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더 이상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배고픔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
평화가 무엇이냐 -조약골, 문정현 작사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더 이상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배고픔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
평화가 무엇이냐 -조약골, 문정현 작사
평화가 무엇이냐? 가장 쉬운 대답은 전쟁과 폭력이 없는 세상! 그리고 노래가사처럼 쫓겨나지도 빼앗기지도 군림하지도 않는 세상일 것이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평화는 '자연스러움' 이구나 생각한다. 그런데 평화롭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평화로 가는 길에 들어서면 그 자연스러움은 이미 자연스럽지 못하다. 물질적 욕망에 의한 인간성의 파괴, 자본과 국가안보의 논리 아래 크고 작은 다양한 폭력이 일상을 위협하는 오늘, 어떻게 평화주의를 실천할 수 있을까? 체제의 부조리한 권력과 질서에 대한 강요를 거부하는 것이 그 시작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전쟁없는 세상'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통해 평화를 위한 직접행동을 실천한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란 자신의 종교적, 도덕적, 정치적 신념에 의해 병역 혹은 군사훈련을 거부하는 행위이다. 병역거부자 중엔 무기사용에 반대하는 집총거부부터 군사훈련이나 복무를 반대하는 사람, 때로는 국가에 의한 강제징집을 반대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16세기 유럽의 기독교 메노교파에 의해 시작돼 17세기 영국 우애회 교파, 18세기 독일 형제교회 교파와 러시아 듀코보르 교파로 확산되면서 등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로 종교적 이유에서 비롯되었던 병역거부는 2차대전 후 냉전체제에 들어서면서 핵무기에 대한 자각, 강대국의 제국주의적 횡포에 대한 자각과 결부되면서 비종교적(세속적) 병역거부로 확대되었다(http://www.corights.net). 한국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역사는 일제시대 신사참배 거부 및 징병거부로부터 시작되어 본격적으로는 한국개병주의에 입각한 징병제도가 정착하면서 이루어졌다. 분단 이후 만여 명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병역거부로 인해 수감되어 왔으나, 한국사회에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2001년 1월 <한겨레21>을 통해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처벌을 받고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에도 분단현실과 안보에 대한 우려,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이 갖는 사회적 위치로 인해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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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기념 평화난장 '죽음의 퍼포먼스'의 한 장면 | 사진제공 시민의신민 김고종호 기자 |
양심을 나누는 사람들에서 전쟁없는 세상으로
2000년 가을 서울 국제 '아셈2000민간사회포럼'에서 해외활동가들을 통해 대만의 대체복무제 시행이 국내에 알려졌다. 이 소식을 접한 몇몇 단체들은 군 문제에 대한 논의를 진척시키기 위한 활동과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한 법률적 지원을 시작했다. 2002년 2월, 36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가 발족하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 및 국제사회에 한국의 인권상황을 알려나갔다. 한편, 개인적 혹은 정치적 동기로 인한 병역거부를 고민하던 사람들은 '양심을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고 판단되어 비공개로 모였다. '양심을 나누는 사람들'에서는 병역거부나 대체복무에 대한 배움과 정보교류, 서로의 고민을 나눴다.
2001년 12월 불교신자이면서 평화운동가인 오태양씨의 병역거부 선언 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주요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었다. 이를 계기로 병역거부가 특정종교인들에 의한 비상식적인 행동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불식되었고 헌법 제19조에 의거 보호받아야 할 권리로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일반인에게 병역거부 문제가 알려지면서 모임을 공개로 전환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병역거부운동과 관련하여 연대회의가 존재하지만 병역거부를 실제 자기행위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주체가 된 단체를 만들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2003년 5월 15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와 지지자들의 모임인 '전쟁없는 세상'이 결성되었다.
전쟁 없는 세상으로 한 걸음
'병역거부'라는 구심점으로 형성된 만큼 병역거부 관련 활동이 핵심이다. 병역거부자 및 수감자 지원,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사람의 상담, 병역거부권 인정 및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입법활동이 주요 사업이다. 초기에는 사회적으로 여론을 형성하는 문제가 우선했다. 인간본연의 권리로서의 병역거부를 알려내고 인식변화를 꾀할 수 있는 자리는 어디든 찾아갔다. 다양한 행사와 집회에 참여해 홍보·캠페인을 진행하고 병역거부를 다룬 다큐멘터리 상영회와 간담회 등을 기획했다.
병역거부를 선언하면 경찰조사를 시작으로 지난한 재판과정이 반복된다. 병역거부선언부터 수감까지의 과정, 후원회 구성과 후원회의 역할에 대한 설명 그리고 수감자들에게는 사회로부터의 단절을 최소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회 소식과 운동진행상황을 전달한다. 또한 수감자들이 처한 문제들을 경청하고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뿐만 아니라 출소 이후를 대비할 수 있도록 심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이야기는 자연스레 상담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내방자들은 군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만큼 수감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병역거부 선언 후 처하게 되는 상황과 사회적 불이익 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다보면 때로 상담은 병역거부를 말리는 형국이 되고 만다. 그래도 병역거부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이해 속에서 결정해야만 '자기결정권'으로서의 의미와 신념을 유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때문에 전쟁없는 세상은 가능한 모든 상황을 설명한다. 그 후 병역거부에 대한 의사를 굳히면 병역거부자가 거치게 될 통과의례들에 대한 조언을 시작으로 끈끈한 연대가 시작된다.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입법활동은 병역거부가 사회적 의제로 등장한 이래 연대회의를 중심으로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전쟁없는 세상은 연대회의 구성단체로 참여하면서 함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04년 8월 26일, 병역법 88조 제1항제1호 위헌제청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선고하였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입법권고를 하였다. 병역문제의 사회적 민감도를 감안하더라도 매년 600여 명의 사람들이 구속·수감되는 현실에 대한 개선의지를 담은 정치적 판단이었다. 이에 지난 2004년 9월 임종인 의원과 11월 노회찬 의원의 대표발의 「병역법중개정법률안」이 각각 국회 소위에 상정되었다. 논의와 공청회 진행으로 진전의 기미가 보이더니 지지부진한 상태로 2005년 정기국회가 마무리되었다. 그 가운데 동년 12월 16일 국가인권위원회도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헌법] 제19조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8조의 양심의 자유의 보호 범위 내에 있음과 병역의 의무가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한 국민의 필요적 의무임을 확인하였으며, 국회의장과 국방부 장관에게 양심적 병역거부권과 병역의무가 조화롭게 공존하게 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도록 권고하였다.
호의적 분위기를 몰아 4월 임시국회 일정에 맞추어 전쟁없는 세상은 인사동에서 국회의원에게 엽서보내기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런데 임시국회에서는 표결에 들어가기도 전에 의원들이 퇴장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하여 9월 정기국회로 연기되었다. 국회의원에 대한 개별로비도 계획했으나 만남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다시 9월 정기국회를 준비하며, 국회일정과 분위기를 파악하고 그때그때 적합한 캠페인이나 행동을 조직해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병역거부를 넘어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평화주의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 실천은 인권문제에 대한 논란을 넘어 비폭력적 평화운동, 평화주의적 삶의 지향으로 확대되고 있다. 전쟁없는 세상의 활동가들은 반전·반자본의 정치적 의도에서 병역거부를 선언했든 혹은 병역거부자들을 모조리 전과자로 만드는 불합리한 제도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시작했든 이후 ‘평화’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고 한다. 비폭력평화운동에 대한 이해와 운동의 폭을 확장하기 위해 전쟁없는 세상은 평화 관련 세미나와 함께 해외의 평화운동 사례 및 이론을 번역하는 활동도 병행한다. 이를 통해 축적된 자료들은 전쟁없는 세상에서 발행하는 소식지와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과 사회에 소개된다. 현재 상시적인 해외자료 번역팀의 활동은 중단된 상태지만 필요에 따라 팀을 구성해 번역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평화난장 진행
매년 5월 15일은 세계병역거부자의 날로 병역거부운동 단체와 개인들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행사가 진행된다.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에는 병역거부자에 대한 탄압이 심한 특정국가 혹은 지역에서 국제적인 모임과 직접행동이 진행된다. 세계 각국에서는 동시에 각 나라상황에 맞는 다양한 행동을 전개한다. 한국에서 처음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행사가 열린 것은 2002년으로 올해로 4회째를 맞는다. 작년의 경우 1993년 에디오피아로부터 독립한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에리트리아가 공통이슈였다. 1994년부터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에리트리아는 다른 나라와 외교관계를 전혀 맺고 있지 않아 병역거부에 따른 인권유린 실태를 알 수 없었다. 탈출한 사람들을 통해 알려진 바로는 병역을 거부할 경우 사막 한가운데의 컨테이너 박스에 감금된다고 한다. 10년 간 감금된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에리트리아가 다른 나라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지 않아 국제적 압력도 별로 없을뿐더러 대사관도 없어 활동이 더욱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이 날의 행사는 에리트리아의 현실을 한국사회에 고발하는 수준에 그쳤다. 올해는 미국의 병역거부자들과 이라크 전쟁의 탈영병들이 이슈로 선정되었다.
전쟁없는 세상은 미국을 방문하여 해당지역의 직접행동에 참가하려 하였으나, 병역과 관련한 비자발급문제로 막히고 말았다. 대신 지난 13일 대학로에서 열린 '평화난장'에 집중했다.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기념한 평화난장은 죽어가는 이라크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퍼포먼스 '죽음'으로 시작됐다. 퍼포먼스는 대학로를 지나는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성공적이었다. 이후 병역거부로 현재 항소심을 진행중인 고동주씨, 베트남전 당시 미국에서 병역거부를 했던 하유설 신부님의 발언 및 참가단체들의 활동소개 그리고 평화의 노래들이 이어졌다. 평화난장에는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이라크반전평화팀, 경계에서, 갯살림 등 환경·평화단체들이 참여해 시민들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병역거부자의 이야기, 부스를 설치한 단체의 외침 하나하나 소중하고 의미 있었다. 그러나 워낙 소수정예(?)의 인원과 심플한 진행 탓인지 퍼포먼스만큼 이목을 집중시키지 못해 안타까웠다. 15일에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에서 병역거부를 했던 밥 거버(Bob Gerber) 목사, 대체복무로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계 독일인 권대니엘 그리고 고동주씨, 삼국의 병역거부자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간담회가 있었다. 독일인이 한국에서 병역거부를 한다는 말에 다시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대체복무를 시행하는 나라 중에는 자국 내에서 복지관련 업무를 하기도 하지만 외국에서의 구호활동도 인정된다고 한다.
비폭력행동에 대한 다양한 실천과 모색
병역거부 당사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전쟁없는 세상의 인적 구성에는 변화가 많다. 작년까지는 책임활동가가 6명이었다. 이 중 이용석씨와 김태훈씨가 지난 12월 1일 병역거부를 선언, 구속이 예상되어 사무실 운영과 관련된 사항들은 점차 정리했다. 그래서 현재 4명의 책임활동가가 상근 중이다. 새로운 사람이 많이 결합하기도 하고 갑작스런 수감과 출소로 인해 항상 변동이 많은 편이다. 전쟁없는 세상 결성 이후 대략 반년간은 사무실이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모여 각자의 활동과 진행상황, 법률적인 고민을 나누는 수다스런 회의가 전부였다.
2004년 1월 1일 마련한 사무실이라는 공간은 활동내용이나 방식이 체계를 잡아가는데 도움이 되었다. 활동은 자유롭게 하지만 공적 공간을 통한 상호교류와 정보의 축적으로 인해 안정적인 활동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전쟁없는 세상은 이 사무실 운영과 관련된 경상비 외에는 큰 지출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재 100명의 회원 중 20여 명 남짓의 회원들이 내는 후원금만으로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초기 회비납부율이 40~50% 수준이었는데, 자동이체를 이용하다보니 갱신이 용이하지 않았다고 한다. CMS이용을 고려하며 재정문제에 대한 고민을 미루던 중 (재)인권재단 사람의 '재정발전소'를 통해 CMS이용이 가능해졌다. 이에 대한 홍보를 준비 중이며 차후 회원확대와 재정확보에도 관심을 기울여 갈 예정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사회문제로 드러낸 초기 멤버들이 출소하면서 다시 모이고 있다. 이들의 경험과 도전은 전쟁없는 세상의 역량과 경험재로 축적되어 왔다. 이를 바탕으로 전쟁없는 세상은 '병역거부'를 넘어 비폭력행동의 실천주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병역거부’하면 항상 그 계기가 궁금하다. 감히 도전하기 어려웠던 신성(?)한 군대,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군사주의 문화. 일등국민이 되기를 외면하고 스스로 소수자를 자처할 때는 뭔가 획기적이면서 모두가 공감할 가공의 사건이 있었을 거라는 추측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종교인들은 계기를 설명하기가 쉬워요. 종교적 계율이나 신념… 그런데 우리는 설득력이 없다네요. -_-';;” 나동혁 책임활동가가 답답함을 토로했다. 돌아오며, 끊임없이 나와 다른 타인의 양심과 평화적 신념을 자꾸 검증하려 드는 나를 본다. 전체주의, 군사주의 문화 속에 푹~ 절어 버린 것은 아닌지….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5월 13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기념 평화난장 '죽음의 퍼포먼스'의 한 장면 | 사진제공 시민의신민 김고종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