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와중에 몇몇 대기업 노동현장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해 구사대와 경찰의 폭력이 발생했습니다. 대기업 노동조합의 연대투쟁을 바랄 수 없는 노동현장은 ‘만국의 노동자는 하나’이기 때문에 이들의 단결을 통해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라던 옛 혁명가의 말씀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자기해방의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주체가 된다는 ‘진리’는 현실에서 부정되고 있습니다. 자본은 끊임없이 노동계급을 여러 등급의 노동자로 분류하면서, 서로를 반목하게 합니다. 비정규직들의 문제는 이랜드 이전에도 있었고, 본격적으로 비정규직법이 적용되는 내년에는 더욱더 심각한 문제로 다가올 것입니다.
생존권을 지키는 일마저도 힘겨운 이 계절에 차기 대통령을 뽑는 부르주아 정치 게임이 진행 중입니다. 진보정당조차도 계급적으로 다른 비전을 내놓지 못하는 이 마당에, 현실성 없거나 현실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 빤한 대동소이한 공약들을 내건 정당 후보들 중에 차악이라도 선택해야만 하나요. 언제나 신자유주의가 강요하는 노예의 삶, 인권이 부정되고 모든 삶의 영역에서 폭력이 일상화되는 질서를 전복하고,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존엄하게 생존할 수 있는 세계를 그릴 수 있을까요? 항쟁은 어쩌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으로부터 시작될 지도 모릅니다.
마침 10월은 체 게바라 서거 40주기가 되는 달입니다. 미 제국주의의 음해와 전복의 위협에도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지켜 보여주는 쿠바와 21세기형 사회주의 혁명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베네수엘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체가 추구했듯이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는 것, 지금 이 어두운 현실을 박차고 나가기 위해서도 다른 세계에 대한 꿈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이번 호에서는 ‘소통/연대/변혁 사회운동포럼’을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언론과 세간의 주목을 거의 끌지 못한 행사였지만, 4일간의 20개를 갓 넘는 세션에 연인원 2천5백 명이 다녀갔습니다. 운동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진단이 있었고, 운동의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과 위기의 징후들에 대해서도 솔직한 토로가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연대의 방안이나 변혁의 이념을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어디 첫술에 배부를 수 있나요. 첫발을 내디뎠다는 것으로 의미를 두어야겠지요. 모든 논의를 다 소개할 수 없어서 그 일부를 추렸습니다. 운동의 위기는 운동 주체들의 노력에 의해서만 극복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회운동포럼의 논의들을 주목해 보면 어떨까요?
이제 가을입니다. 유난히도 변덕스러웠던 여름 뒤에 찾아온 이 가을이 조금은 풍성할 수 있도록 지금 잡은 연대의 손을 더 꼬옥 잡아야 할 때입니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