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현실은 영화처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극적인 반전도 물론 없었습니다. 도곡동 타워 팰리스에 사는 사람들 ***%가 이명박을 지지했다는 통계도 나오고, 서울 지역 3,40대가 확고한 지지층이었다는 보고도 들립니다. 이번 선거는 경제를 살려달라는 비장한 외침과 경제부흥의 수혜를 지금도 앞으로도 입을 것이 분명한 이들의 심정적이고 또는 계급적인 의지가 드러난 선거였던 겁니다. 그래서 선거의 결과보다 더 똑똑히 기억해야할 것은 사람들의 의식과 존재의 경향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경제제일 가치, 실용주의적 입장만이 대세를 이룬 선거였다지만, 그래도 당신들이 뽑은 사람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특히 인권관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겠습니다. 아무리 파이가 커진다 한들 집권자가 국민 대다수의 가난과 차별,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만 향후 5년 동안 당신들 행복의 질량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대선 기간 내내, 그이의 어떠한 정책도, 그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들춰보지 않았던 나의 노력은 이 한편의 글을 쓰기 위해 무너져 내립니다. 걱정되고 피곤한 현실을 인정하며, 그의 인권관을 들춰봅니다.
빈곤한 역사의식에 경제제일주의
“대학을 졸업한 젊은 사람들도 우리는 ‘블루칼라’가 아니라는 프라이드(자부심)을 갖고 일하는데 대학교수라는 사람들이 노조를 만들겠다고 한다. (교수들이) 특권층으로서의 프라이드도 없는 집단으로 스스로 전락했다”며 이명박 당선자는 서울파이낸스포럼 초청 조찬 강연에서 교수노조 허용 반대에 대한 입장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의 발언이 노동자에 대한, 또는 노동조합에 대한 의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덧붙여 그는 서울시장 재직시절의 경험을 들추며 “과거 서울시 오케스트라가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돼 있었는데 아마 현악기 줄이 금속이라서 그랬나 보다”며 조롱 섞인 말을 뱉기도 했습니다. 발언이 문제를 낳자 이 당선자는 “투쟁 일변도의 노조활동을 변화시켜 생산적인 방향으로 노조를 탈바꿈해야 한다는 의미며 노조를 비하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그가 사로잡힌 특권의식과 노동권에 대한 의식의 수준은 만천하에 공개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낙태에 대한 입장이라면서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 태어난다든지, 이런 불가피한 낙태는 용납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도 말해, 격분한 장애인 단체 활동가들이 이명박 선거 캠프를 점거해 농성을 벌이는 사태를 빚기도 했지요. 장애를 가진 사람은 생명권을 박탈당해도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밝힌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당선자에게 장애인, 여성, 청소년, 성소수자, 이주민에 대한 감수성을 기대할 수 있을지 앞이 캄캄할 뿐입니다.
선거운동 기간 중 참모들을 당황케 한 그의 발언 몇 가지를 더 보겠습니다. 그는 “아이를 낳아 키워본 사람만이 보육을 책임질 수 있고, 고 3생을 네 명은 키워 봐야 교육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보육과 교육의 공공성에 대한 비전을 기대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여전히 보육이나 교육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 전가하고, 경쟁력 있는 사람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학교를 자리매김 시킬 그의 정책이 눈에 불 보듯 뻔히 보입니다. 사교육 시장의 팽창은 그의 집권 5년 동안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힐 것입니다. 또한 그는 한 강연회에서 “요즘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 70,80년대 빈둥빈둥 놀면서 혜택을 입은 사람들인데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고도 말했습니다. 빈곤한 역사의식뿐만 아니라, 경제 제일 주의자인 그의 진면목을 드러낸 진심어린 멘트였습니다.
그의 빈곤한 역사의식은 광주항쟁을 ‘광주사태’로 부마항쟁을 ‘부마사태’로 칭하는 데서도 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이것은 그가 스스로를 ‘미래지향적 실용세력’으로 부르며 암울한 과거사에 대한 청산작업을 통칭해 ‘과거 지향적 이념세력의 실패’로 규정하는 것에서 분명해졌습니다. 선거기간 내내 그가 들었던 ‘친북좌파와 보수우파’의 대립구도는 합리적인 시장주의자조차도 될 수 없는 그의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내주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다보스포럼 연설에서 “최근 일부 아시아 정치지도자들은 과거역사에 얽매여 국가 간의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아시아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는 대목에서 일본의 야스쿠니 참배를 둘러싼 군사적인 긴장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문제제기 자체를 왜곡시켰습니다. 행정수도가 건설되면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수도 이전을 막겠다”고 발언했던 것처럼 그에게 민주주의는 거추장스런 장식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서울시장 재직시절 “서울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봉헌사로 서울시민을 경악에 빠뜨렸던 그. 민주주의와 인권을 어디에 바칠지 걱정근심이 앞을 가릴 뿐입니다.
천박을 넘어 폭력적이기까지 한
급기야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 6차 합동연설회에 앞서서는 정우택 충청북도지사의 “예전 관찰사였다면 관기(官妓)라도 하나 넣어드렸을 텐데”라는 말에, “어제 온 게 정 지사가 보낸 거 아니었냐?”는 농담을 주고받아서 물의를 빚었습니다. 파문이 식지도 않은 상황에서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일간지 편집국장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는 ”현지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선배는 마사지 걸들이 있는 곳을 갈 경우 얼굴이 덜 예쁜 여자를 고른다더라.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얼굴이 예쁜 여자는 이미 많은 손님들을 받았겠지만 얼굴이 덜 예쁜 여자들은 자신을 선택해 준 게 고마워 성심성의껏 서비스를 하게 된다“고 발언했습니다. 분노한 여성단체들이 공개질의서를 보내자 이 당선자는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기회가 주어져서 모두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는 답변을 했으며, 11월에 있은 여성정책 토론회에서는 자신의 발언이 사과할 일이 아니라고 말해, 자신의 천박하고 폭력적인 여성관을 고수했습니다. 우려를 넘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이명박의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갈 앞날이 암담할 따름입니다.
선거기간동안 그의 참모들은 이 당선자의 강연내용을 꼼꼼히 수첩에 옮겨 적어야 했다고 합니다. 어떤 돌발사태가 터질지 모르니 이에 대한 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지요. 문제는 그의 입단속은 선거로 끝났겠지만, 이제 남은 것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그의 인권관입니다. 심지어 압도적인 결과로 당선된 오만함으로 인해, 향후 반성의 기회는 그에게 당분간 오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의 생각과 의지를 반영한 정책이 물밀듯 쏟아질 것입니다. 그것도 경제와 실리, 효용의 가치로 분장한 거대한 밀물일 것이 분명합니다. 그가 뚫겠다는 경부운하로 인해 죽어갈 뭇 생명의 비명과 생존권을 잃고 이윤추구와 경쟁에 떠밀려 살해당할 무수한 사회적 약자들의 절규가 벌써 들리는 듯합니다. 아득하고 아득한 현실. 이것이 제가 평가하는 이명박의 인권입니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