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국제중 반대 농성장 차린다. 내 쫓아라”

[현장] 국제중 반대, 찬성 충돌... 영훈고 교장이 사실상 지휘

22일 오전 11시 서울 강북구 영훈초중고교 앞 한 문구점. 양복에 붉은 색 넥타이를 한 노년 신사가 서 있다. 두꺼운 안경 너머로 보이는 10명의 사람들에게 시선이 고정돼 있었다.

이 신사가 눈을 떼지 못한 10여명의 사람들은 학교 정문 50m정도 떨어진 곳에 서 있다. 앞에는 ‘영훈중학교 국제중 전환반대 농성돌입 강북주민대표 기자회견’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들려있다.

서울 영훈중학교의 국제중 전환을 반대하는 강북주민 대책위원회가 설립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농성에 들어갔다. 유영민 기자

국제중을 반대하는 ‘강북주민 대책위원회’ 사람들이다. 손에는 ‘사교육비 폭등, 초등학교부터 입시지옥, 귀족학교 국제중 설립 반대!’, ‘제가 갈 중학교가 사라졌어요! -송천초등학교 아이들’이라 쓴 작은 피켓도 들려 있다.

이들은 “국제중학교가 들어오면서 강북구에 학교가 하나 사라진다. 아이들은 더 먼 거리의 중학교로 내쫓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다”면서 “이것이 서울시 민선 교육감이 강북구에 내려주는 첫 번째 선물이란 말인가. 같은 공간 안에서 누구는 국제중 학생이고 누구는 그냥 영훈중 학생인가. 누구는 귀족학생이고 누구는 평민 학생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들은 “성공과 자본이라는 구호와 속임수 논리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히게 될 강북구의 수많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우리 주민들은 편안하게 하루의 잠을 누릴 수조차 없게 될 것”이라며 “국제중 설립 계획이 철회될 때까지 이곳을 지킬 것”이라고 농성 시작을 알렸다.

기자회견은 30여분 동안 진행됐다. 미아2동에 사는 학부모 등의 발언에 이어 기자회견문을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면서 순조롭게 끝나는 듯 했다.

그 순간 문구점과 학교 담벼락 사이에 있던 10여명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강북주민 대책위원회 사람들에게 가서 “누구 마음대로 주민대표를 하는 거냐”, “여기서 사는 거 맞냐”. “주소가 어떻게 되냐”면서 손가락질로 따지기 시작했다.

문구점 안 중년 신사는 이 광경을 여전히 문구점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은 “우리 강북구가 잘산다고 생각하냐, 못 산다고 생각하냐. 그것도 모르면 말을 하지 말하라. 국제중이 들어오면 외국으로 나가는 외화도 줄고 좋은 거다”며 “우리 손자, 손녀도 미국으로 유학보내고 싶은데 돈이 없어 못 보낸다. 국제중이 생기면 보낼 수 있어서 좋은 거 아니냐”고 얘기했다.

확인 결과 이 사람들은 강북구 송천동(옛 미아5동) 주민자치센터 주민자치위원이 대부분이었다.

정찬경 송천동 주민자치위원장은 “강북주민들 중에 반대하는 사람은 10명 중에 1명뿐이다. 다 찬성하는 데 왜 난리냐”며 “국제중을 세워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게 잘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랑이는 15분여 동안 계속됐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중요하다”고 반론을 피던 강북주민 대책위원회 사람들은 더 이상은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기자회견을 정리했다. 그리고 학교 골목 입구 ㅎ은행 담벼락으로 이동했다.

정영택 영훈고 교장이 농성장 앞을 지나가고 있다. 유영민 기자

마침내 문구점에 있던 중년 신사가 움직였다. 문구점에서 나와 얼굴을 보인 그 신사는 정영택 영훈고 교장이었다. 영훈고는 영훈중을 운영하는 학교법인 영훈학원 소속 고등학교로 영훈중학교와 같은 정문을 쓰고 있다.

강북주민 대책위원회 사람들 움직임을 주시하던 정 교장은 정찬경 주민자치위원장 등 2~3명의 찬성하는 주민들에게 다가가 얘기했다.

“저기 현판 아래에서 농성장을 차리려는 것 같다. 내 쫒아라.”

이동하는 강북주민 대책위원회 사람들을 서서 바라보기만 하던 주민차지위원 등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골목 입구에 농성장을 설치하는 강북주민 대책위원회에서 가서 다시 실랑이를 벌였다. 정 교장도 느린 듯한 발걸음으로 분주히 움직였다. 농성장 주변 꽃집, 시계방 등 상가를 드나들었다. 그리고 상가 주인들이 나왔다.

10여분 간 상황이 이어졌다. 강북경찰서 정보계 한 관계자가 정 교장을 불렀다. 정 교장과 2~3분 정도 얘기를 나눈 정보과 관계자는 주민자치위원 등 찬성 주민들에게 “그만하시라”고 중재에 나섰다.

이 관계자는 “반대하는 사람들도 합법적으로 신고를 내고 하는 만큼 이쯤에서 그만 두시라”고 얘기하며, 찬성 주민들의 항의를 중지시켰다.

정 교장과 2차례나 얘기를 나눈 한 주민자치위원은 정 교장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고 잡아뗐다.

정 교장에게 영훈고 교장이 아니냐고 묻자 정 교장은 “3년 전에 퇴직했다. 지금은 그냥 주민으로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훈고에 확인 결과 여전히 교장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영훈고 누리집에도 학교장 인사말은 정 교장이 하고 있다.

정 교장은 지난 2006년 1월 사립학교법 개정과 관련해 제주지역 일부 사립학교의 신입생 배정 거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직접 나서서 “니들이 교육을 알기나 해”라는 등 기자회견 자체를 방해한 적이 있다. 김하주 영훈학원 이사장이 한국사립중고법인협의회 회장이었기 때문이다.

강북주민 대책위원회 사람들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김옥성 대책위 공동대표는 “영어몰입은 물론 영어유치원도 다니지 못하는 대다수 강북주민들이 어떻게 영어국제중학교를 다니겠냐”며 “반드시 국제중 설립을 중단시키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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