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조합원을 조합비만 내는 동원 대상으로 여기지 말아야"

전교조에 바란다

교원노동조합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강연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전교조가 창립한지 벌써 20년이라고 하니 세월은 정말 유수 같나 봅니다. 학생들의 열악한 학습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교사의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이 당시 많은 교사들에게 팽배 했었습니다.
 
즉, 교육의 조건을 둘러싸고 국가나 사용자와 대등하게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자주적 대중조직이 바로 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그것이었습니다. 교사가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자주적 단결권을 가져야 국가의 잘못된 교육정책과 행정에 제동을 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권위주의 국가(정권)는 시민으로서 교원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박탈하고 있었습니다. 본질적으로 국가가 자유민주사회의 기본적인 정치적 권리를 박탈한 것은 교육을 체제유지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권위주의 정권은 교육을 국가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수단으로 삼았으며 이런 숨겨진 의도를 간파한 진보적 교사들은 이에 침묵하지 않고 올곧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영향을 받은 일반 평교사들도 부당한 지시에 대해 집단적으로 저항을 하였던 것은 바로 정의와 민주주의 구현이 교육 본연의 사명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1989년 5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결성 강행은 바로 교육을 위한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교사의 기본권을 갖겠다는 선포였습니다.

결국 법외노조인 교직원노동조합 결성은 정권으로부터 무자비한 탄압을 불러왔습니다. 천 오백여 명의 해직을 불러온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오늘날 이만큼의 민주주의를 이룩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희생을 치른지 10년이 지난 1999년에야 합법노조의 지위를 얻게 되었습니다.
 
1989년 5월 28일 건국대 학생회관 앞에서 열린 전교조 결성식 장면.


전교조가 창립한 후 20여 년동안 얻어진 성과를 열거하자면 한이 없겠지만 몇 가지만 들어봅시다. 먼저 교장임용제도 개선, 학교운영위원회 등 민주적 교육제도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지배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을 제어하면서 열린 교육의 원조인 '참교육'이라는 브랜드를 창조하였습니다.
 
또 전교조 교사는 성찰하고 대화하는 혁신적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의 전형을 보여주었고, 소모임 결성을 통한 결사체적 민주주의의 구현에 앞장섰으며, 공부하는 학습공동체를 구축하는데 매진하였습니다.
 
그리고 학생과 학부모를 교육의 주체로 대우하는 동반자 관계의 지평을 열었습니다. 오늘날 전교조 교사에게 참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가 토론과 논술의 달인들이 되었으니, 사회의 불의를 청산하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민주적 시민교육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고 봅니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천오백여 교사들의 해직 끝에 얻어진 전교조의 합법화는 오직 학생들에게 '참교육'을 하겠다는 순수한 신념과 가치의 정당화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전교조의 합법화는 학생들에게 참교육을 하는 것이 불법이 아니라 정당성을 확인한 것입니다.
 
국민 불신은 전교조 정당성의 위기

그런데 요즘 이런 숭고한 전교조의 가치가 국민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니 서글픈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전교조의 가치가 합법화는 되었지만 지금 국민으로부터 받고 있는 커다란 불신은 전교조의 정당성 위기를 보여주는 중대한 사태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교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이와 같은 위기를 넘어서려면 전교조 조합원 다수가 학생들로부터 인정을 다시 받는 방법을 찾는 길밖에 없다고 봅니다. 신뢰는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일선 학교의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교사의 교육활동 속에서 체험하는 참신성에서 찾아질 것입니다.
 
전교조가 아무리 보수언론으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우리 학교의 전교조 교사는 그렇지 않다"는 체험적 발언이 학생들로부터 저절로 샘솟도록 하는 물고를 내지 않고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이를 위해 전교조 교사는 학생 개개인을 타인과 비교될 수 없는 중요한 인격체, 즉 '놈'이 아니라 '님'으로 존중하는 아동관과 교육관을 복원해야 합니다. 비록 여리고 부족한 어린 학생들이지만 그들을 존엄한 존재로 대우하는 교육적 태도부터 가져야 합니다. 학교와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전교조 교사와의 진정한 만남과 상호작용이 활성화되면 전교조 교사의 상실된 신뢰는 회복될 것입니다.
 
학생들로부터의 신뢰와 존경은 단 한 번의 수업으로 획득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세상의 이치와 앎을 자극하는 새로운 교수기법을 개발하여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고 소통하는 대화적 모습을 보여주어야 전교조의 교육적 위상은 복원되는 것입니다. 학생의 자치활동을 지원하고 학부모를 교육의 동반자로 여기는 관계적 태도를 보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할 때 전교조에 대한 온갖 비난은 서서히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학생을 '놈'아닌 '님'으로 존중해야

이제 전교조의 새로운 탄생을 위해서는 제도적 폭력에 대항하는 정치적 능력배양과 함께 심리적 문화적 폭력에 대항하는 인문학적 교양을 더욱 함양해야 합니다. 전교조 이전의 전교협(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사협의회) 교사들은 다른 어떤 교사들보다 책을 많이 읽었기에 세상을 읽는 안목과 지혜가 도전적이고 창의적이었으며,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도 여타 교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숭고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전교협 교사들이 나누는 대화의 중심에는 항상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우뚝 존재했습니다. 전교협 교사는 기본적으로 지식과 가치를 다루는 지성인이고, 시대를 앞서가는 진보적 교사로서 그 위상이 자기매김하였기에 세상의 부조리를 밝히는 책을 항상 가까이 하였습니다. 책을 가까이 했다는 것은 자신을 항상 성찰한다는 의미이며 그 힘으로 수업하였기에 사물이나 사태에 대한 통찰력이 대단하였으며, 그랬기에 항상 그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합법화 이후 민주화에 편승하여 전교조 가입 하나로 조합원이라는 보호막아래 자신의 편함과 안락을 구가하려는 다수의 무임승차 교사는 전교조의 정당성을 갉아 먹고 있습니다. 전교조의 역사적 사명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이런 저런 이유로 가입한 의식 없는 다수의 교사 대중들로 인해 전교조의 가치와 진정성에 상처를 내고 있습니다. 국민으로부터 가장 욕을 먹는 이들은 문화적 지성인의 역할이 아니라 근무조건의 향상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경제적 노동자로서 자신을 등치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교조라는 조직은 세계의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정치적 노조, 전문적 노조, 경제적 노조의 모든 속성을 두루 갖고 있는 총체적 조직임에도 정치성과 전문성을 뺀 채 단순히 근무조건의 해결만을 위한 교사의 대중적 이익을 대변하는 노동조합으로서의 지위로 점점 경도되는 경향은 개인주의 문화와 함께 교직사회를 황폐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교원노동조합이 되게 한데는 전교조가 조합원의 교육을 철저하게 하지 않은 것도 한 원인이 됩니다. 단순히 조합비만 내거나 집회에 동원되는 수동적 역할에 머물게 한 것이 근원적으로 전교조의 쇠락을 불러온 것입니다.
 
이제 전교조는 학생과 학부모를 위한 지원사업과 교양강좌를 개발하여 국민에게 봉사하는 이타적 교원단체로 재탄생되어야 합니다. 교원연수원이라도 마련하여 수준 높은 교사로 발전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며, 이를 위한 새로운 학습과 연수 모델을 다양하게 계발하여야 합니다.
 
오늘날 교육을 상품화하는 시장만능주의의 파고가 거세진 국면에서 전교조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파고를 막아내는 문화적 방어진지를 튼튼하게 구축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모든 전교조 교사들은 배움을 위한 학습활동을 게을리하지 않고 학습연구공동체를 아래로부터 대중적으로 꾸려야 합니다.
 
전교조 교사는 지식과 가치 문제를 다루는 전문직업인으로서 학술단체나 문화단체와의 교류도 더욱 활성화해야 합니다. 전교조는 학교와 학급이 인간적이고 친인권적인 문화로 풍성하도록 지성적 교사집단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오늘날 한국교육이 당면한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교의 전체주의화의 파고가 더욱 강화되는 위태로운 국면에서 학교의 민주화 건설을 위한 실천적 노력을 시도할 때 잃어버린 민주주의를 다시 찾는 제 2의 민주주의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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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 전교조창립2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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