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6일 문자를 받았다. "[부고]기륭분회 권명희 조합원 암투병 중 오늘 새벽 운명하심-부천순천향병원 발인 27일 기륭분회장" 90일이 넘는 단식에도 기륭전자 회장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었다. 김소연 분회장은 꼬챙이마냥 뼈와 거죽만 남았지만, 눈빛만은 형형하였다.
지난 10월 20일 경찰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던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주 김소연 분회장을 연행하고 있다. 노동과세계 이기태 기자 |
고공농성 조합원의 두 딸 이야기
기륭노조의 투쟁에 발을 담근 건 지난 5월 말, 구로역 CCTV 탑 위에 두 동지가 고공농성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가까이에서 농성중이니 외면할 수가 없었고, 출퇴근 길에 수시로 들렀다. 자주 만나니 이런저런 소식들을 듣게 된다. 고공농성 올라간 두 동지의 딸과 아들이 이 지역 초,중학교를 다닌다는 말을 들었다.
'세상에…. 그래, 그렇지…. 저 사람들도 당연히 가족이 있고,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바로 저 비정규직 자녀들이지…' 윤종희 동지의 큰 딸은 ㄴ중학교에, 작은 딸은 ㄱ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큰 딸을 만나 엄마 일을 돕자며 함께 UCC를 만들자고 했다. "엄마가 얼른 내려오면 좋겠지?"라고 물었더니, "내려오면 뭐해요? 사장이 질 것 같지도 않고, 엄마는 계속 집에 안들어올텐데…. 벌써 3년째예요."라고 대답했다. 말문이 턱- 막히고 가슴이 먹먹하였다. "알리는 건 좋지만, 구걸하고 싶진 않아요"라고 당차게 말하는 큰 딸의 동의를 어렵게 구하여, '우리 엄마를 돌려주세요'라는 UCC가 만들어졌다.
우리 학교 영길이
돌아가셨다는 권명희 조합원의 얼굴을 본 기억은 나지 않는다. 노조 탄압에 맞서 싸운 지 벌써 3년인데, 그 초반에 암 발병이 확인되어 투병중이라고 말만 들었다.
금요일 7교시, 유난히 힘든 날의 마지막 시간이다. 출석부를 펴니 영길이가 어제부터 결석처리되어 있다. "영길이 왜 안 왔어?"물어보니, 애들이 "엄마가 돌아가셨대요."그런다. 영길이는 내가 작년에 사회를, 금년에 국사를 가르치는 아이다. 친구관계가 그리 원만하지 못해 종종 싸운다. 주로 친구들이 건드리고 약올리면, 영길이가 참고 참다가 폭발하는데, 그 분노에 한 같은 게 서려있다. 그래서 작년에 여러 선생님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 영길이 엄마가 돌아가셨다니 걱정이 더 앞선다. '내가 담임은 아니지만, 영길이 엄마 장례식장에는 가 봐야지. 기륭 권명희 동지 장례식장은 못가도, 영길이 엄마 장례식장은 가봐야지…' 수업 끝나고 내려와 담임 선생님한테 물어보니, 장례식장이 순천향병원이란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몇 호실인지 알려고 안내판을 찾았다. "고인: 권명희"를 먼저 찾았다. 글씨가 크게 쓰여져 있다. 그리고 다른 칸 종이에서 열심히 상주 이름 김영길을 찾는데, 아무리 봐도 없다. 같이 간 선생님이 외친다. "어쩜 좋아. 선생님! 저기봐요. 영길이 엄마가 권명희 동지인가봐…"하였다. 세상에… 고인:권명희 아래 상주 칸에 아빠 이름과 영길이 이름과 동생 이름이 있었다. 설마 내가 가르치는 영길이 엄마가 기륭노조의 돌아가신 조합원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부모가 바로 그 비정규직이고, 남의 일이 아니라고 말했는데, 이렇게 내 눈 앞에서 벌어지다니.
세상이 키워주는 영길이
향을 사르기 전, 국화꽃 속에 들어가있는 영길이 엄마의 영정사진을 보니, 눈물이 절로 났다. 얌전하고 선한 눈매, 파마한 짧은 머리, 둥글둥글한 얼굴, 이웃집 누나처럼 편하고 친근한 느낌이었다. 절 두 번 하고 영길이 아버님과 맞절을 하였다. 영길이 아빠는 택시 일을 하시는데, 2년 동안 많이 힘드셨는지 얼굴색이 짙어 보였다. 영길이는 의젓했다. "영길아, 엄마 돌아가셨는데 안 울었어?" 했더니, 슬쩍 웃으며 "저까지 엉엉 울어야겠어요? 다들 힘들어하는데 저라도 참아야지요." 학교에서 보던 영길이 모습이 아니었다. '음, 많이 컸구나. 세상이 영길이를 키워주고 있구나…' 싶었다.
영길이의 엄마이자 기륭전자 노조 조합원인 권명희 동지의 유해는 전태일 열사가 묻혀 있는 마석 모란공원에 모셔졌다. 그 후 영길이랑 동생 은주랑 기륭 투쟁 문화제에도 다녀왔다. 은주는 우리학교 1학년. 내가 일주일에 세 시간 사회를 가르친다. 은주는 심심찮게 교무실에 내려와 묻는다. "선생님, 엄마 회사에 또 언제 가요?" "음, 가야지. 이번 주는 바쁘고, 다음 주 월요일 어때? 이제 구로공단역 근처 새로 이사 간 기륭 신사옥 앞에서 매주 월,목에 문화제 한다고 그랬지?" "좋아요. 꼭 가야 되요. 제가 엄마회사 가보고 싶다고 했더니, 아빠가 선생님이랑 같이 가랬어요."
이런 게 불교에서 말하는 인드라망인가? 세상은 이렇게 그물처럼 촘촘히 엮여 있는 것을…. 나는 늘 나 하나 옳은가 그른가, 떳떳한가 비겁한가만 고민하고 살아왔다. 맛있는 거 사달라고 늘 졸라대는 형석이 아빠는 지하철 2호선에서 운전을 하신다고 했다. 아침마다 바뀐 시간표를 각 반에 전달해주는 경호는 엄마가 사회보험노조 조합원이라며 전교조도 노조냐고 관심을 표한다. 내년에는 주변 선생님들에게 가정방문 꼭 하자고 말하고, 나도 꼭 해야지….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라는 신영복 선생님의 글귀가 가슴을 친다.


지난 10월 20일 경찰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던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주 김소연 분회장을 연행하고 있다. 노동과세계 이기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