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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세상톺아보기
포항의 건설노동자는 무엇 때문에 싸우는가? 건설산업연맹 정책부장 최명선
포항지역 건설노동자들이 7월 1일부터 파업에 돌입하여, 7월 13일에는 포스코 농성을 진행하고, 농성 해산이후에도 82일간의 파업을 전개했다, 그 와중에 경찰폭력으로 하중근 열사가 돌아가시고, 68명의 구속자가 발생했고, 검찰은 58명 농성자 전원에게 유죄를 구형하고, 이지경 위원장의 3년 6개월 등 27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아직 포항지역 건설노동자들의 투쟁은 “진행 중”이다. 혹자는 임 단협 합의를 하고 현장으로 복귀한 마당에 무슨 투쟁이 진행형이냐고 말하겠지만, 일용직 고용형태를 갖고 있는 건설노동자의 경우 현장으로의 복귀 자체가 투쟁일 수밖에 없고, 건설현장에서 노동을 하면서 오히려 노사간의 투쟁이 본격화 된다. 그리고 아직도 하중근 열사 투쟁은 지속되고 있다.
1. 포항지역건설노동자는 왜 포스코로 간 것인가?
7월 13일 포항지역 건설노동조합 조합원 3,000여명이 포항의 포스코 본사를 점거 농성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발했다. “직원을 감금했다.” “포스코 본사 점거로 하루 500억의 손실이 발생한다.” “국가신인도가 추락한다”등 허황된 보도들이 터져 나왔다. 그야말로 “건설 노가다가 감히 포스코 거기가 어디라고 갔는가”는 식이었다. 여야 보수정당과 보수언론들은 “생떼쓰기 농성, 노사문제가 아닌 치안문제, 장마에 웬 파업”등 독설을 뿜어내면서 “당장 진압하라”고 난리를 쳤고, 한명숙 총리와 청와대까지 나서서 강제진압을 운운했다. 결국 포항지역건설노동자들은 농성 9일 만인 7월 21일에 자진해산 했다. 그러나 9일간의 농성 와중에 ‘도대체 포항지역 건설노동자들이 왜 포스코로 갔는가?’에 대한 이유나 진상규명은 언론에서 단 한 줄도 찾아볼 수 없었다. 농성해산이후에야 건설노동자들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 대한 실상이 일부 보도되어 건설노동자 문제에 대한 구조적인 원인과 해법 필요를 생색내기로 역설했으나, 그 역시도 포스코가 중심적인 분석 대상은 아니었다. 결국 분석 보도라고 내 놓은 것도, “건설산업의 구조적인 원인은 있지만, 포스코는 죄가 없고, 건설노동자는 건설산업의 구조적인 원인에 의한 노동조건 악화를 포스코에 생떼를 써서 해결하려 했다”는 식의 보도 태도로 전화된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포항지역건설노동자는 왜 포스코로 간 것인가?
첫째는 포스코가 하청 비정규 노동자인 건설노동자의 합법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지속적으로 파탄시켜 왔을 뿐 아니라, 합법적인 파업을 무력화하기 위한 불법 대체근로 투입의 당사자이자, 최종적인 지휘자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건설산업의 구조와 달리 플랜트 현장의 경우, 발주처-원청-하청-건설노동자라는 하도급 구조에서 발주처는 원청과 동일한 아니 오히려 더욱더 막강한 지배력을 갖고 있다. 포항지역 건설노동자가 노동을 하는 포항제철소는 하청 전문건설업체도 원청 포스코 건설도 아닌 바로 발주처인 포스코의 현장이다. 포스코의 포항제철소는 금속으로 분류되는 철강생산 파트가 있고 건설로 분류되는 공장신설과 설비 보수 분야가 있고, 이는 포스코의 한 현장내에서 작업이 이루어진다. 이에 포스코 현장의 출입, 공사단가, 노동시간, 화장실, 휴게실과 같은 기본적인 작업조건은 포스코의 직접적인 통제 하에 있다. 지난 2004년 파업 투쟁에서도 포스코는 포항지역건설노조 간부의 출입을 금지하여 포항지역건설노조가 하청 전문건설업체와 맺은 노조활동 보장의 단협을 무력화한 전례가 있다. 2006년 포항지역건설노조는 하청 전문건설업체와 임 단협 교섭을 진행하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합법 파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포스코는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 대체인력 투입계획서를 하청 업체들에게 요구하고, 실질적으로 불법 대체인력을 투입시켰다. 이 과정에서 출입증 발급과 통근 차량이라는 발주처의 권한을 이용하여 조직적이고 직접적인 개입으로 파업을 무력화 시킨 것이다. 또한, 후에 발견된 포스코 내부 문건에 의하면 포스코가 직접 포항시장, 언론, 국회의원들을 만나 포항지역건설노조 파업 대책을 수립하고 총괄 지휘했다. 포스코에서 직접 작성한 내부 자료에는 하청업체와 직원을 동원하여 포항건설노조를 고발하고, 노조의 파업에 대한 공격 여론을 조성하고,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며 마지막 단계에서는 단협 해지를 통보하는 등의 단계별 전략과 노조 무력화를 위해 외국인력 도입을 추진이 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단계별 전략은 그대로 실행되었다. 7월 11일 서울 포스코 본사가 임 단협의 원만적인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한 약속은 이틀 후 13일 포스코 통근 버스를 이용한 불법 대체인력 투입으로 완전 휴지조각이 되었다. 포항지역건설노조는 포스코 정문 앞에서 불법적인 대체인력 저지 투쟁을 하다가 경찰에게 밀려 나왔고, 조합원들은 포스코에 항의 방문을 하게 된다. 그러나, 포스코는 사과는커녕 언론을 동원하여 포스코가 노동자들에 의해 점거되었다고 대대적인 보도를 해댔다. 결국 14일까지 본사 앞 잔디밭과 포스코 로비 등에 있던 조합원들은 전국에서 투입 된 공권력에 본격적인 포스코 농성을 진행하게 된다. 어찌 보면 포항지역건설노동자들의 포스코 농성은 우발적인 농성 투쟁이었으나, 포스코는 수개월전부터 계획적으로 포항지역건설노조 죽이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둘째는 건설산업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발주처인 포스코가 실질적인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하도급 구조로 이루어지는 산업에서 발주처와 원청은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가장 유력한 당사자가 된다. 포스코는 2000년 이전에는 공기업이었다. 공기업으로서 설계가의 98% 선에서 발주를 해왔고, 원청에서 하청으로 내려가는 도급금액이 85%를 보장해야 하는 기준이 적용되는 기업이었다. 그러나, 민영화 이후에 포스코는 공사자체의 성격과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설계가의 77% 선에서 발주를 했다, 그리고, 그룹계열사인 포스코 건설에 거의 수의계약처럼 공사를 넘겼고 이 과정에서 포스코 건설은 15% - 20% 선의 이윤을 챙기고 하청으로 넘긴다. 이러한 다단계의 과정을 거치면서 실제 공사단계에서는 설계가의 40% 미만으로 책정된 공사비를 갖고 공사를 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다단계 구조에서 공사비가 잠식되는 건설공사에서 포스코가 발주 금액 자체를 하향시킨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포스코 노동자들은 전국에서 동일한 직종의 평균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게 되었다. 같은 공사를 해도 여수나 울산보다 30%의 임금이 낮고, 같은 지역내에서도 다른 발주처 공사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이다. 다단계 구조에서 이미 저가로 공사를 받은 하청업체들은 건설일용노동자의 임금 인상 요구에 “낮은 공사비로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 아예 공사를 포기하겠다”며 나왔다. 임금뿐 아니라 해고에 있어서도 포스코는 출입증 발급이라는 미명하에 채용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이번에도 포항의 하청업체와 노동조합이 임 단협을 합의하고 현장 복귀를 했건만 포스코는 90명을 포스코 영구 출입 금지자로 선정했다. 올해 봄에는 광양의 포스코 현장에서 직업병이 발생하여 근로복지공단이 선임한 의사가 역학조사를 하러 방문했으나, 포스코가 출입을 일시 거부한 경우도 있었다. 광양에서는 건설노조가 하청과 산업안전 교육을 하는 것을 임 단협으로 체결했다 그러나, 포스코에서 노조간부 출입을 금지해서 포스코 정문을 사이에 두고 2천명의 조합원은 담장 안에서 노조간부는 담장 바깥에서 안전교육을 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것을 놓고도 포스코는 건설노조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발주처 일뿐 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포스코 현장에서 일해 온 포항지역건설노동자들을 과연 누가 실질적인 주인인가 라는 것을 십수년의 노동에서 온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현장을 단 한번도 와보지 않은 정부, 정치인. 언론만이 포스코의 발주처일 뿐이라는 주장에 헷갈려 하고 있을 뿐이다. 아니 실제 사실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포스코를 가려주고 싶었던 욕구가 가장 크게 작동했을 것이다. 공기업 민영화의 선두주자이자 외국자본이 60%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는 포스코. 파이넥스라는 신공법과 윤리경영으로 가장한 포스코의 환영 속에 포항지역의 건설노동자가 어떻게 일하고 죽어가는지는 철저하게 은폐되고 짓밟혀 졌다.
셋째, 포항지역건설노동자들의 임 단협 요구는 포스코가 실질적인 해결의 당사자일 수밖에 없다.
올해 포항지역건설노조의 단협 요구의 핵심은 ‘8시간 노동과 주5일 토요 유급화, 시공참여계약 폐지, 무분별한 외국인력 도입 중단’ 등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는 하나 하나가 포스코와 직결될 수 밖에 없다. 주 5일제 토요일 유급화는 건설노동자에게 있어서는 생존권적인 요구이다. 2006년 7월부터 주5일제 적용대상이 10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되면서 포항의 전문건설업체들은 모두가 적용대상이 된다. 더욱이 포스코는 2005년부터 이미 부분적으로 주 5일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건설일용노동자들은 장시간의 육체노동을 하는 업종이다. 어찌 보면 그 어떤 직종보다 주 5일제가 절실히 필요한 업종이다, 그러나, 일용직 고용이기에 임금보전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으면 주 5일제 실시로 인해 30% 이상의 임금 삭감이 오게 된다. 그러기에 건설산업과 같은 도급 구조에서 발주처가 주 5일제 실시로 인한 비용보전을 해주지 않으면 하도급 전문건설업체는 지불능력이 없다. 이미 공사계약을 하면서 공사단가를 정하기 때문이다. 이에 공공공사의 경우에는 주 5일제 적용대상이 되면 공사기간과 비용상승을 다시 계약금액에 반영할 수 있는 회계예규가 제정되기도 했다. 결국 주 5일제 실시와 토요유급화는 발주처의 계약조건 변경이 핵심적인 해결책인 것이다. 주요한 요구중의 하나였던 시공참여 계약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포스코 현장에서 목공철근분회의 경우 다단계 하도급과 시공참여계약으로 인해 장시간 노동, 임금 체불, 단협거부와 해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건설현장에서 하도급 과정은 최종적으로 발주처에게 통보하게 되어 있고, 발주처에게 총괄적인 관리 감독 권한이 있다. 포스코 현장에서의 불법 다단계 하도급과 그로인한 열악한 노동조건 또한 결국 발주처인 포스코와 연동되어 있는 것이다. 외국인력 부분에 있어서는 2005년 여수산단의 34개 공장장협의회에서 노조무력화의 공작으로 검토되었고, 2006년 3월 실제 투입 추진 문건이 발견되었다. 여수산단에서의 외국인력 도입을 위해 GS 칼덱스가 여수시장을 직접 면담하기도 했다. 포스코에서도 이후 발견된 내부 문건에서 노조무력화의 방안으로 외국인력 도입이 검토되었다. 결국 노조파괴공작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외국인력의 도입이 포스코가 직접 개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2. 하중근 열사여! 열사여!
7월 13일 포스코 농성이 진행되면서 단전, 단수와 음식물 공급이 중단되었다. 이에 가족들은 “밥이라도 먹여야 될 거 아니냐”며 울부짖었고, 7월 16일 포스코 농성자에게 인권을 보장하고, 강제진압을 하지 말라는 합법 평화집회가 열렸다. 그러나, 경찰은 맨몸의 조합원들과 가족들에게 방패와 곤봉과 소화기를 휘둘러 대는 진압을 감행했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 진행된 집회에 소화기를 연막탄처럼 뿌려대며 기습 진압을 했고, 하중근 열사는 머리가 터지고, 갈비뼈가 부러진 채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결국 하중근 열스는 16일간을 뇌사상태로 있다가 8월 1일 결국 유명을 달리 했다. 포항에서 태어나 포스코 현장에서 십여 년을 일하던 건설노동자가 평화집회에서 경찰에게 맞아 죽은 것이다. 7월 16일 당시에만 16명의 조합원이 방패에 얼굴을 가격 당했고, 넘어진 조합원의 손이 방패에 찍혔다. 7월 19일에는 농성 조합원의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되었다. 임산부임을 수차례 알렸음에도 배를 걷어차여 유산을 한 조합원가족은 경찰의 무마용 협박과 회유로 지금껏 고통받고 있다. 경찰의 폭력은 하중근 열사의 사망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8월 4일 집회에서는 살인적인 물대포를 동원해서 집회에 참가한 조합원들이 각막이 파열되고, 허리와 머리 부상이 속출했다. 8월 9일 집회에서는 야간까지 계속된 경찰의 진압이 시민들에게까지 폭력을 휘두르는 사태로 번졌다.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포항으로 가는 전남동부 건설노조 조합원들의 차량은 고속도로에서 밤새 막혔고, 여수건설노조와 울산건설노조 조합원들의 집회 참가 차량도 막혔다. 포항투쟁과정에서 부상자만 300여명이 넘게 발생했다. 그러나, 하중근 열사를 때려죽인 경찰은 자기들 스스로가 수사본부를 차려 수사를 진행했다. 유족들의 부검 결과 공개의 요구도 거부하고, 부검결과와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대구에서 진행하면서, 기자들과 유족들이 기자 브리핑장의 출입조차 막았다. 심지어 경찰은 하중근 열사의 사망에 조시를 썼던 시인조차 소환장을 발부하고, 민주노총 조준호 위원장과 건설연맹 남궁현 위원장에게도 소환장을 5차례-7차례 발부했으며, 집회에서 사회를 본 건설연맹 유기수 사무처장과 방송차량에서 취재를 하고 있던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과 세계’ 채근식 편집국장까지도 구속했다. 그리고 포항건설노조 간부 전원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해서 그야말로 포항지역건설노조 간부와 민주노총 간부 싹쓸이를 하고 있다. 하중근 열사를 비롯한 임산부 폭력, 경찰의 폭력진압에 대해서 5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포항공대위는 진상조사단을 구성하여 진상조사를 했고, 현재 국가인권위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광화문 열린공원에서는 진상 규명 농성투쟁이 지속되고 있다.
3. 66명 구속에 27명 실형선고, 16억 손배소와 90명 포스코 출입금지. 참여정부 초유의 탄압에도 건설노동자가 계속해서 끝까지 싸우는 이유는?
포스코 농성 자진해산 후에 언론은 일제히 “18년 포항지역건설노조 와해”로 보도했다. 그러나, 농성 자진해산이후 58명이 구속된 상황에서도 포항지역건설노조 조합원 2,500명은 다시 모였고 파업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농성투쟁으로 지도부가 전원 구속된 이후 2차 지도부를 구성했고, 2차 지도부가 전원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다시 3차 지도부를 구성했다, 현재 포항지역건설노조는 4차 지도부를 구성해서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사상초유의 구속과 실형선고, 포스코의 16억여원의 손배소송과 90명의 포스코 출입금지 조치가 내려졌으나, 포항지역건설노조는 현장복귀 투쟁과 하 중근 열사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2,000여명의 건설노동자들이 끈질 긴 투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건설노동자들이 검찰, 경찰, 정치권, 언론을 총동원한 고립작전과 융단폭격에도 흩어지지 않고 투쟁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건설노동자의 한과 꿈이 오로지 노동조합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포스코 농성에는 70살이 넘는 건설노동자가 끝까지 농성 투쟁을 진행했다. 단전과 단수에 컵라면과 초코파이로 버티면서 건설노동자들은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절절이 외쳤다. 새벽 5시부터 일어나 7시부터 10시간을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만성적인 임금체불, 400여명 당 1개꼴인 화장실. 식당도 없이 먼지구덩이에서 빗물에 도시락밥 말아 먹는 현실, 휴게실이 없어 현장 여기저기서 쓰러져 쪽잠을 자고, 하루에도 몇 명씩 죽고 다치는 죽음의 건설현장… 복마전 같이 얽히고설킨 다단계 도급 구조의 건설현장에서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건설노동자의 삶을 이제는 더 이상 계속할 수 없다는, 후배 건설노동자에게 이런 현장을 그대로 이어 줄 수는 없다는 50대 건설노동자의 한이 서려있는 투쟁이 바로 포항지역건설노동자의 투쟁이고, 모든 건설노동자의 투쟁이다. 정부도 자본도 언론도 내팽개쳐 두고 있는 건설노동자의 삶은 건설노동자 스스로 모여 투쟁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는 것은 지난 18년간의 포항건설노조 역사에서 확인된다. 정부도 건설현장의 관행이라며 포기한 다단계 하도급을 현장에서 추방하기 시작한 것도 노동조합이요, 노동부도 외면한 건설노동자의 주차수당, 초과근로수당, 부당해고 금지를 현장에서 시작한 것도 노동조합이었다. 살인적인 건설현장의 노동조건을 개선한 것은 어느 누구도 아닌 건설노동자 스스로의 투쟁과 노동조합이었다.
포항지역건설노동자는 파업이 종료되었음에도 고용을 이래저래 회피하고 있는 건설사업주들에 대한 강력한 현장 복귀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하 중근 열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농성과 투쟁도 지속할 것이다. 자본과 정권의 극단적인 탄압은 지속되겠지만 그러나 결코 건설노동자의 한과 꿈이 서린 투쟁을 꺾을 수 없다. 오히려 건설노동자의 투쟁은 생존권의 파탄에 몰려 메마를 대로 메말라진 건설현장에 들불처럼 번져 나갈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