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샘이 깊은 물은 마르지 않는다
내를 이뤄 바다로 가나니"

<1> 전교조결성 20주년 특집

 1982 YMCA 중등교육자협의회

 1985 <민중교육>지 사건

 1986 교육민주화선언

 1987 전국교사협의회

그리고… 1989.5.28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교조 역사 사진중에 수십명의 교사가 굴비 엮이듯이 끌려가는 빛바랜 흑백사진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왼쪽에는 사복경찰의 매서운 눈매가 감시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1989년 5월 28일 전교조가 탄생한 직후의 모습이다. 오늘 전교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30년 전 주권자인 국민의 기본권을 철저하게 유린하던 유신체제가 10·26사태로 핵심이 제거되어 끝났지만 그 체제가 기른 신군부 내란세력의 집권으로 우리 사회의 진보는 한동안 지체되었다.

 

학교교육도 그러했다. 지금 각 분야의 기득권 세력들이 다녔던 그 시대의 학교와 교육체제는 병영과 군사조직에 가까웠다. 필경 이들의 교육관은 거기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터이다. 교육과 별 관계없는 일터에서 평생 분주하게 돌아가면서 언제 새로운 학교나 교육을 꿈꾸어 보았겠는가.

 

유신시대에서 광주민중항쟁을 거쳐 맞이한 1980년대 초 우리 사회가 민주화를 향한 몸살을 앓고 있을 때 교직에 나온 젊은 교사들은 당시의 참담한 교육현실을 보고 가슴을 뜯었다. 일제 강점기에 형성되어 외세의 점령과 전쟁, 그리고 분단과 오랜 독재체제를 거치면서 생겨난 비정상적인 교육 체제를 이들은 용납하기 어려웠다. 살인적인 입시교육이 지배하는 도시의 거대학교 과밀학급과 아예 절망이 지배하는 농촌 학교를 이들은 '교육 불모지대'로 인식하였다.

 

거기에는 교사의 자율성도 학생의 인권도 보편적인 교육적 가치도 발붙일 틈이 없고 완고한 관료주의의 일관 체제만이 작동하고 있었다. 공포가 우리 사회의 일상이었듯이 감시와 통제는 학교의 일상이었다. 학부모의 교육권은 수시로 바뀌는 대입제도와 같은 기만적인 교육정책에 휘둘려 뒤틀렸다. 이렇듯 교육의 3주체는 자기 땅에서 철저히 유배당하고 있었다. 당시 교사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도 대단히 낮았다. 30개 주요 직종 중 초등은 25위, 중등은 21위로 처져 있었다.

 

고통은 치유책을 찾게 만들었다. 앞장 선 사람은 학생들의 올곧은 시선 앞에서 날마다 부끄러움을 느낀 교사들이었다. 이들은 교육자로서 양심의 가책을 힘 삼아 전국 여기저기서 아이들과 교육을 살리는 작은 샘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대다수 선배 교사들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침묵과 굴종에 익숙하던 시절이었다.

 

1980년대 초 이따금 폭압정권의 마수에 걸려 오송회니 아람회니 상록회니 하는 이름의 조작된 공안사건으로 애꿎은 고생을 한 '샘'들도 있었다. 그러나 샘물이 모이면 넘치고 터져 나오는 법이었다. 1985년 초에 나온 부정기 간행물『교육현장』과『민중교육』그리고 YMCA교협 등이 주관한 집회가 그러했다. 교사들의 자주적인 움직임에 놀란 지배세력은『민중교육』을 '모델케이스'로 삼아 상식 밖의 탄압을 자행했다. 관련 교사 2명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하고 필자, 대담 참가자, 원고 전달자까지 17명 전원을 파면·해직하는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정권에 부역하는 이른바 제도언론은 막 솟아오른 샘물에 색깔론과 이념공세의 맹독을 풀었다. 공안사건의 공소장이 판결문이 되던 시절, 법원도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등 돌린 민심을 공포와 기만으로 누를 수는 없는 법이었다. 쫓겨난 교사들을 돕는 모금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면서 30세 전후의 교사들은 두려움이 줄어들고 담대함이 커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힘이 모여 대중의 목소리로 터져 나온 것이 바로 1986년 5월 <교육민주화선언>이었다. 전국에서 477명이 신분의 불이익을 각오하고 서명했다.

 

<선언>은 '교육민주화는 사회민주화의 토대이며 완성'임을 지적하고, 진정한 교육개혁을 위해 '교육, 인간 및 사회를 보는 관점의 개혁'과 '교사 학생 학부모를 교육주체의 자리에 확고히 세울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교사들 스스로 말단관료의 무기력을 떨치고 교사로서 참 삶을 살아 나가자고 호소했다.

 

<선언>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자율성, 교육3주체의 교육권과 시민권, 자주적인 교사단체 설립과 활동의 자유 등의 보장과 당국의 부당한 간섭의 배제를 요구하고, 비교육적 잡무 제거와 비인간적인 강제 보충수업과 심야학습의 철폐를 주장했다. 교사들의 집단적인 선언은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의 반격은 집요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정세가 반전될 때까지 50여 명이 구속?해직되고 수십 명이 온갖 종류의 징계를 받았다.

 

6월 항쟁 직후 그동안 저임과 비인간적인 착취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의 진출이 거대한 파도를 이루며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다. 교사들도 전국에서 봉기하기 시작했다. 광주와 서울에서 각각 천 명이 넘는 교사들이 모여 교사 대토론회를 열었다. 교육민주화를 위한 실천 과제가 주제였다. 대토론회는 <교육민주화선언>에서 진일보했다.

 

교육악법 철폐, 학생자치활동 보장, 학교 평교사회 구성, 대한교련 탈퇴운동 전개, 자주적 교원단체 결성 등을 결의했다. 결의는 곧 실천으로 옮겨졌다. 9월27일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를 결성하고 그 해 말까지 15개 시·도 교협이 결성되었다. 민주노조 건설의 봇물이 터지던 당시 전교협도 노동3권의 보장을 주장하고 교사의 정치적 자유와 사회 경제적 지위 보장, 진정한 교육자치제 실현을 요구했다. 단위학교에서는 평교사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대한교련을 탈퇴하는 교사들도 줄을 이었다.

 

본격적인 대중투쟁은 사립학교에서 일어났다. 국가가 교육예산 절감 차원에서 과다 설립을 유도한 사립중고는 오랫동안 부정과 비리의 온상이었다. 권력이 비호한 사학자본의 봉건적인 가렴주구에 시달리던 교사와 학생들은 민주화의 열기가 뜨겁게 일어나던 1987년 하반기 파주여종고를 시작으로 '부패 재단 퇴진과 사학정상화, 그리고 불법 채용 기부금 반환 등'의 기치를 내걸고 투쟁에 나섰다. 작은 시냇물이 아니라 거친 홍수의 기세였다 이 때 형성된 힘은 1989년 전교조 건설의 큰 추동력으로 작용하였다.

 

1988년 교사운동은 두 갈래로 전개되었다. 하나는 전교협의 교육악법 개폐투쟁이었고 또 하나는 교과별 교사 모임의 결성이었다.

 

전교협은 4월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조성되자 오랫동안 교육을 파행으로 몰아온 주범으로 교육관계법을 지목하고 '교육악법 개폐 투쟁'에 매진하였다.

 

그 해 7월3일 4월 혁명 이후 최초의 자주적인 전국교사대회(성균관대 금잔디 광장)를 조직한 전교협은 11월20일 만 2천여 명의 교육주체가 참가한 가운데 <민주교육법 쟁취 전국교사대회>(여의도광장)를 개최하여 국회를 압박하였다. 작은 샘물들이 모여 마침내 세상을 바꿀 만한 거대한 강을 이루었다. 이 대회 이후 전교협은 한편으로 야3당 당사 농성, 서명운동, 집회, 선전 홍보 등을 전개하는 한편 교원노조 건설을 위한 논의에 박차를 가했다.

 

1989년 2월 임시국회는 6급 이하 공무원과 교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법률안을 의결하여 교사들을 고무했으나 노태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합법적인 노조 건설의 길이 막힌 것이었다. 민주적 교육관계법 개정에 혼신의 힘을 쏟아온 전교협은 이런 상황에서 '악법은 어겨서 깨뜨린다'’는 결기를 세워 1989년 2월19일 전교협 대의원대회는 만장일치로 상반기 교원노조 건설을 결의하였다. 그 기세는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요 터져버린 만석보였다.

 

정권은 교원노조의 가부에 대하여 법리를 따지지 않고 또 전가의 보도인 색깔론을 들고 나왔다. 교사들은 참교육의 깃발로 맞섰다. 중심 구호는 "아이들이 죽어간다, 교직원노조 건설하여 참교육을 실현하자!"였다. 일부 통일운동 인사의 방북으로 공안정국이 조성되어 위축되어 있던 민주화운동 진영에 전교조 건설 운동이 때 아닌 활기를 불어 넣었다.

 

5월 14일 발기인 대회가 전국에서 열리고 한편에서는 전교조를 옹위하기 위해 사상 유례가 없는 규모의 공대위가 결성되고 또 한편에서는 청와대를 지휘탑으로 하여 모든 정부기구를 동원한 탄압이 자행되기 시작했다. 5월28일 계엄을 방불케 한 봉쇄를 뚫고 결성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그 자체 거대한 하나의 전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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