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국제민주연대 |
이러한 개입에 있어서도 다양한 요인들이 있을 수 있다. 해당 국가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염원하고 있기 때문에 개입을 하거나, 혹은 국민들의 목소리와는 상관없이 일부 극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함과 동시에 외부에 있는 단체의 이익에 맞아 떨어져서, 혹은 반대로 이익만 좇아 인권문제에 개입하는 단체들도 많다. 물론 제 목적에 따라 세워진 다양한 단체들이기도 하거니와 그 나라 국민들의 목소리를 얼마만큼 대변하고 있는지를 측정할 방법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술한 것들을 판단하는 데에는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그러한 개입이 인권의 증진과 보호라는 공동선에 입각한 판단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가 폭등으로 촉발된 버마 민주화 시위
2007년 8월 15일, 버마 정부는 예고도 없이 디젤, 천연 가스와 휘발유 가격을 2배에서 5배로 급격히 올렸으며 이로 인하여 생필품 가격 인상이 잇따랐다. 버마의 옛 수도인 랑군(양곤)에서 쌀 가격이 4%에서 13%로, 강낭콩이 8%에서 18%로 인상되었으며 또 급격한 가격 인상으로 인하여 교통 운행이 중단되었고, 가격폭등에 대한 반발로 8월 19일부터 곳곳에서 평화적인 거리 시위들이 발생하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스완-아신(Swan-arshin)이라 불리는 정부가 조직한 폭력배들과 민간단체임을 가장한 군부의 비공식적인 공권력의 도구인 개발연합협회 (United Solidarity and Development Association)를 동원하여 거리에서 평화적으로 시위하고 있는 시위대들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주요 행위자들을 구타하고 체포하였다. 시위자들은 사지가 들려 근처에 대기하고 있는 차에 강제로 옮겨 태워졌고, 그 즉시 자동차는 그 자리를 벗어나고는 했다. 버마 군부는 이렇게 매우 조직적인 방법으로 시위대의 주요 행위자들을 불법 체포 및 감금하고 있다.
그 억압적인 군부의 오랜 통치하에서 직접 거리로 나와 대규모의 평화적인 시위를 한다는 점에 많은 외신들과 언론들이 이 사안을 앞 다투어 다루었다. 그러나 정작 군부는 국영방송을 통해 ‘88세대(1988년 8월 8일에 일어난 항쟁에 참여한 세대) 학생모임’ 회원을 구속하였으며, “법에 따라서 이들을 처리할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하지만 국영방송과는 다르게 체포된 사람 중에는 88년 시위와는 관련이 없는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일반 시위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시위에 대한 억압의 강도가 높아짐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시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포스터와 전단지들이 여기저기에서 등장했는데, 한 전단지는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집 안에서 냄비와 단지들을 두드리라는 제안을 했다. 이는 얼핏 보았을 때는 새로 옮긴 수도에서 발산하는 악의 영혼을 쫓기 위한 종교행사처럼 위장하고는 있지만, 사실은 군부의 탄압으로 거리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시위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성명서
버마의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와중에, 한국이 배출(?)한 반기문 국제연합 사무총장은 8월 23일 대변인을 통한 성명서에서, “정부가 학생지도자들과 다른 이들을 체포했다는 보고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 어떠한 시위에 대해서도 정부는 극도로 자제할 것을 요청하며 또한 모든 관련당사자들에게 어떠한 도발적인 행동도 피할 것을 요청한다. 또한 건설적인 대화를 요청한다.”라고 밝혔다.
수많은 의제와 사안들을 접해야 하고, 공식 일정도 빼곡한 유엔의 사무총장이란 사람이 황금 같은 시간을 쪼개어 현재 버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였다는 점은 기뻐해야 할 것이고, 그리고 유엔의 인권관련 기관에서 나온 성명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물론 내가 일하는 인권단체에서 오랫동안 버마를 줄곧 모니터해온 입장에서 실망감은 더할 나위 없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유엔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는 사무총장의 이름으로 발표되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이 성명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성명서의 내용은 마치 이 빈곤에 허덕이고 하루 벌어 하루 생계를 유지하는 나라에서 아무런 예고 없이 휘발유 가격이 몇 배로 뛰고, 식료품가격이 폭등한 것은 그저 있을 수 있는 일 정도라고 하는 것과 같고, 버마의 모든 사람들이 군부의 유혈적 대응을 유발하지 않게 하기 위해 거리로 나오지 말고 자제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한 성명서에서 ‘건설적인 대화’를 요구하였으나, 과거 버마 군부에 대화로 사태를 풀 것을 요구해왔던 ASEAN조차도 최근에는 이런 요구를 접고 있는 현실과는 대조적이다. 실제로 국제적십자연맹(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Red Cross) 회장인 Jakob Kellenberger는 지난 6월 적십자의 활동이 버마에서 거의 정지되었다고 밝히면서 그 연유를 “정부의 관료들(군부들)이 진지한 협상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건설적인 대화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상황이다.
불가능한 대화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버마의 상황에 대해 보인 반 사무총장의 성명서 내용은 1980년 5월 22일자 동아일보에 게재된 미 국무부 대변인인 호딩 카터(Hoarding Carter)가 당시 광주 상황에 대하여 밝힌 입장과 매우 유사하다.
“미국은 한국 남부에 위치한 도시, 광주에서 일어난 소요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며, 모든 관련자들이 자제와 대화를 통해 평화로운 해결책을 찾기를 요구한다.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고 폭력이 악화될 시에는, 현장에 투입될 외부병력이 필요할지 모른다. 미국무부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의무에 따라 현 한국 상황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어떠한 외부의 시도에 단호히 대처할 것임을 재강조하는 바이다.”
광주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이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승인이 없이는 한국 군대의 광주 투입이 불가능했음을 인식한 한국의 학생과 국민들이 이를 계기로 반미투쟁을 전개하였던 것은 이미 역사적인 사실이다. 광주에서 군부에 의한 학살이 자행되고 있는 그 시점에서 “대화를 통해 평화로운 해결책을 찾기를 요구하는” 것은 투쟁을 멈추라는 주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8월 23일에 발표된, 세 문장으로 이루어진 반기문 총장의 이 성명서가 이제까지 중국을 등에 업은 군부의 강력한 통제와 통치로 20여 년 동안을 외롭게 대항하며 투쟁해온 과거 88세대들, 그리고 현재 민주주의를 염원하며 또 한 번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아가 외쳐보려는 그들의 바람에 혹시 역행하는 행동은 아니었을까?
미얀마 인권상황에 관한 특별보고관인, 파울로 세르지오 핀헤이로(Paulo Sergio Pinheiro)는 현 상황에 대해 8월 24일과 31일 각각 보도자료를 내고 체포된 자의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했다. 그는 이 보도자료에서 “구금당한 자 중에 부상자에 대한 의료거부, 구금된 자에 대한 고문 등에 관한 주장이 보고되고 있다”며, 오는 9월에 열리는 제6차 인권이사회의 의장에게 이 사태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하였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인 루이스 아버(Louise Arbour)도 9월 7일 보도자료를 통해 구금된 자의 즉각적인 석방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 유엔 인권관련 기관을 대표하는 이들이 보인 반응과 유엔 사무총장의 성명서를 비교해서 생각해보라.
악화되는 상황, 법원의 폐쇄
연일 상황이 지속되면서 88세대 시위자이자 이번 시위 주동자 중의 한 명인 죠민주(Kyaw Min Yu)씨가 인세인 감옥(Insein Prison)에서 고문으로 사망하였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필자가 이 글을 작성하는 이 시점까지 버마정부는 아직 이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가 확인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요청으로 국제 적십자 연맹이 개입하려고 했으나 이것마저도 거부당했다. 죠민주(Kyaw Min Yu)씨는 1988년 항쟁에 연루된 혐의로 15년 형을 받은 적이 있었고, 이번 가격 파동에 대한 반대 시위로 평화롭게 시위를 하던 도중 8월 21일에 체포되었다.
또 다른 두 명의 시위 주동자는 구금 장소에서 심하게 구타를 당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소식들도 들리고 있다. 보고된 바로는 100여 명이 넘는 시위자들이 체포되어 구금되었으며 행방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속되는 시위로 그 수는 200여 명이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8월 20일 이후로 옛 수도 랑군(양군)에 있는 법원들이 폐쇄되었다는 점이다.
8월 20일 이후로 도시의 모든 법원이 잠정 휴회하였는데, 그 이유는 보안 때문이라고만 알려졌다. 그러나 이러한 휴회는 구금시설 내에 있는 특별법정에는 적용이 되지 않는 것으로 9월 7일, 올 5월 말 노동자들의 권리에 관한 토론회를 조직한 혐의로 구속된 6명이 20년에서 28년형을 받았다.
그렇다면 법정심리가 잠정적으로 중단되는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는 일반범죄나 경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여전히 체포가 된다는 것이나 문제는 일반범죄 절차에 따라 심리가 열리지 않고 휴회함으로써 심리가 다시 열릴 때까지 구금된 자들은 무기한으로 갇혀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명백히 많은 문제점들을 야기한다. 경찰이 구금시설에서 사람을 고문하고 죽이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상황이 만연한 이 버마에서 법정심리가 연기된다는 것은 더 많은 폭력으로 사람들을 몰아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적으로 지금까지 체포된 사람의 행방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체포된 후 권한 있는 판사의 심리를 받았는지 아니면 풀려났는지에 대해서 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또 다른 인권침해를 당한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어디에 가서 고소나 진정할 방법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위법하게 체포되어 구금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풀어주라는 명령서를 발부할 곳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위에 참여하여 구금된 자의 권리뿐 아니라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의 권리가 침해된다는 뜻이다.
한 정보에 따르면 경찰총장이 9월 6일 밤, 전투경찰과 특별부대를 동원하여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하여 국가 비상사태를 비밀리에 선포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이 작전을 펼치게 될 모든 지휘자들이 2003년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당원들을 공격했던 자들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군부가 갑작스럽게 휘발유 가격을 인상하고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련의 시위들은 분명 예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20여 년 간 군부의 통제로 침묵을 강요당해왔던 버마 민중들이 곳곳에서 일어나 시위를 이어가고 있고, 국민들의 신임을 받는 승려들이 수백 명, 수천 명씩 시위를 벌이다 연행되는 상황이 전국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은 이런 상황을 두고, 버마의 군부는 충분히 진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 또는 지금까지도 어떤 외부의 압력에도 견뎌왔다는 역사적 경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전히 강경책을 유지한 채 태도의 변화를 보일 기미가 없다.
어떻게 연대할까?
시위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그리고 이러한 시위의 지속은 외부에서 결정했던 것이 아니라 버마인들 자신들 스스로 생각하여 행동하였고 또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지금 버마인들이 활동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유엔의 안보리나 인권이사회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거야 하는 수수방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시위는 이렇게 해야 하는데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보다 못하다. 버마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자신들이 느끼고 있는 공감대와 외부로부터의 개입이다. 유엔이 잘했네, 못했네, 시위를 잘했네, 못했네를 두고 논평할 시간이 있다면,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라고 생각할 시간을 가지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직접 펜을 들어 버마 정부에 항의하는 편지를 쓴다던가, 이러한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한다거나 하는 방식의 개입할 수 있는 영역들은 충분히 많다.
버마의 민중들은 지금 외부 세계의 연대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과거에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