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진실은 왜 이리 뒤늦게 찾아올까

- 고 이광웅 선생님께

선생님.

겨울이어도 겨울 같지 않게 날이 따뜻하더니 오늘은 칼칼한 바람에 눈발마저 분분합니다. 선생님이 계신 그 곳에도 해를 따라 달이 돌고, 어둠 속 별이 째릿째릿 빛나겠지요?
 
선생님을 뵈온 지 벌써 17년 여 세월이 흘렀습니다. 17년! 우리 생의 한대목이 그렇게 속절없이 지나가버렸다는 생각에 가슴이 그저 먹먹할 따름입니다.
 
1982년 군산제일고등학교에 시인이자 국어교사로 재직 / 그해 이른바 전형적인 고문조작 사건 중 하나인 '오송회' 사건 주범으로 몰려 5년 간 옥살이 / 1987년 군산 서흥중으로 복직 / 1989년 전교조 가입으로 해직 / 1992년 12월 22일 지병인 위암으로 사망.
 
선생님. 같은 학교 교사끼리 독서클럽을 만들어, 월북한 오장환 시인의 시집『병든 서울』을 돌려보았다는 이유로, 4·19 기념행사를 갖고 5·18 광주 민주항쟁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묵념을 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빨갱이'가 되어 교사간첩단으로 둔갑한 것이 바로 오송회 사건이었지요. 그러나 다행이, 지난 11월 25일 무려 26년만에 조작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한 재심에서 재판부 전원 일치의 판정으로 오송회 사건 관련자 9명에 대한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선생님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무죄 선고를 받고 만세를 부르는 관련자들의 사진에 선생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진실은 이렇게 뒤늦게 찾아오는 걸까요? 진실이 우리에게 다가와 입을 맞추기까지 이렇게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할까요? 은폐된 채 우리의 근현대사 속에 묻힌 또 다른 숱한 진실들에 비하면 그마나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선생님의 부재 속에 찾아든 진실 앞에 가슴이 시리어 미어집니다.
 
군산인가 이리인가 어느 호프집에서 부르던 선생님의 '월미도'라는 노래를 잊지 못합니다.
 
복사꽃 살구꽃이 하얗게 피어나고…. 이렇게 시작하는 그 노래에 묻어나던 선생님의 선한 눈매가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이 땅에서/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 이 땅에서/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 // 이 땅에서/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 목숨을 걸고 / 목숨을 걸고….

군산의 금강하구에 있는 선생님 시비에 새겨진 「목숨을 걸고」라는 시입니다. 목숨까지는 아닐지라도 인간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진정성'마저 잊혀져 가는 오늘, 멀리서 아련히 미소 짓고 계신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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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회 , 이광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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