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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일요일, 4월의 봄날이었다.
이 강토, 이 산하를 지키기 위해 3년을 꼬박 바쳤지만,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지금도 나는 여전히 국토방위의 성스러운 임무를 띤 대한남아다. 그 사실을 곧잘 잊곤 하는데, 그래서 마련된 것이 ‘주기적인 깨달음’의 시간이다.
이른바, ‘상반기 민방위대원 교육’은 4개의 강좌로 구성됐다. 요점은 이렇다.
제1강좌. “지금 우리의 적은 일본, 중국, 북한이다. 이들은 군비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조기경보기가 몇 대, 구축함이 몇 대, 아무튼 우리보다 엄청 많다. 이대로 좋은가. 우리도 자주국방을 해야 한다. 앉아서 죽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제2강좌.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돈은 얼마나 중요한 것이냐.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산다. 졸면 죽는다. 조는 사람에게 돈은 주어지지 않는다. 돈은 얼마나 치사하고, 또 위대한가. 사회보장제도를 지나치게 강화하면 어떻게 된다? 그 나라가 망해 버린다. 그게 공산주의예요.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한 북유럽 어때요? 그 나라 사람들 일 안 해요. 스위스 관료들이 비밀리에 우리나라에 왔다 가면서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사유재산을 보장하는 것이 경제를 살리는 핵심이라는 거예요. 사회보장제도가 강화되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데, 그러면 일하기 싫어지는 겁니다.”
제3강좌. “일요일인데도 국가의 부름을 받아 여기에 오신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저는 원래 성교육 전문강사입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건강에 대해, 심폐소생술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먼저….”
제4강좌. “민방위는 왜 필요한가. 옛날에 비하면 여러분들은 많이 편해진 겁니다. 자, 그러면 해마다 발생하는 풍수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풍해라 함은 바람의 피해를 말하는 것으로써….”
이런 시공간에만 오면 왜 ‘춥고, 배고프고, 졸린’ 군인의 3대 감정이 어제인 듯 되살아나는 것일까. 나라가 명령한 ‘깨달음의 시간’은 소박한 의문이 되어 머리에 남았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