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초 3학년 '시험지' 대신 '꽃'을 보다

[현장] 일제고사 안 보고 '생태체험학습' 참가한 아이들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 초등학교 3학년생 59만 8524명을 대상으로 일제고사를 강행한 지난 8일 오전 11시15분.
 
성은(10)이는 바위 옆에 조그맣게 핀 흰색 꽃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학교에서 시험지를 들여다보고 있을 시간이다.

전국의 초등학교 3학년생이 일제고사를 보던 8일 130여명의 학생들은 경기 포천 평강식물원을 찾아 생태체험학습을 진행했다.


구절초는 토 냄새 나는 꽃

"킁킁"

무슨 냄새가 나나 연신 코를 벌름거렸다. 몇 번 하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옆에 있던 주연(11)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토 나와. 토 나오는 냄새야. 이게 뭐지?" 성은이는 책을 찾아봤다. '구절초'였다. 성은이에게 구절초는 토 냄새 나는 꽃으로 기억됐다.

"시험 안 봐도 괜찮아요. 실은 공부를 하나도 안 해서 시험을 못 보면 엄마에게 혼날 텐데요, 뭐. 뛰어놀 수 있어서 너무 좋구요. 길이 울퉁불퉁해서 싫어요." 성은이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성은이는 동네 친한 언니인 주연이의 아버지와 함께 왔다. 엄마, 아빠가 오늘 일 하러 갔기 때문이다.

성은이와 함께 온 이상호 씨는 "지금도 학원이다 뭐다 아이들이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미치려고 하는데 굳이 일제고사를 봐야 할까요?"라며 "놀 땐 놀고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14일 시험 대상인 6학년생 아들과도 체험학습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성은이처럼 '국가 수준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보지 않고 '생태체험학습'에 함께한 3학년 학생은 서울, 경기 등에서 온 50여 명이라고 '일제고사를반대하는서울시민모임'은 밝혔다.

다른 학년까지 포함하면 130여 명이 이날 식물원에서 꽃과 식물을 보면서 체험학습을 했다.

단순히 숫자로만 보면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번 체험학습이 갖는 의미는 크다고 시민모임이 설명한다.

시민모임 회원이자 예비학부모라는 이치우 씨는 "신청한 사람은 5~60명이 더 되는데 교과부와 교육청의 강력 제재와 학교 측의 회유로 당일 못 간다고 연락이 왔다"고 귀뜸하며 "이번 일로 교육의 진정한 의미가 어떤 것이고 아이들 창의력과 감수성, 인성을 위한 교육이 어떤 것인지,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오는 14일과 15일 초등학교 6학년과 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체험학습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제고사 안 보는 것도 인정해야"

어울리지 않게 두꺼운 안경을 낀 민재(10)는 손가락으로 잡은 메뚜기를 넣은 통을 찾고 있다. 옆에 있던 기자에게 "아저씨, 물 빨리 먹고 물통 빨리 주시면 안 되요?"라고 묻는다. 신이 난 표정이 가득하다.

민재 엄마 이정숙 씨는 "단순 암기 위주 공부나 시험이 싫었는데 인터넷으로 이런 학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참석하게 됐다"며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민재가 시험을 보지 않더라고 학교에 있어야 하는데. 그걸 인정해 주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담임선생님께 얘기하니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대단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하루 선생님으로 나선 최종진 민주노총 서울본부 부본부장은 미리 강사 준비를 했다. 시민모임은 20여명의 강사로 시민, 학부모단체 관계자 20여명을 강사로 초빙하면서 지난 3일 답사를 오는 등 준비를 했다.

최종진 부본부장은 "서울교육감 선거를 지켜보면서 교육의 공공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며 "성적지상주의로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모는 정책을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딩이여! 시험 없는 세상을 만들어라! 아이들은 버튼에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


아이들을 위한 올바른 교육 생각하는 계기 됐으면

어느덧 예정된 학습이 다 끝나고 오후3시가 넘었다. 드넓은 잔디광장을 뛰면서 도토리 많이 주워오기 내기를 하던 성은이는 옆에 있던 진행자에게 "더 놀다가요, 더 놀다가요"라고 보챈다. 아쉬운 모양이다.

진행자가 "다음에 친구들과 와서 즐겁게 공부하고 놀자"고 몇 번 말하자 성은이는 그제서야 발걸음을 뗐다. 그래도 부족했던 지 연신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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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학습 , 일제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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