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민주노동당 |
글이란 자고로 솔직한 거 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민주노동당에 대한 수많은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너무나 잘 아는 내가, 짧은 글로 누군가를 쉽게 현혹시킬 자신은 더욱 없는 일이다. 그래서 짧지만 솔직하게 내 얘기만 할 수밖에 없다.
“왜 당신은 아직도 민주노동당인가?”
민주노동당이 비록 10석에 불과하지만 13%의 정당지지율을 획득하여 원내진출을 이룬 것은 진보정치사에 획을 긋는 50여년만의 쾌거라고 말한다. 해방이후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보수우익세력에 의해 철저히 ‘거세’되었던 진보세력이 그것도 사회주의 계급정당이라는 명확한 자신의 이념을 내걸고 등장한 민주노동당이 원내진출을 이뤘다는 것이 한국정치사에 기록될만한 화젯거리가 되었었다.
‘거대한 소수’전략의 실현을 목표로 내세우며, 진보세력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원내로 진출한 민주노동당이 3년여 만에 ‘기대를 저버렸다’는 원망의 소리가 높아갈수록 일하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하루하루가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여기 있는가. 간혹 내게 “왜 아직도 민주노동당에서 일하느냐?”라며 섬뜩한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내면의 갈등과 힘겨움을 뒤로 하고 “민주노동당은 나의 전부”라고 자신하곤 한다. 왜 그렇게 말을 했을까?
80년대부터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내세우며 엄혹한 시대를 보낸 사람 중에 하나였던 나는 민주노동당의 존재 자체를 ‘나의 인생’이라 말하곤 한다. 내 인생이 그리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뭐하나 제대로 이뤄낸 것은 없지만, 그래도 난 아직 (진보운동 속에) 살아있다. 그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내 이유이다. 당은 나보다는 나은 편이다. 때론 무기력해 보이고, 파행을 부르는 내부 세력들의 돌발적인 정치행보와 실수에 놀라 잠 못 이루는 밤도 많지만,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기도 하니까. 새로운 희망을 만들기 위해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 우리 자신을 탓하며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뇌해야 하는 민주노동당. 내외의 비판을 ‘약’으로 삼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기도 하는 정당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10석의 획득이라는 성과 이후 내부 세력 간의 불협화음과 비민주적임이 용인되는 ‘철밥통’의 ‘상부구조’와 ‘책임지지 않는 지도부’,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진보정치의 원칙을 저버리는 행보’에 대해 누구보다 분노를 느낄 때가 많다. 그래도 민주노동당을 변명하는 나의 논리는, 80년대 이후 변혁운동가들이 오랫동안 자기 조직에서만 활동하다가 대중적인 공간에서 함께 ‘정치’를 하는 것은 처음이고 서로 이해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애꿎게도 그 대가를 치루고 있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민주노동당의 최대의 문제는 “정치를 모르는 것”이다. 제도권 정치의 생리와 질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고 지지율을 높이는 것을 기준으로 볼 때, 민주노동당은 아직 서툴고 미숙하며 지나치게 진지하다. 또 사회이슈를 리드할 만큼의 정치적 영향력이 크지 못하다. 내부적으로는 변혁운동의 관점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의제를 ‘선전선동’으로 정치이슈를 선도하려는 무모한(?) ‘운동권’ 세력이 ‘대중정치’ 행보를 더디게 하고 있다. 아마추어리즘이 횡행하고 보다 활기찬 진보의제를 ‘정치화’하는데 정력을 쏟지 못함으로 인해 많은 이들로 하여금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기대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내부의 문제가 진보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의 사회적 역할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아직은(?) 확신하고 있다. 진보정당의 존재이유는 활동하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광풍에 삶의 근거지를 빼앗기고 밀려나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 삶의 희망과 미래의 생존의 조건도 설계할 수 없도록 내쳐지는 90%의 서민들의 삶을 보호해야 할 필연성에서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진보정당의 존재이유와 존재가치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과 실력문제 등은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메워나가야 할 과제가 아닐까.
진보정당의 필요성은 국민들의 욕구에서 찾을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원내진출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시대정신을 올곧게 담아 과감하게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을 내걸고 ‘부유세와 무상의료, 무상교육’이란 파격적인 공약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원내진출 이후 내부 홍역을 거치고 있지만, 900만에 육박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 정당은 민주노동당밖에 없다. 민중생존권 투쟁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있다는 것은 큰 자랑거리이자 자부심이다.
비정규직의 문제는 인권의 문제다. 이랜드 비정규직 문제와 함께 장애인의 이동권과 교육문제에 가장 적극적인 정당도 진보정당이다. 사회양극화, 교육.주택.의료문제 등에 대해 누구보다 근본적인 대안제시에 적극적인 정당도 민주노동당 뿐이다.
인권의 사각지대, 복지의 사각지대,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어김없이 폭로하는 세력 또한 진보정당의 몫이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적 과제를 어김없이 제출하는 정당 또한 아직 민주노동당을 따라올 곳이 없다.
중앙정치의 혼란과 지도력 부재로 인한 불협화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차원의 당원들의 자발적인 정치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그곳에 희망이 있다. 아래로부터 형성되는 지역정치가 다양한 시민세력과 함께 손을 잡고 무언가 만들어낸다면, 민주노동당도 자신의 길을 거침없이 뚜벅뚜벅 나갈 것이라 상상해본다. 그 대열에 함께 하는 것이 시대정신이 아닐까 싶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