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인권이에요, 당연하지] 독일에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진정한 편리함을 위한 발상의 전환이 부럽다

스펀지’라는 TV 프로그램은 다들 아실 것이다. 사회자가 빈 칸이 있는 질문을 던지면 패널들이 함께 그 질문의 답변을 맞추는데, 일상생활에서 몰랐던 상식이나 재미있는 과학상식 등을 ‘실험맨’들의 직접 체험을 통해 재미있게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글의 제목은 바로 그 프로그램에 나왔던 질문 중 하나이다.


한국에도 엘리베이터는 많다. 요즘에는 4~5층 건물에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는 경우가 흔하고, 장애인, 노약자 접근권을 위해 지하철 역사에도 엘리베이터가 확대, 설치되고 있는 중이다. 대체 무슨 엘리베이터이기에 독일에 있는 것까지 찾아갔을까? 정답은 바로 “옆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란다.



엘리베이터를 보러 독일까지


처음에 답을 봤을 때는 지하철역 등에서 볼 수 있는 무빙워크(가만히 서 있으면 앞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평면 형태로 만든 그것)처럼 그렇게 옆으로 가는 것인가 보다 했다. 실용성보다는 바깥 광경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놀이동산 같은데서 운행하는 그런 엘리베이터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실물을 확인하러 독일에서 촬영해온 영상을 보고는 말 그대로 ‘아하!’하며 무릎을 치게 되었다. 어떤 엘리베이터냐고? 육교 대용 엘리베이터였다. 횡단보도나 육교, 지하도 대신 지상에서 타서 일정한 높이까지 올라간 후, 수평이동을 해서 차도를 건너고 맞은 편 지상에 다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였던 것이다. 이 엘리베이터는 ‘피플 무버(people mover)’라고 부르는데, 실험맨들은 그 엘리베이터를 직접 타서 어떻게 길을 건너게 되는지를 시연해 보여주기까지 했다. 횡단보도가 없는 도로였기에 당연히 길을 건너려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것도 같이 촬영되었다.


엘리베이터 촬영 분 이후 제작진들이 그 엘리베이터의 제작 회사를 찾아가 사장에게 ‘왜 이런 엘리베이터를 만들었냐’고 묻는 인터뷰 장면이 나왔다. 이 잡지와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대략 답변을 짐작하시겠지만, 사장의 답변은 장애인이나 노약자, 유모차들이 쉽고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했다. 또한 육교나 지하도를 설치하는 것에 비해 설치 면적이 좁고, 설치비도 절감된다고 했다.


이런 아이디어는 사실 쉽게 생각해 낼 수 있지만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동안 첨단 기기를 사용하는데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소위 ‘실버폰’이라는 것이 출시되었었다. 카메라 기능이나 MP3 player 기능 따위는 있어도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 실버폰은 매우 가볍고 좋은 아이템이었지만, 요즘엔 찾아보기도 힘들다. 아마 시장성을 이유로 단종 되었을 것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웹페이지의 콘텐츠를 음성으로 보내주는 홈페이지는 찾기 힘들다. 그런 프로그램을 적용해서 만드는 것은 적용하지 않는 것보다 복잡하고 비용의 문제도 걸린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아니더라도 가파른 계단은 쉽게 오르기 힘들다. 그러나 전용 면적의 문제 때문에 쉽게 경사로를 만들 엄두는 내지 못한다.



소비가 아니라 필요에 의한 생산이 되어야


어떤 사람들에게만 편리한 것은 사실 진정한 편리함은 아니다. 발상의 전환이란 바로 피플 무버의 사장과 같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다. 이런 발상의 전환은 치약 뚜껑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예전에는 대부분의 치약 뚜껑은 돌려서 여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 눌러서 당기기만 하면 쉽게 열 수 있다. 아주 작은 차이지만, 정말 말 그대로 사용자를 위한 신선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아주 새로운 기술도 아니지만, 손에 부담이 덜 하면서도 쉽게 뚜껑을 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처음 나왔을 때 무척 반가워했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편리함을 위해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기보다는 있는 것들을 어떻게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훨씬 더 쉽고 편하다. 소비를 위한 생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를 위해 만드는 생산이 우리에겐 더 좋다. 편한 이동을 위해 만든 엘리베이터가 정말 누구나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이용하는 것이 우리에게 좋은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비단 과학기술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제품이나 시설들에서 이런 작은 배려들은 의외로 발견하기 어렵다. 시각 장애인을 위해 인도에 깔린 보도블록은 길을 건너려는 사람들을 위해 안내선이 횡단보도 중앙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시각장애인 용 음향신호기는 횡단보도 한쪽 끝에 설치되어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 편리함이다.


몇 년 전에, 서울 안국동 종로경찰서 앞에 있던 육교가 철거되고 횡단보도가 생긴 일이 있었다. 어떤 장애인이 지속적으로 불편함을 토로해서 얻어진 결과라고만 들었다. 아마도 꽤 열심히 투쟁하셨을 것이다. 나도 그때 그곳을 지나다니면서 육교 때문에 귀찮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한 번도 그 육교 대신 횡단보도를 설치하라고 말해볼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내게는 그냥 잠깐의 불편을 참는 일 정도로 밖에는 인지되지 않았던 때문이겠지만. 그래서 저 피플 무버의 사장이 참 대단하다 싶다. 물론 기업이란 돈을 벌기 위해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아이디어가 정말 사람들에게 필요하고 편한 것이라면 당연히 그 가치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기에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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