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병권 |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지난 해 5월, 한 대선 후보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간은 남녀가 결합해서 서로 사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것도 모자라 장애인을 비하하고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했던 자신감이 한 사람의 정신을 마비시켰는지는 몰라도 그는 ‘사과’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기는커녕 집어 삼키기만 했다.
그의 거침없는 행보는 ‘747’ 점보 비행기에 ‘한국사회’를 몽땅 쓸어 넣고 말겠다는 의지로 불타올랐다. 경부운하를 건설해 ‘바닷물을 가른 기적의 지팡이’가 자신에게 있음을 이야기했으며, ‘규제 완화의 향수’를 기업들에게 뿌리며 사랑을 갈구했다. 자신이 씨앗을 뿌린 BBK란 과수원을 극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우겼지만 그 밭에 새빨간 거짓말 사과의 주인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지난 해 12월 19일, 끔찍한 수요일. 오후 6시에 뿌려진 ‘예측의 정확도’는 나의 심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지난 해 6월 ‘동성애 비하 발언 이명박의 입에 오바로크’를 쳤던 한 성소수자인권운동단체의 퍼포먼스를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았고, ‘이명박을 하나님께 봉헌하소서!’, ‘이명박은 대선후보 자격없다!’ 등의 내용이 담긴 피켓을 만들고 나갔던 나로선 한편 두려움까지 느꼈다. 과연 이 두려움과 걱정 그리고 실망감은 나만의 것일까?
지난 10년 간 성소수자운동은 큰 성장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우리들만의 커뮤니티는 인터넷 공간을 벗어나 공동체를 지향하기 시작했고 다양한 단체, 모임들이 생겨나고 있다. 비록 잃어버린 10년, 배신의 5년을 보냈다 하더라도 기득권의 최정점인 사람이 직접적으로 성소수자들을 공격하거나 ‘비정상’ 운운하지는 않았다.
상황은 달라졌다. 성소수자진영은 신자유주의를 넘어 보수주의를 전면에 내건 대통령을 처음으로 맞이했다. 조지 부시처럼 분명히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걸고넘어지며 자신의 지지기반을 다질 것이 확실하다. 이 지지기반은 경쟁의 논리, 실용정부란 이름으로 포장되며 경제, 생활, 문화 전반에 확산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차별금지법의 올바른 제정을 위한 성소수자들의 행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가 약속했던 차별금지법이 누더기가 되는 것을 반대했던 투쟁에 성소수자들은 용감하게 싸웠다. 온라인에서 거리에서 줄기차게 외쳤던 성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누더기 차별금지법 정부 확정안으로 결정이 되었지만 또 다른 투쟁이 성소수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의 싸움에서 성소수자들이 맞닥뜨릴 사회는 ‘다름은 틀림으로 배제’될 것이며, ‘관용은 오간 데 없이 배척과 억압 그리고 차별’이 시작될 것이 분명하다. 사회 구성원들의 눈과 귀 그리고 입을 막아버리는 상황을 깨고 사회 보편적 ‘인권이 보장되는’ 세상을 만드는 투쟁은 또 다른 운동의 성장과 확산을 가져올 것이다. 이 투쟁은 당사자 운동을 넘어 사회 진보를 바라는 여러 세력과 함께 연대할 때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며 더 빛을 바랄 것이다. 앞으로의 5년은 또 다른 희망과 전망을 만드는 5년으로 바꿀 것이다.
“차라리 경제를 살리지 마라”
- 박현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
막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난, 노동자들은, 노동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뭘 바랄까? 어쩌면 바라는 게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명박의 공약은 ‘경제살리기’ 하나로 정리될 것이고, 우리나라에서 경제살리기는 곧 ‘노동자, 민중들 죽이기’로 연결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바라는 게 있다면 경제를 안 살렸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야 노동자, 민중들이 더 이상 힘들어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명박의 공공부문 3대 공약 중 하나는 ‘민간이 잘하는 것은 민간에 과감히 이양’이다. 외주화시키겠다는 것일 테고, 정규직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만들겠다는 것일 테다. 민생경제 살리기 10대 과제 중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고수해서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물론 차별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저런 핑계를 갖다 부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는 일은 동일노동이 아니라고 할 테고, 그러니 차별이 아니라고 하는 일은 계속 발생할 것 같다. 핵심은 노무현 정부에 이어서 이명박 정부도 비정규직을 당연한 고용형태로 인정하게 만들려는 정책을 편다는 사실일 것이다.
민생경제 살리기 10대 과제 첫 번째 칸에 ‘일자리 창출과 청년실업 해소’가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의 실천방안 첫 번째에는 ‘7% 경제성장으로 연간 60만개 5년간 300만개 일자리 창출’이다. 하지만 그 일자리가 노동자들이 원하는 안정적인 일자리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든 첫 번째, 가장 큰 이유는 ‘고용안정’이었다. ‘업체가 날아간다더라, 재계약이 안 된다더라’는 이유 때문에 노동조합을 만들고 싸움을 시작했다. 일자리 창출 좋다. 하지만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일자리 말고,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연간 60만개 일자리가 1년마다 자르고 재고용하는, 그래서 5년 동안 300만개를 만드는 일자리는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게 매년 노동자들을 자르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 고용하면서 일자리를 만들고, 정규직 자르고 그 자리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면서 경제성장 이룰 거면… 이명박에게 바라는 게 있다. 경제 안 살렸으면 좋겠다!
당신이 말하는 ‘성공’ 속에 장애인도 함께 있는지
- 김도현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비롯한 장애계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나름의 인연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그래서 길거리의 집회에서도 늘 조우할 수 있었던 양대 진보정당의 후보를 제외하고는, 필자가 얼굴을 직접 본 대선 후보로는 이명박 당선자가 유일하니 말이다. 2002년 7월말, 장애인이동권연대는 ‘발산역리프트 장애인 추락참사’에 대한 서울시의 공개사과와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서울시청 식당을 점거했고, 그 자리에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과 어렵게 면담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면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고, 이후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시청 앞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해야 했지만 말이다.
한국사회의 중증장애인 대중들은 2001년 이후 장애인에 대한 차별철폐와 기본적인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을 폭발시켰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서울시장으로 재직했던 기간은 2002년부터 2006년까지였다. 그래서 장애인 대중의 절실한 요구를 가지고 서울시와 대화를 요구할 때마다, 장애계는 이명박이라는 서울시정의 책임자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에서도, 이번 대선에서도, 그에게서 어떤 진정성을 찾기는 어려웠다. 장애인대중의 피땀 어린 투쟁을 통해 쟁취된 이동권 문제는 그가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준 정치적 성과물로 선전되었고,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자랑하고 있는 복원된 청계천도 장애인에게는 접근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또 하나의 차별천(差別川)일 뿐이었다. 장애아 낙태발언에 대해서도 어떤 성의 있는 사과는 없었으며, 장애계가 대선후보자들을 초청해 벌인 토론회에 그는 당일 급작스럽게 참석을 취소시키고 오지 않았다. 장애계가 요구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한나라당이 ‘제2의 사학법’이라며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토론회 며칠 전 한나라당의 주도 아래 활동보조인서비스 예산의 대폭 삭감시도가 있었던 상황에서, 장애인 대중의 분노에 찬 목소리와 눈길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실용주의와 이에 기반을 둔 신(新)발전체제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반시장적.반기업적 분위기로 경제가 어려워졌다며, 자신은 더욱 친시장적인 정책을 펼칠 테니 열심히 경쟁해서 국민들에게 성공하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지적대로 실용주의는 제대로 된 성찰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의 이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당선자가 이야기하는 성공 속에 과연 장애인 대중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함께 할 자리가 있는지를, 아니 진정 국민 모두가 함께 나눌 수 있는 성공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맞춤형’에 앞서 보편적 복지가 필요하다
- 강동진 |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
이명박 당선자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기업 CEO에 오른 성공신화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일종의 자수성가형, 능력 있는 인물이라는 이미지에 따라 그에게 던져진 지지표에는 경제성장을 이끌어 일자리도 만들고, 양극화도 해소하고,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달라는 기대가 듬뿍 담겨져 있다.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을 나름대로 말하자면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친기업적인 사회여건을 조성하고, 경제성장의 열매가 이 사회의 그늘진 곳에 햇볕을 비추게 만들어 따뜻한 사회, 그늘과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자”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생애주기별 맞춤형 통합보건.복지체계를 구축하고, 가난의 대물림을 단절시키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최소한 다음과 같은 대책은 앞으로 5년간 국가운영을 담당할 이명박 정부 하에서는 기틀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상대적 빈곤선을 도입하여 이 빈곤선 이하의 계층에게는 생활을 영위할 소득기반과 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 이러저러한 기준을 들이대어 수급권자에서 탈락된 비수급 빈곤층의 권리가 우선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빈곤층에게 국가가 책임지고 사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교육, 의료, 주거, 간병, 보육 등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있어서 빈곤층은 비용부담과 사회보험제도가 포괄하지 못하는 제도적 미비함으로 인해, 아주 일부분만 그것도 제한된 혜택만 누리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최소한 빈곤층에게는 이러한 사회서비스가 어떠한 장벽이나 제한 없이 권리로서 제공될 수 있는 사회적.공적 기반 구축해야 한다. 셋째, 빈곤층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이른바 ‘근로빈곤층’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획기적 발상전환이 요구된다. 이들은 대부분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일을 열심히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매우 힘든 상황이다. 기간 자활대책, 사회적 일자리, 근로장려제도 마련 등의 대책을 실시했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이들은 빈곤의 언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 근로빈곤층에 대해 안정적인 고용과 생활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이른바 ‘사회적 책임고용’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위와 같은 세 가지 대책은 집을 지을 수 있는 주춧돌이자 방향타에 불과하다. 소비자가 자신의 입맛과 욕구에 맞는 맞춤형 상품을 고를 수 있는 것처럼, 현재는 빈곤층에게 자신의 다양한 처지와 요구에 맞는 ‘맞춤형’ 대책을 제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왜냐하면 빈곤대책이라는 상품자체가 제대로 생산되지 않거나, 생산되더라도 아주 극소수에게만 해당되는 상품으로 취급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무엇보다 ‘맞춤형’에 앞서 빈곤층 전반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공공재가 필요하다.
이주노동자, 일선 민원행정부터 바꾸라
- 곽영숙 | 시흥시외국인복지센터 과장
“이제 저는 ‘노동권’ 잃은 노동자, ‘비자’없는 외국인일 뿐입니다.”
네팔 이주노동자 선더러씨는 정말 당혹스러웠다. ‘집에 가!’, “Go Home!’ 그저 귀찮다는 듯이 내뱉는 해당공무원의 말 한마디에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휘청하면서도 곰곰이 되짚어 보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입국을 2005년 12월에 하며 3년을 기약 받았으니, 아직 11개월은 족히 남았는데, 왜? 더 이상 일자리도 체류도 허가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유인즉, 제때에 구직등록을 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산업연수생(D-3-2)신분으로 입국하여 1년 후 취업연수(E-8)의 자격을 부여받았고, 이후 사업장이 어려워져 옮기려고 한 그에게 정부는 고용허가제(E-9-2) 자격으로 다시 등록해야 한다고 했다. 정확히 이해 못할 자격의 변화였지만 필요한 구직등록을 위해 해당지역고용지원센터를 방문했다. 헌데 그곳에선 사측으로부터 아직 고용변동신고(고용해지)가 되어있지 않으니 다음에 다시 오라고 했고, 이후 한 달 이내에 신고를 하지 않으면 노동자격과 함께 체류자격까지 상실한다는 안내를 제대로 받지 못한 그는 결국 신고기간을 넘기고 말았던 것이다.
일선 행정의 무성의는 비단 노동부 뿐만은 아니다. 내국인이 주민등록증 재발급을 위해 받아 임시 사용하는‘주민등록증발급신청확인서’에도 사진을 부착한다. 헌데 법무부는 외국인등록증 발급을 사유로 사진하나 붙지 않은 접수증만을 외국국적자에게 건네주며 15일 이상씩 본인여권을 담보한다.
출입국 관리사무소 단속반은 이렇게 발급된 접수증이 위조되는 경우가 많다며, 여권 없이 법무부가 발급한 접수증만을 소지하고 있던 외국인을 강제 단속하여 잡아가 24시간이 지나서야 방면한 적도 있다. 그는 입국한지 2~3일밖에 안된 중국동포였다.
그런 법무부가 올 들어 사회통합과를 신설하고 결혼이민자 등으로 이루어진 다문화가족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차별금지법 제정을 두고 차별금지 범위에서 출신국가, 언어,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등을 포함한 7가지를 제거함으로서 차별받는 대상이 실제 법 효력을 체감할 수 있을지 적잖은 우려를 낳고 있다.
이렇듯 껍데기만 살짝 바꾸는 선심성 행정은 이제 그만두길 바란다. 즉, 제도의 제정이나 개선은 해당 당사자들의 권리보장을 위해 무엇보다 큰 몫을 하겠지만 그에 앞서 동포를, 외국 국적자를 직접 맞이하는 민원창구부터 즉, 일선행정부터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고민하고 바꿔나가야만 할 것이다. 그 밑바닥에는 공무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을 채우는 민원인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즉, 차별 없이 민원인을 긍휼이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인데, 이는 누구보다도 정부행정의 수장인 대통령이 그 본보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