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해 대체복무를 허용한다는 발표가 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보수적인 집단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국가적·반사회적 행위로 국민개병제의 근간을 훼손”시킨다는 재향군인회 논평쯤은 예상하던 바이지만, 대선용 아니냐는 <조선일보>의 주장에는 살짝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어쨌거나 눈길을 끄는 건 보수적 개신교의 입장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 한 목사는 “특정 종교에게 주는 특혜이므로 불쾌하다”고 반응을 보였다는데 또 한편 “종교를 이유로 대체복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특정 종교가 종교라는 것인지, 종교가 아니라는 것인지 영 헷갈린다. 단연 압권은 불과 며칠 전에 “봉사하러 아프간에 간 사람을 납치한 것은 어이없는 일”이라던 한국교회언론회의가 “봉사활동을 빌미로 포교할 기회를 줄 수 있다”고 한 논평이다.
형법의 개선, 전쟁 감소, 유색인종에 대한 처우 개선, 노예제도 완화를 포함해 이 세계에서 단 한 걸음이라도 도덕적 발전이 이루어질 때마다 세계적 조직인 교회세력의 끈질긴 반대에 부딪히지 않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교회로 조직된 기독교는 이 세계의 도덕적 발전에 가장 큰 적이 되어 왔다.
논리학에서의 집합적 역설에 일가를 이룬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 80년 전에 했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연설로 같은 제목의 책에 실려 있는 글이다. 왜 러셀이 기독교인이 아닌지 알려고 책까지 사서 보느냐고? 읽어보면 꽤 재미있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