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나이지리아 무장단체에 의해 한국 건설노동자 5명이 납치된 일이 있었다.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나이지리아 니제르 델타 지역 주민들에게 석유는 재앙이자 악몽이다. 주민들의 생존권을 땔감삼아 바비큐 파티를 벌이는 자본의 탐욕, 그리고 그것에 대한 그들의 분노와 절망의 이야기.
지금은 사람들도 별 관심 없고 당사자인 가수들도 심드렁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제가 어릴 적엔 문화방송의 10대 가수상, 그 중에서도 최고 인기가수상을 받는다는 것은 한국의 대중가수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였습니다. 특히 80년대 초반, 가요계의 작은 거인 조용필과 혜성처럼 나타난 이용의 가수왕 경쟁은 명승부 중에 명승부로 기억되는데요,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70년대 후반의 두 여가수, 혜은이와 이은하의 맞대결을 최고의 라이벌 전으로 꼽고 싶습니다. 전 재산 29만원으로도 꿋꿋이 잘 살고 계신 ‘그분’께서 광화문 네거리에 탱크 몰고 나타난 뒤에 태어난 독자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그때 그 둘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어서 이은하가 “멀리이~♪ 기적이 우네”하면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두 손가락을 하늘로 찔러댔고, 혜은이가 그 낭랑한 목소리로 “당신은 모르실거야~♬”하면 수많은 남학생들이 “누나 마음 내가 왜 몰라” 하면서 쓰러졌다죠. 믿거나 말거나.
그 때문에 혜은이 같은 최고 여가수의 대중적 인기는 군사독재정권의 치적과 개발 사업을 홍보하는 도구로도 애용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혜은이의 노래들이 바로 ‘제3한강교’(다리를 예찬), ‘뛰뛰빵빵’(이건 고속도로 예찬), ‘서울의 찬가’ 등이었는데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긴 했지만 그 중에는 ‘제7광구’라는, 대중가요라고 쳐주기엔 정말 민망함 그 자체인 노래도 있었습니다. 그럼, 대체 제7광구가 뭔지 듣도 보도 못한 분들을 위해 마침 지난 5월 31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같은 제목의 칼럼의 일부분만을 인용해보도록 하죠. “1960년대 후반 박정희 정권은 대륙붕 유전개발에 눈을 뜬다. 68~69년 미국 해양연구소와 함께 석유탐사를 벌인 뒤 나온 ‘에머리 보고서’는 고무적이었다. … 박 정권은 다각적 검토를 거쳐 70년 5월30일 이곳을 한국 대륙붕이라고 선언하는 대통령령을 공포 … 독재정권의 과대 포장이 곁들여지며 국민들로 하여금 한때 산유국 꿈에 젖게 하기도 … 그러나 79~88년 7개공을 시추하고, 89~92년에도 탐사를 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 지난 주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이 일본 경제산업부 장관에게 공동시추를 다시 제의했다. 공동시추가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실망하더라도 희망마저 버릴 건 없다.”
탐사를 벌인 지 40년이 다 돼 가도록 한반도와 그 해역에서 석유가 난다는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지만, 이 땅의 많은 사람들에게 산유국의 꿈은 아직 “실망하더라도 버릴 수 없는” 것인가 봅니다. 변변한 지하자원도 없이 근면과 끈기만으로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을 이룩했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한국민들이 ‘여기에다가 석유만 쏟아져 나와 준다면…’하는 욕심과 미련이 생기는 것은 인지상정으로 이해해야 할까요. 아무튼 우리는 흔히 석유가 펑펑 나는 땅을 ‘축복받은 땅’이라고 하고, 그런 나라 사람들을 부러워하곤 합니다. 그러나 ‘검은 황금’으로 불리는 석유가 오히려 재앙이자 악몽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석유 때문에 미국과 영국의 침공을 받아 나라 전체가 쑥대밭이 된 이라크 민중들? 네, 맞습니다. 그러나 비단 이라크인들 뿐만이 아닙니다. 이번 호에서는 나이지리아의 니제르 델타(삼각주) 주민들 이야기를 준비해 봤습니다.
![]() |
켄 사로위와, '오고니의 9인사건'의 대표적인 인물로 다국적 석유기업에 평화적으로 저항하다 교수형에 처해진 시인이다. |
석유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
여러분들은 지난 6월 7일, 멀리 아프리카에서 난데없이 날아든 속보에 한 때 가슴 철렁했던 일을 기억하시나요? 바로 나이지리아 남부 유전지대인 니제르 델타 지역의 포트 하커트 항 주변에서 한국의 대우건설 노동자 5명이 현지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됐다는 소식이었죠. 다행히 억류된 지 이틀 만에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풀려나 걱정하던 가족들과 국민들이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론보도에서는 그 지역에서 외국인들에 대한 납치 사건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고 합니다. 올 해 1월 11일에 4명, 2월 18일에 9명, 5월 11일에 3명, 6월 2일에 8명의 외국인 기술자들이 차례로 납치됐다가 풀려났고, 지난 5월에는 미국인 한 명이 피살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송유관 파괴, 유전시설과 선박 폭파 등도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합니다.
공격을 주도한 이들은 ‘니제르 델타 해방운동(Movement for the Emancipation of the Niger Delta, MEND)’과 ’델타인민의용군’ 같은 지역의 무장투쟁 조직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그 지역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십수 년 전만 해도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으며 오순도순 살던 평범한 주민들이 이제는 쟁기와 그물을 버리고 총을 쥐게 된 것입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내몰았을까요? 주민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석유 개발로 삶의 터전은 엉망이 됐지만, 흰 코끼리들은 날로 살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흰 코끼리’는 바로 다국적 석유자본과 정부 관료들을 지칭하는 것이지요.
이 정도 얘기만 들어도 대충 상황이 예상은 되지만, 좀더 구체적인 현실을 들여다보고 싶어졌습니다. 석유 개발로 인한 주민들의 소외와 좌절감은 얼마나 큰 걸까요? 그리고 누구의 책임일까요? 그러나 월간 <사람>의 재정 형편으로는 저를 현지로 취재여행을 보내 준다든지 하는 것은 애당초 꿈도 못 꿀 일이지요. 기대도 안 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인터넷의 바다를 떠다니며 관련 자료와 기사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먼저 작년 말과 올해 초에 걸쳐 니제르 델타 지역을 현지 취재한 내용을 담은 미국의 <뉴욕 타임즈> 기사 2개가 눈에 띄더군요. 자주 느끼는 겁니다만,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의 현실을 서구인의 시각을 거쳐서 간접적으로 봐야만 한다는 게 거시기하고 서글프지만 이번에도 어쩔 수 없네요. 일단 ‘눈부신 밤의 이방인들: 석유와 비참함의 뒤범벅(Strangers in the Dazzling Night: A Mix of Oil and Misery)’과 ‘가난한 나이지리아 마을에서는 석유와 함께 피가 흐른다(Blood Flows With Oil in Poor Nigerian Villages)’란 제목의 두 기사에서 묘사된 현지 주민들의 생활상을 일부분만 인용해보겠습니다. “그 곳에선 전등을 켤 필요가 없다. 가까운 석유공장에서 200피트 높이의 천연가스 불기둥이 밤낮으로 타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길거리 카페에서 만난 럭키 에크베리(24세)는 불길이 비추지 않는 어두운 밤은 기억조차 할 수 없다. ‘여긴 언제나 이래요. 불길 때문에 눈이 자주 아파요. 작물도 제대로 자라지 않구요.’ 에크베리는 자신을 ‘구직자’라고 소개했는데, 이제는 석유시설에서 일하는 것 외엔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다. 고졸 학력의 또 다른 청년 아자리 우케나(26세)는 멀리 불기둥을 가리키며 ‘우리는 이곳에 살지만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해요. 우리가 이 곳의 이방인들인 것처럼 느껴져요.’라고 한다. <니제르델타 인권연구소>의 아냐크위 은시리모부 사무국장도 ‘니제르 델타 지역은 곧 석유를 뜻할 정도이지만 또한 믿기지 않을 만큼 가난한 지역입니다. 전 세계는 니제르 델타의 석유에 의존하고 있지만 정작 이 곳 사람들에게 석유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라고 말했다.”
![]() |
나이지리아는 미국의 새로운 주유소
앞서 제가 석유가 펑펑 나온다는 표현을 썼는데요, 나이지리아는 원유 매장량 기준으로는 세계 10위, 수출액으로는 세계 8위의 산유국입니다. 하루에 약 26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니까 유가를 배럴당 60달러로 잡고 계산해도 매일 약 1억 6천만 달러를 석유로 벌어들이는 셈이지요. 덕분에 그 나라 자체는 아프리카 최고의 석유 부국에다가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로 꼽힙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중동과 자신들이 통제 불가능한 베네수엘라를 대신해 아프리카를 새로운 ‘주유소’로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국제적으로 그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미 아프리카는 작년부터 미국의 원유수입량의 18.7%를 차지해 17%인 중동을 앞지른 데다, 미국 정부는 향후 10년 내 그 비중을 25%까지 끌어올릴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이지리아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90달러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 중에서도 나이지리아 석유의 대부분이 생산되는 남부 니제르 델타 지역 주민들의 70% 이상은 하루 1달러 미만의 생계비로 살아갑니다. 정작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석유를 돈 주고 산다는 것은 꿈도 못 꿉니다. 전기도, 전화도, 학교도, 병원도, 심지어 모터가 달린 작은 보트조차 없습니다. 수도도 들어오지 않아 주민들은 더러운 물을 그대로 마시고 만성적인 이질과 설사에 시달립니다. 석유 개발로 인해 얻은 것은 극소수의 단순 일자리 이외엔 거의 없는 반면, 잃은 것은 많습니다.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돼 농사도 지을 수 없고, 강과 시냇물로 폐유가 흘러 들어가 물고기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냥 앉아서 죽으라는 소리이지요.
그 대신 석유 개발로 인한 이익은 다국적 석유 메이저들의 금고로 고스란히 들어갔습니다. 나이지리아에서 가장 많은 석유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는 유럽계 다국적 에너지 기업 로열더치셸의 석유시설과 기술자들이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이번에 직원들이 납치됐다 풀려난 대우건설도 로열더치셸로부터 플랜트 건설을 수주 받고 공사를 벌이던 중이었죠. 주민들 입장에서 로열더치셸은 자신들의 고향에 불행의 씨앗을 몰고 와서 퍼뜨린 ‘악마’같은 존재로, 지탄과 저항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이 다국적기업의 인권침해와 환경파괴에 맞서 처음부터 무장투쟁이라는 방법을 유력한 수단으로 선택했던 것은 아닌 듯합니다. 10여 년 전인 1990년대 중반, 켄 사로 위와(Ken Saro-wiwa)라는 시인이자 작가는 <오고니 민족의 생존을 위한 운동(Movement for the Survival of Ogoni People)>을 이끌며 로열더치셸을 비롯한 다국적 석유기업들에 평화적인 방법으로 저항하는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료 8명은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국제적으로는 꽤 유명한 ‘오고니의 9인’ 사건이었죠. 물론 로열더치셸은 나이지리아 군사정권이 저지른 일이라며 그 사건과의 연루를 부인했지만, 그들이 평소 나이지리아 군부에 돈을 주고 유전 시설을 맡겨왔고, 군인들이 주민들의 저항을 탄압할 때 헬리콥터와 무기, 활주로를 제공하는 등 군부와 밀접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비교적 최근에는 MEND 같은 무장조직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인구 약 1천 2백만 명의 이자우 부족 주민들이 셸을 상대로 법정 투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국내외적으로 비난이 거세지고 주민들을 지지하는 운동이 활발해지자 나이지리아 국회도 셸 사가 환경파괴에 대해 배상하라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도 했고, 올 2월엔 연방고등법원이 15억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셸 사는 즉시 대법원에 상고했고요.
![]() |
델타 석유로 인한 이익은 델타 주민에게로
개발 이익을 수탈해가는 세력은 다국적기업들만은 아닙니다. 중앙과 지방정부의 부패도 아주 심각하다고 합니다. 나이지리아는 1999년까지 사니 아바차가 이끌던 군사독재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당시는 수도 라고스의 국제공항 내에서도 버젓이 도적떼가 약탈행위를 자행할 만큼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였고, 소수의 고위 장성들과 정부 관리들은 석유 수입으로 거둬들인 돈을 서로 차지해 나라 안팎에서 돈을 물 쓰듯 뿌려대던, 심하게 얘기하면 국가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 한차례 대통령을 지냈던 올루세군 오바산조 대통령이 1999년에 민선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차차 나아질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국제유가가 상승하면서 조금씩 외채도 갚아 나갔고,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국가재정의 투명성을 위한 조치들이 도입됐으며, 무르탈라 무하메드 공항은 말쑥하게 새단장 됐습니다. 그러나 한 차례 재임기간을 거치면서 초기의 개혁 조치들은 점차 추진력을 잃어갔고, 오바산조 대통령은 나라 밖에서의 영향력 확대와 3선 연임을 위한 개헌에만 매달리면서 나라 전체는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작년엔 외채상환 불능 위기에까지 몰리기도 했구요. 여전히 주민들은 전기도 안 들어오는 방에서 더러운 흙탕물로 지은 밥을 먹고, 관리들은 수십 명의 하인들이 일하는 호화저택에서 진수성찬을 즐기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작년부터 무장투쟁 조직들이 ‘니제르 델타의 석유로 인한 부는 니제르 델타 주민에게로’를 외치면서 송유관과 유전, 선박에 대한 공격을 가하고, 외국인 기술자들을 납치하는 등의 ‘저항’운동을 본격화한 것입니다. 한 캐나다 지역신문에 실린 <정의를 위한 니제르 델타 여성들(Niger Delta Women for Justice)>의 사무국장 아니 브리시베(Annie Brisibe)의 말이 이를 잘 설명해줍니다. “사람들은 벽에 맞닥뜨린 느낌이에요. 이 모든 행동들은 좌절, 분노, 극단적인 소외에서 비롯된 겁니다. 가난 때문에 예전 같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그런 행동으로 내몰리고 있어요.”
물론 인명살상까지 수반한 폭력행위 자체를 두둔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또한, 그런 주민들, 특히 젊은이들의 절망감을 이용해 또 다른 이득을 취하려는 반군세력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국적기업들과 지역 정부가 선심 쓰듯이 내놓은 개발 보상금을 서로 더 차지하기 위한 부족들 간의 갈등과 살인, 폭력행위도 군인들에 의한 인권침해 못지않게 심각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모든 불행의 씨앗은 검은 황금, 석유입니다. 아니 천 2백만 주민들의 생존권을 땔감으로 삼아 이윤이라는 바비큐 파티를 벌이는 자본의 탐욕입니다.
앞으로도 간간히 우리는 신문지상에서 나이지리아와 니제르 델타라는 지명을 접할 수 있을 겁니다. ‘나이지리아에서 계속되는 무장 조직들의 석유시설과 외국인 기술자들에 대한 공격으로 국제 유가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뭐 이런 식의 기사를 통해서 말입니다. 설마 제가 그런 기사를 바라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다만, 남들은 없어서 난리인 그 귀한 석유가 잔뜩 묻혀 있는데도 불구하고 예전에 비해 조금도 나아진 것 없는,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더 캄캄해진 현실 속을 헤매다 결국은 ‘무장조직원’이 되어버린 농민, 어민들의 절망을 알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오르는 석유 값 걱정이나 하고 있다면 우리 역시도 니제르 델타 주민들에게는 또 다른 ‘흰 코끼리’일 뿐일 겁니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켄 사로위와, '오고니의 9인사건'의 대표적인 인물로 다국적 석유기업에 평화적으로 저항하다 교수형에 처해진 시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