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 일제고사가 시행된 31일 오전 9시30분. 서울 동화면세점 주위에서 만난 최용철 씨가 연신 고개를 저었다. 중학교 3학년인 막내 딸은 일제고사 대신 경기 여주로 체험학습을 떠나기로 했다. 그런 딸에게 학교는 일제고사를 보라고 계속 전화하고 있었다.
최용철 씨는 “일제고사 응시여부를 학생과 학부모에게 권한을 주고 체험학습을 인정했다는 이유로 선생님을 해직시키는 무리한 행위를 보고 분노를 느꼈다”며 “아이에게 다툼이 있는 1등보다 나눔이 있는 아름다운 꼴등이 좋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체험학습 출발 직전까지 시험 선택 강요 전화
일제고사 대신에 체험학습을 선택한 한 학생이 일제고사 폐지 전국시민모임이 마련한 체험학습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차에 오르고 있다. 전국시민모임은 학교측의 시험 강요 등에도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행사한 1400여명이 체험학습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최대현 기자 |
‘일제고사’가 아닌 ‘체험학습’을 선택한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당일까지 학교측에 시달려야 했다. 학교측이 끈질지게 ‘체험학습’이 아닌 ‘일제고사’를 선택토록 강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체험학습 신청을 했다가 막판에 포기한 학생과 학부모가 꽤 많았다.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회 등 전국 학부모단체로 꾸려진 ‘일제고사 폐지 전국시민모임’에 따르면 경기 한 중학교 ㄱ학생과 학부모는 일제고사 해직교사 기사를 보고서 체험학습 참가를 결심하고 신청서를 냈다.
학교에서는 “체험학습을 참석하면 무단 결석 처리되고 고등학교 진학하는 데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고 얘기했다. 이에 학생과 학부모가 진학하려는 고교에 직접 문의를 했는데 출결상황을 반영해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는 고교측의 답변을 들었다. 이 답변을 듣고 결국 체험학습을 포기해야 했다.
이 학부모는 “아이의 의사결정과 엄연히 체험학습은 수업의 연장이라던 학교가 모든 규정을 무시하고 무단 결석 처리하겠다는 것에 아이가 상처를 받은 듯하다”고 말했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ㄴ학생과 학부모는 체험학습 신청서를 작성해 학교에 내려는데 학교측이 다음 날 혼자 시험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혼자 시험을 봐야 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ㄴ학생은 시험을 보기로 했다. “체험학습을 결심한 아이가 학교 얘기를 듣고 풀이 죽었다. 너무 안쓰러웠다”고 ㄴ학생 학부모는 전했다.
서울 한 여중 체험학습 학생 불러 욕하고 강제 시험
서울의 한 여중은 교감이 체험학습 가려던 학생을 불러 욕을 하면서 시험을 강요해 결국 이 학생은 울면서 시험을 본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당초 각 시도 교육시민단체가 밝혔던 체험학습 참가예정자 1600여명은 1470여명으로 집계됐다. 1470여명의 학생들은 경기 여주 신륵사와 서울 초안산, 낙동강 일대 등을 찾아 체험학습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전국시민모임 등 체험학습을 진행한 교육시민사회단체는 일제고사에 대해 “아이의 학습이 부진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분석과 파악 없이 그저 단 한 차례의 지필고사 결과를 가지고 맞춤식 교육을 하겠다는 너무도 안이한 발상과 정책”이라며 “가정적으로 불우한 아이, 지적 능력이 부족한 아이, 학습에 전혀 흥미를 가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상처만 하나 더 얹어 주고 좌절감만을 안겨 줄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학부모는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꿈꾸고 있다. ‘경쟁보다는 협력’을 ‘차별보다는 지원’을 하는 교육을 원한다”라며 “그래서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일제고사 전날인 지난 30일 ‘일제고사 폐지 불복종운동 실천 선언’을 한 서울의 일부 교사들은 학교측에 의해 감금되거나 시험 감독을 하지 못하는 등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일제고사 폐지 불복종운동 실천을 선언한 교사를 감금한 것으로 전해진 서울 우장초등학교는 31일 학교 정문을 굳게 닫았다. 최대현 기자 |
‘감금’학생과 학부모 시험선택권
서울 강서구 우장초에서 6학년4반을 가르치는 박진보 교사는 이날 오전 1시간 동안 학교 건물 1층 교장실 앞 복도에 갇혀있어야 했다.
박 교사에 따르면 오전 8시20분 출근한 박 교사는 학교장, 평가모니터링과 보조 감독으로 온 학부모, 학교지킴이(스쿨폴리스) 등 20여명에 의해 막혀 자신이 담임인 4반 교실로 올라가지도 못했다. 오히려 이들에게 손에 끌려 학교건물 1층 교장실 앞으로 가야 했다.
박 교사는 “두 팔과 한 쪽 다리를 들고 가방까지 끌고 질질 끌려갔다. 그리고 방화문을 닫고 학생들이 출입하는 중앙현관에는 철사로 걸어 잠궈 못 나오도록 막았다”라고 전했다. 복도에서 나오는 곳이 모두 막혀 사실상 감금된 상황이 된 셈이다.
박 교사 112로 전화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학교에 온 경찰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냥 갔다. 복도에 갇혀 있는 상황은 1시간 정도 진행됐다. 소식을 듣고 취재진이 오자 그 때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이 학교 황 아무개 교장은 “감금한 적은 없다”며 “어려운 상황에서 시험이 끝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했다.
학교측은 전날 박 교사에게 ‘경고장’을 줬다. 일제고사를 거부했다는 이유였다. 이에 박 교사는 “일제고사를 거부하지 않았다”면서 “학생과 학부모에게 일제고사 응시 여부 선택권을 줬다”고 반박했다.
박 교사는 28명의 학생과 학부모에게 서울시교육청 문제와 자신이 낸 문제 가운데 어떤 문제로 시험을 볼 것인가를 물었다. 그 결과 25명이 서울교육청 문제를 택했다. 3명은 답을 보내오지 않았다.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에 따라 박 교사는 시험을 볼 예정이었다.
박 교사와 함께 불복종운동 실천 명단에 이름을 올린 김경숙 교사(유현초)와 오정희 교사(대방초), 박세영 교사(금호초) 등은 시험 감독을 하지 못했다.
해당 학교 학교장이나 교감이 감독을 대신했다. 특히 오정희 교사의 반에는 이 아무개 서울 남부교육청 초등과장까지 와서 시험 감독을 하지 말고 나가줄 것을 강요하기도 했으며 김경수 교사 학교측은 대책 문건까지 만들어 시험 감독을 못하도록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가운데 청소년들은 등교거부와 오답선언 등의 행동으로 체험학습이 아닌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행동을 했다. ‘무한경쟁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모임 세이노(Say no)’가 밝힌 일부러 오답을 제출하겠다고 밝힌 청소년이 총5864명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돈 없이도 배울 수 있는,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더 이상 죽지 않아도 되는, 청소년이 행복할 수 있는, 그런 교육을 위해 우리는 행동할 것”이라고 외쳤다,.
오답선언을 실행한 신 아무개 학생(서울 ㅎ중 3학년)은 “답은 적당히 쓰고 시험지에는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글을 적었다”고 말했다.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학부모와 교사, 청소년, 시민 등 150여명은 이날 저녁 서울 보신각에 모여 촛불문화제를 열어 ‘해직교사 복직과 일제고사 폐지’를 촉구했다.


일제고사 대신에 체험학습을 선택한 한 학생이 일제고사 폐지 전국시민모임이 마련한 체험학습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차에 오르고 있다. 전국시민모임은 학교측의 시험 강요 등에도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행사한 1400여명이 체험학습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최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