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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대법원이 성전환자의 호적정정소송과 관련하여 변론을 열었던 사실은 이 점을 잘 반영한다.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변론까지 열며 고심하는 대법원의 모습은 분명 지난 시대의 경직된 법률기제들과는 전혀 다른, 열린 법원의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하지만 좋은 인상의 이면에 숨은 생체권력의 또 다른 얼굴은 오히려 우리 시대에 성숙한 성담론 자체를 퇴행시키기에 충분한 위력을 담아낸다.
대법원은 이 변론에서 다양한 의견수렴이라는 맥락에서 찬성 측 전문가의견을 비뇨기과의사로부터 구하였다. 그리고 “성전환증은 질병이다”라는 성전환의 병리학적 설명과 성전환수술은 “정신과 의사의 진단을 받은 다음 법원에서 전환을 결정”한 연후에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료 정책적 의견으로 이 변론의 한 축을 마감하였다.
문제는 대법원이 굳이 이러한 “의학적” 의견으로써 “찬성 측” 의견을 대체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성적 지향이라는 인권의 문제가 정상과 비정상, 질병과 치료를 준별하는 의학적 담론에 함몰되어 버림에 있다. 여기서 의학은 법의 세계와 정확히 일치한다. 성염색체를 기준으로 모든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양분한 채 중간의 성이나 변경된 성은 물론 성역할로부터 ‘벗어난’ 성까지도 법의 영역밖에 있거나 무가치한 존재로 인식하고자 하는 법원의 입장은 바로 그러한 성적 지향들을 질병으로 포착하고자 하는 의학의 담론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남근을 떼고 붙이고 하는 일들이 그 주체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성염색체나 뇌구조의 “이상”으로 인한 성전환“증후군”이 되거나 혹은 성별의 이분법적 구획에 기반한 법적 안정성을 침해하는 일탈행위가 되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국가인권위원회법에까지 명기되어 있는 “성적 지향”의 인권은 그대로 성적 소수자의 고통으로 전화되는 것이다.
결국 대법원의 이번 변론과정은 성전환의 문제에 관한 한 전향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고착적이다. 성전환의 법리를 풀어나감에 있어 푸코의 말처럼 “어떻게 자기의 성을 체험하고 자기의 성으로 살아가는가”를 그 핵심적인 주제로 삼지 못하고 오로지 그것을 병리와 치료의 관점에서만 접근함으로써 성을 억압이나 금지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입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질병/일탈의 예단으로부터 벗어나 “진실”에 보다 가까이 가고자 노력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진실에 가까이 가고자 노력하여야 한다.”는 미노의 요청을 보다 진지하게 수용하는, 그래서 실질적인 인권보장의 첨병이 되는 대법원의 모습은 언제나 목도할 수 있을까?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