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 |
아르바이트하던 학생의 죽음
유난히 무더웠던 8월의 여름날에 경남 창원의 신월고등학교에 다니던 박씨가 자살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다. 박씨가 남긴 유서에는 그가 자살하게 된 명확한 이유가 쓰여 있지는 않았지만, 유족들과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죽은 박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하고자 했다고 한다. 박씨의 부모도 처음엔 말렸지만 박씨의 의지가 강해서 아르바이트를 허락했다고 한다. 박씨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야간자율학습(나는 야간강제학습이 바른 말이라 생각한다. 당사자인 학생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는 자율학습이 과연 자율학습이라 할 수 있을까?)에도 자주 빠지게 되었고 급기야 담임교사가 박씨의 집에까지 전화를 하게 됐다고 한다. 박씨의 부모는 담임과의 전화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에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못한다, 처음엔 만류했으나 박씨의 의지가 강해서 하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씨의 담임은 “야간자율학습을 안하려면 전학가라.”라는 식의 말과 함께 전학 갈 학교 이름까지 들먹였다. 안 그래도 자녀에게 미안한 부모의 마음에 비수를 꽂은 것이다.
또한 학교에서도 담임이 박씨를 따로 불러내 훈계(어려운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아르바이트를 해서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야간자율학습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훈계일까? 그리고 과연 그게 ‘훈계’만이었을까?)를 했고 교실로 돌아온 뒤에도 박씨가 많이 힘들어 보였다고 박씨의 친구들은 말했다.
바로 그날, 박씨는 그렇게 혼자 힘들어 하다가, 외롭게 세상을 등졌다. 박씨의 자살이 단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한 특수한 사례일까? 야간자율학습이 한 청소년의 마음보다 중요시되어야 했을까? 그토록 야간자율학습을 강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 4월 말, 대구 도원중학교에서 한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죽은 중학생이 남긴 유서에는 자살의 이유가 명확하게 나와 있다.
안녕? 모두들…. 내가 자살하기 하루 전에 쓰는 글이야. 왠지 슬퍼. 내가 죽기 때문일까, 내가 죽으면 슬퍼 할 사람들 때문일까. 아님 내가 죽어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버젓이 돌아갈 세상 때문일까? …(중략)… 근데 현실은 너무 달라. 상상이상으로 너무 달라. 공부 힘들어서 자살하는 사람들. 다 남이야기 같았어. 하지만 아니야. 공부, 공부, 공부, 공부. 좁디좁은 교실에 선풍기 4대, 히터 2대. 40명이 넘는 아이들. 같은 곳에서 각기 다른 재능을 지닌 아이들이 오직 한 가지만 배우고 있었어. “대학가는 법” 슬펐어. …<중략>… 내가 죽는다고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을 거야. 선생님들의 강력한 몽둥이도, 선생님들의 강력한 두발규제도, 선생님들의 공부, 공부 소리…. 사회의 공부, 공부, 공부, 공부…. 난 사실 평범한 여중생일 뿐이야. 노래 부르길 좋아하고, 그림 그리길 좋아하고, 수다 떨길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는, 하지만 사회는 내게 그걸 바라지 않아. 같은 머리, 같은 옷, 그리고 같은 공부. 좁디좁은 교실에 아이들을 구겨 넣고, 선풍기 4대와, 히터 2대. 그리고 선생님…. …(중략)… 난, 후회하진 않아. 왜냐면, 이세상은 더러우니까. 망할 세상, 망할 교육, 망할 선생, 망할 나…. (이하생략)
눈시울을 붉혀가며 이 유서를 쓴 청소년에게, 사회는 하고 싶은 것을 억누르고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릴 것을 요구하는 곳이었다. 개개인의 인권과 개성을 무시한 획일화되고 폭력적인 입시교육과 열악한 수업 환경, 그리고 명문대를 향한 사회의 광기가 한 청소년을 죽게 했다. 고인(故人)의 자살은 절대 겁쟁이의 행동이 아니다. 미친 입시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저항이다.
사진제공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
자살, 인간적인 저항
자살 사건들은 보수언론에 의해 성적비관, 가정문제, 학교폭력(이런 언론들은 왕따 등은 다 학교폭력이라고 하지만 교사들이 마구 휘두르는 체벌은 죽어도 학교폭력의 범위에 넣지 않으려 한다.)과 같은 이름을 달고 보도된다. 물론 청소년들은 성적비관, 가정문제, 학교폭력으로 자살한다. 하지만 그런 청소년 자살을 둘러싼 큰 원인으로, 입시위주의 (‘교육’이 아닌) ‘사육’과, 사회 전반의 억압과 잘못된 구조가 있다. 성인들의 자살 원인은 돈 문제가 가장 많다지만 청소년들의 자살 원인은 입시 및 그 입시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폭력들이 가장 많다. 교육부는 대학서열화, 수능, 내신등급제 등을 고집하며 입시위주의 교육을 유도하고 인권탄압을 묵인함으로써 청소년 자살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는 입시제도를 통해 간접적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
입시 살인을 더욱더 조장하려는 움직임이 대선에 맞춰서 마치 줄서기를 하듯 일고 있다. 줄서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할 교육계에서조차 줄서기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일부 특목고 교장들은 0교시 부활, 중학생 전국학력평가 실시, 70년대식 일제고사 부활을 주장하며 일종의 결의대회를 가졌다. 사실상의 3불 정책 폐지, 대학입시자율화 등 사교육과 입시경쟁 줄이기에는 전혀 도움도 안 되고 청소년과 학부모의 부담만 가중시키려는 ‘맛있는 것 사줄게 아저씨 따라 가자’ 식의 공약 같지도 않은 공약을 내걸고 있는 개념 없는 수구 꼴통 집단들과 책상머리에서 펜이나 갉작거리며 책임이나 회피하는 교육당국.
그들의 눈에 학생은 단지 ‘닥치고 공부나 해야 할 기계’로밖에 보이지 않으며 미친 입시를 타파하기 위해 대학평준화, 수능폐지, 내신등급제 폐지 등을 주장하는 개념 있는 단체들은 좌파 빨갱이 단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교육은 자신들에게 충성하고 약자 위에 군림하며 남의 인권을 짓밟을 줄이나 아는, 혹은 강자에게 짓밟혀도 그걸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줄만 아는, 단순한 ‘인적 자원’을 생산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해에도 수많은 입시 살인들이 자행된다. 결국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은 청소년들이다.
입시라는 전쟁에 청소년을 총알받이로 내모는 용납되지 못할 입시 살인을 저지르고, 청소년을 죽음으로 내몰 입시를 추방하기 위한 노력을 무시하는 높으신 수구 꼴통들의 깽깽이 짓이 계속될 때마다 청소년들의 희생은 늘어나고 청소년 자살 세계 1위라는 꼬리표는 떨어질 줄을 모른다. 그렇게 되어도 그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없다. 한 해 100명이 넘는 소중한 생명을 죽이는 희대의 살인마 집단의 ‘오야붕’들께서는 오늘도 기름진 식사를 하시고 기름진 승용차를 타고 다니시니, 한 명의 청소년으로서, 웃음밖에 나오질 않는 일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