부족, 사업장 지도 감독 방기는 조선업 호황에 따른 물량 폭주와 하청노동자 다단계 하청계약 급증, 사업주 안전조치 방기와 맞물리면서 조선소 산업재해예방체계의 완벽한 붕괴를 촉발했다”면서, 노동부 통영지청 앞에서 결의대회를 진행한 뒤 조선업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10대 요구사항을 발표하고 지난 7월 농성투쟁에 돌입하였다.
[조선업 중대재해 예방 및 산업재해 척결을 위한 금속노조 10대 요구]
1. 사내 하청 다단계 하도급을 금지 시키고 지도해 주십시오.
2. 터무니없는 하청업체 기성 삭감과, 안전확보 없는 공기 단축을 금지 시키고 지도해주십시오.
3. 고용노동부 지방관서 안전보건 근로감독관을 충원하고, 통영지청 조선업 담당 근로감독관 1인을 즉각 충원해 주십시오.
4. 사업장 재해예방시스템에 대한 종합적 지도 감독을 실시해 주십시오.
5. 동일․유사재해 방지를 위해, 산업재해 발생 사업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 조사하고 처벌해 주십시오.
6. 중대재해 다발 사업장 사업주를 구속해 주십시오.
7. 지청별 상시 점검반 구성! 조선업 사업장 안전보건 근로감독을 강화해 주십시오.
8. 결정권을 가진 진짜 사업주가 재해예방 책임질 수 있도록, 안전보건총괄책임자를 실제 사업주로 변경해 주십시오.
9. 생산만 중시하는 관리감독자 안전보건 역량강화 교육 실시해 주십시오.
10. 조선업 노‧정 산업재해 예방 대책기구 구성해 주십시오.
허울뿐인 조선업종 ‘자율안전관리제도’와 형식적인 노동부의 관리감독이 하청 노동자들의 죽음을 방관하고 있다. 원․하청 물량도급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내고, 자율안전관리제도를 즉각 폐기하는 것, 노동부의 제대로 된 관리감독을 강제하는 것만이 죽음의 향연을 멈출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