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대리인인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이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이례적으로 신문 이름까지 거론하며 밝힌 내용이다. 3분여의 기자회견 시간 동안 1분여를 언론의 취재행태에 대해 폭로하며 일부언론의 2차가해 행위 대한 경고를 보냈다.
피해자 대리인 기자회견을 보도한 지난 12일자 <동아일보> 기사 갈무리화면. 대리인이 비판한 자사 2차 가해 부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쓰지 않았다. |
<동아> “함께 있을 때 어땠나요?”, <조선> “만나고 싶다”
이에 따르면 <동아일보> 기자는 피해자에게 “(가해자와) 함께 있을 때 어땠나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근무처를 찾아가는 것은 물론 밤 11시경에도 집에 찾아와 초인종을 여러 차례 눌렀다.
<조선일보>는 피해자 전화기에 “만나서 이야기 듣고 싶다”는 음성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오창익 사무국장은 “피해자가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 피해자와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데 접촉 자체가 피해자에게 고통을 준다”며 “동아일보 등의 행태에 대해서는 법률적인 대응을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당 신문들은 자신을 향해 나온 ‘2차 가해’ 부분과 관련해서 13일 오후 현재까지 아무런 보도를 하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기자회견이 있은 다음 날인 12일자 신문 10면에 ‘민노총, 성폭력건 누설자 찾기에만 집중’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지만 이와 관련된 내용은 한 마디도 없다. 민주노총 진상규명특별위원회에 대한 피해자측 입장만을 부각시켰다.
피해자 대리인 기자회견 내용을 담은 <조선일보> 영상 화면. 여기에도 대리인이 비파한 자사의 2차 가해 부분은 없다. |
<조선일보>는 같은 날 신문 8면에 ‘민노총 뒤늦게 진상조사위 구성’ 제목의 기사에서 관련 내용을 “피해자와 접촉을 시도한 언론들이 ‘2차 가해’를 하고 있다”고 오 사무국장의 발언만 실었다. 구체적으로 자사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기자회견 내용을 찍어 자신의 누리집에 올린 동영상에도 관련 내용은 편집돼 빠져있다.
석간 발행으로 기자회견 당일인 11일자 5면에 ‘민노총 자체조사…마지막 기회 주겠다’는 제목으로 보도한 <문화일보> 역시 관련 내용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국가기관이 아니면 알수없는 피해자 개인정보 보수신문에게 제공되었나?
물론 당시 대리인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진상조사에 대한 피해자측 입장이 중요하게 나온 건 사실이다. 그러나 특정 언론에 의한 피해자의 2차 가해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한 것 또한 사실이다.
최소한의 객관적인 보도라면 이 역시 비중 있게 다뤘어야 하는데 오히려 이를 스스로 ‘은폐’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사)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12일 낸 성명에서 “민주노총이 성폭행 사건을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처리하지 않은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그러나 민주노총의 잘못을 파헤친다는 명분으로 피해자에게 거듭 고통을 안겨주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들 신문은 민주노총이 성폭행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를 ‘2차 가해 했다’는 점을 비판했다. 이제 스스로에게도 같은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기 바란다”고 민언련은 충고했다.
그렇다고 다른 신문과 방송에서 이를 찾아볼 수는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 신문의 2차 가해를 알린 곳은 <오마이뉴스>와 <민중언론 참세상>, <프레시안> 등 인터넷 언론매체 뿐이었다.
더불어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이들 신문이 어떻게 알고 피해자의 일터와 집을 찾아가고 전화와 문자까지 했나는 것이다.
피해자측에 따르면 이들 언론에게 피해자 개인 정보를 제공해 준 곳은 경찰과 국가정보원, 법원등이 아니면 알아내기 힘든 내용들이 포함되어있다. 그래서인지 이들 언론은 기자회견 전부터 쏟아낸 관련 보도에서 피해자의 소속 연맹은 물론 활동지역, 직책, 어느 곳에 올라온 사진 등까지 시나브로 알리고 있었다.
결국은 국가기관이 피해자 신상 정보를 언론에 주고 언론은 이를 받아 피해자를 집요하게 찾아가 아직까지도‘2차 가해’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휴지조각 만든 ‘피해자 권리’
이들에게 지난 1998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여성폭력추방주간에 맞춰 선포한 성폭력피해자권리헌장 가운데 ‘보도과정에서의 권리’는 이미 휴지 조작에 불과했다.
보도과정에서의 권리에는 △사건보도 시 신분이 노출되지 않고 보호받을 권리 △피해자의 인격권과 사생활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 △사건의 본질과 상관없는 영상이나 멘트로 대상화되거나 왜곡되지 않고 인격적 주체로서 배려받고 존중 받을 권리 △국민의 알 권리라는 이유로 원하지 않는 인터뷰를 강요 받지 않을 권리 등이 포함돼 있다.
오창익 사무국장은 “민감한 개인정보가 국가기관에 의해 언론에 유출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지금은 언론과 국가기관에 의한 2차 가해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 대리인 기자회견을 보도한 지난 12일자 <동아일보> 기사 갈무리화면. 대리인이 비판한 자사 2차 가해 부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