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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도 성적을 비관해서 자살하는 학생들의 소식은 실려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닌 게 아니라 학교생활은 정말로 숨이 막혔다. 그저 어서 빨리 시간이 흘러 입시를 치르고 이곳을 떠나고픈 마음뿐이었다. 그때 나는 아무 생각도 없었고, 나밖에 몰랐고, 꿈도 없었고, 희망도 없었다.
그 무렵에 학교 안팎에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이 조직을 만들고 있고, 그것 때문에 몇몇 젊은 선생님들이 잘릴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분들 또한 이런저런 일을 겪으셨는지 수업시간에는 조금은 비감한 얼굴로 우리들에게 전태일과 광주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기도 했다.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아, 저런 세계가 있었구나. 전태일이라는 이름 세 글자, 젖가슴이 잘리고 대검에 찔려 죽은 광주의 이야기, 노동조합, 민주화, 참교육, 이런 단어가 처음 귀에 와 닿을 때의 느낌들, 이런 것들이 내 삶의 많은 부분을 결정했다.
극보수의 소도시, 극단의 남성주의와 극단의 속물근성이 횡행하던 곳에서 무언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마도 그때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기 시작한 것 같다.
대학 2학년 때, 사범대 학생회가 주최한 전교조 사진전을 보던 때가 생각난다. 큼직한 뿔테 안경을 쓴, 한눈에 보기에도 순하고 착해빠진 인상의 해직 교사들이 백골단들에게 사지를 비틀린 채 끌려가가는 사진, 단식장에 찾아온 제자의 손을 잡고 웃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 교문 바깥에서 교문을 부여잡고 반대편 아이들을 쓸쓸히 바라보는 선생님의 사진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던 기억이 난다. 나도 저런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이제 전교조는 스무살 성년이 되었다. 20년 이쪽저쪽이 꿈결 같다. 그 사이 많은 것이 달라졌다. 교사의 봉급이 올랐고, 교무실 분위기가 달라졌고, 수업이 바뀌었다. 많은 부분 전교조의 공로가 있다. 그러나, 전교조가 이렇게 '평범한' 조직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20년 저쪽에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요 몇년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소리였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조선일보> 따위가 하는 말은 듣기가 싫다. 저들에게조차 저런 훈수를 듣는 게 억울하다. 지난 20년간 전교조는 온힘을 다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전교조가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졌다면, 그 점에서는 모든 것이 더욱 나빠졌다는 것. 우리들 학교에는 '교실 붕괴'라는 교육적 불가능이, 입시라는 꼭지점을 향한 가없는 질주가, 천박한 중산층 의식에 물든 교사 집단의 안일과 무기력이 아로새겨져 있다는 것. 무엇보다 아이들은 여전히 죽어가고 있고, 거기에는 우리의 책임도 작지 않다는 사실 말이다.
스무살 생일상을 받아드는 마음은 비감하고 쓸쓸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며 술한잔 하고 싶은 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