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사랑의 물줄기

전교조 결성 20주년 기념 수기공모 최우수 당선작

따뜻한 사랑 나눔이 각박한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든다는 것을 우리 학생들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 사랑의 선율로 아픔을 깁는 하모니카맨

작열하듯이 타는 여름 태양 아래 발악할 듯이 울던 풀벌레 소리가 일시에 멈췄다. 바람이 제법 시원하게 불어오는 노인병동 4층 로비에서 치매, 당뇨와 중풍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일제히 종성이를 주목한다.
 
종성이의 숨결이 하모니카에 닿자 기가 막힌 선율이 울려 퍼진다. '등대지기'의 애잔한 가락이 듣는 사람들 가슴을 녹일 듯했다. 허리춤을 동여매고 혼잣말을 쉴 새 없이 늘어놓는 귀순 할머니도 처음에는 종성이 앞을 왔다 갔다 하시다 마침내 하모니카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다. 반신마비로 꼼짝을 못 하시는 정례 할머니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어 종성이는 흥겨운 민요 가락을 불었다. 조용히 숨을 죽이던 할머니들이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기 시작한다. 흥겨운 가락을 불던 종성이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할머니들은 종성이 눈에 어린 물기의 의미를 모르시리라. 종성이는 2002 일본에서 열린 하모니카 아시아 대회 두 분야에서 금상과 은상을 받은 고3 학생이다. '피플 세상 속으로', '다큐 인간 세상' 등 TV프로에도 출연한 바 있었다. 종성이는 홍콩 국제 대회에서 돌아온 피로를 채 씻기도 전에 지역 연합봉사동아리 '비전'의 정기 활동을 하러 왔던 참이다.
 
종성이는 가정의 어려움이 가슴 속을 후비는 아픔이 있었으나 할머니, 할아버지께 기쁨을 드리고자 혼신의 힘으로 하모니카를 불고 있었다.
 
"종성아, 하모니카 선율로 상처 받는 사람의 아픔을 깁는 사람이 되면 어떻겠니?"
 
"네,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된다면 어디든지 찾아갈 거예요."
 
나는 교회 고등부 교사를 하면서 2002년 봉사 활동의 첫걸음을, 이 지역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분들이 요양하는 치매병원을 향하여 뗐다. 위로 공연과 병동 청소, 말벗, 산책 및 식사 보조로 시작하여 7년 간 봉사활동을 최일선에서 지도하며 진정한 봉사 정신의 의미를 학생들이 갖도록 지도했다.
 


▣ 자존감을 회복하게 하는 사랑의 묘약

나는 교직을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23년 동안 교단을 지켜왔다. 학교에서 아픔을 토해내는 학생들을 숱하게 대하며 그들을 치유하고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봉사에 관심이 갔다. 공교롭게도 해마다 힘든 반을 맡았고 학생들의 아픔에 나 또한 신열 앓듯 마음고생을 했다.
 
2002년 2학년 보통과 여학생 세 명이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워 일벌백계의 의미에서 등교정지라는 징계를 받았다.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기에 징계 처리를 사회봉사로 돌리겠다고 자청했다. 억지춘향격인 봉사 활동이라 치매 환자에게 적응 못하던 학생들이 몇 번 지나서 달라졌다. 손길이 딸려 힘겨운 간호사와 학생들을 좋아하는 할머니들을 보며 서서히 마음 문이 열린 것이다.
 
봉사를 지속적으로 하자는 어느 학생의 의견에 교내 학생 15명이 봉사동아리를 자연스럽게 만들고, 교회에서도 종성이를 포함한 17명이 동아리를 결성했다. 격주로 일요일 2시부터 4시간 동안 교회와 학교 학생들이 치매병원에서 본격적으로 봉사 활동을 했다.
 
학생들 용돈을 절약하여 모은 돈과 내 돈을 합쳐 할머니들이 좋아하시는 과일과 음료를 샀고, 오가는 차량 운행도 내가 지원하였다.
 
때로는 몸이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견딜 수 없이 피곤할 때도 있었지만 봉사 활동으로 자존감을 회복하는 학생들을 보며 피곤을 털어내곤 하였다. 활동비를 조달하기 위해 학교 축제 기간에 먹거리 장터를 열었다. 수익금 20만원과 대광교회 학생들이 크리스마스 카드를 판매한 대금 20만원을 합쳐 치매병원 어른들 60명의 목도리와 양말 등을 마련했다.
 
이듬 해 연 먹거리장터 수익금으로는 전자렌지, 60명이 사용할 영양로션과 실내화를 선물했다.
 
▣ 연합봉사동아리로 거듭남

2003년에는 진상고 봉사동아리 학생 수가 33명으로 늘고 교회의 제철고와 백운고 학생들도 적극적으로 봉사 활동을 원하자, 광양 지역 고등학생을 아우른 연합봉사동아리로 거듭나면서 '비전'이라는 이름도 갖는다.
 
학생들의 아름다운 활동이 학교에 알려지자 교감선생님, 스쿨버스 기사님, 급식실 조리사님들이 봉사동아리의 후원자가 되어 주셨다. 전일제 클럽활동을 실시하자 토요일에 봉사를 나가게 되었고 국어과 후배 선생님이 도와주었다. 스쿨버스는 학생들 이동을 도왔고 교회에서 봉고차를 지원받아 지도교사로서 한결 수월해졌다. 섬거리에 홀로 사는 독거노인을 면사무소에서 소개받아 한 달에 한 번씩 찾아 뵈었다. 오르막길에 홀로 사는 82세 김영순 할머니는 발과 갈비뼈를 다쳐서 수술하셨지만 그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하셨다. 젊은 시절 세 자녀를 잃고 말상대할 사람이 없어 많이 외로웠는데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학생들을 반가워하셨다. 방문할 때마다 쌀이나 부엌용품 등 생필품을 들고 만났다. 2003년 늦은 가을에는 전자옥매트를 선물해 따뜻한 겨울을 나도록 했고 여름이면 시원한 모시옷을 전했다.
 
▣ 베트남에서 사랑의 집 짓기 봉사 체험

머리로 깨닫는 것은 지식에 머물지만 눈으로 보는 것은 가슴으로 느껴 손발을 움직이게 한다. 2004년 1월에 '비전' 동아리 학생들 19명, 교회 전도사, 지도교사 2명을 포함한 23명이 5박 6일동안 베트남에 다녀왔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NGO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와 연계하여 '사랑의 집짓기' 봉사에 참가한 것이다. 베트남에는 나뭇가지를 엉성하게 엮어 간신히 비를 피하는 정도의 주거 환경에서 사는 극빈자들이 있다. 교회 뜻있는 분들의 후원을 받아 집을 5채 지을 돈을 마련했고 학생들은 집을 2채 직접 짓는 사랑 나누기 봉사를 했다. 우리 딸 민지도 시청 장학금 60만원으로 집을 한 채 후원했다.
 
북경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개짓을 하면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폭풍이 몰아친다.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일이 우리의 삶과 밀접하기 때문에 근시안적인 태도를 버리고 나누고 베푸는 마음을 갖도록 지도했다.
 
▣ 지역 사회에 봉사 정신이 확산됨

'비전'의 성공적인 활동이 알려져 전남자원봉사센터의 요청으로 전남 지역 블런티어 교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광양시청 자원봉사센터 지도교사로도 활동하면서 폭넓은 안목을 갖게 되었다. 더불어 여러 곳에서 봉사동아리 상황을 문의하던 터라 활동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전남교육청이 '비전'을 인정해 한국청소년동아리연맹의 시범동아리로 지정했다. 100만원의 지원금은 덤이었다. 광양시청 자원봉사센터에서도 진상고를 협력학교로 정해 300만원의 지원금을 보냈다.
 
옥경재 교감선생님은 봉사의 교육적 효과를 소중히 여겨 전교사의 협조를 거쳐 학급 단위로 한 달에 두 번, 환경보전 활동과 불우시설을 체험 일정을 만들었다.
 
봉사 활동은 전교생에게 확산되었다. 점수 따기 위주로 하다가 장애 및 불우 시설에 가서 온 정성을 기울이면서 마음이 열리는 소중한 체험을 했다.
 
2004년에는 외부 기관 지원금 400만원과 포스코에 근무하는 교회 고등부 교사, 학부형, 스쿨버스 기사, 지역 로타리 클럽 등의 정기적 지원금, 먹거리 장터 기금, 교사와 학생들의 자발적인 활동비를 포함한 700만원 정도의 경비로 봉사 계획을 세워 주 1회 활동했다.
 
CBS 순천 라디오 방송국의 초청으로 봉사활동에 대한 대담을 나누었고 무등일보를 비롯한 전남 일대의 일간지 몇 군데에 실리기도 했다.
 
2004년부터 치매병원 인근에 개원한 정신지체 및 장애인 전문병원에서도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부모 없이 할머니 아래에서 크는 어린이(영진, 수진이 형제와 병학, 명수 형제)가정과 자매 결연을 맺어 매월 학원비 10만원, 학습지 구독료를 3만원씩 지원하고 학습도우미 활동도 하여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했다. 초등학생 병학이와 명수는 학교에서도 학업우수상과 효행상을 받는 등 우리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2003년도 제 4회 전남자원봉사대회 때 비전 봉사동아리가 도전하였는데 학생들이 목포시장상을 받았고 대표 학생은 5박 6일간 일본 연수의 특전을 누리게 되었다.
 
같은 해 11월에 개최된 제 1회 광양시 봉사대축제에서 비전동아리가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70만원의 상금을 받아 고스란히 봉사 활동 자금으로 사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교육인적자원부와 문화관광부가 후원하고 푸르덴셜이 주최하는 2004년 전국자원봉사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여 20명의 학생들이 국무총리상을 받게 되었고, 200만원의 장학금도 받았다.
 
여러 가지 많은 자극으로 주변 몇몇 교사들이 봉사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갖기 시작하여 가족 단위로 할 수 있는 봉사 활동에 대해 문의하는 등 관심을 보였고 학생과에서도 2004년 간부 수련회를 여수동백원 봉사로 일정을 잡아 조력을 부탁했다.

▣ 광양실고에서의 푸른 비전

2005년 광양실고로 발령을 받았다. 학기 초부터 우리 반 학생 2명이 결석, 가출, 자잘한 폭력 사건이 잦았다. 학생들에게 자존감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환경정화 활동을 하는 푸른 환경단과 대광교회 비전 동아리 학생들, 광양실고 1학년을 중심으로 봉사동아리를 지원받았다.
 
푸른비전이라는 이름으로 2005년 치매병원과 인근 장애우들이 요양하고 있는 매화원와 순천 인애원을 방문하여 병동청소와 장애우들과 말벗, 안마 활동 등 왕성한 봉사활동을 지도하여 전국자원봉사대회에 장려상을 수상했다.
 
2006년에는 시청에서 자원봉사협력학교로 지정해 지원금 200만원으로 1, 2학년 학생 봉사동아리 학생과 봉사를 원하는 학급을 사전 지도하여 인근 매화원 위문 공연 및 병동 청소, 말벗, 식사 조력 활동을 지속적으로 했고 여름방학 때는 사랑의 집 짓기 봉사를 했고, 초가을에 입주한 사랑의 집과 결연 관계를 맺어 일주일에 한 번씩 후원물품을 사서 위로 활동을 하도록 지도했다.
 
연구부장 업무를 보면서 교생실습생 21명에게도 나눔과 베풂의 정신을 심어 주려고 매화원 봉사활동을 1회 실시하여 위로 공연과 말벗, 안마 등 활동으로 서로 감동을 주고받도록 했다.

▣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사랑의 물줄기

2008년 광양백운고로 발령, 대광교회와 백운고 학생들로 뉴- 비전 봉사동아리를 결성했다. 한 달에 두 번 광양공립요양병원(치매병원)과 보건복지부 산하 재가노인복지요양원을 방문하여 가벼운 위로공연, 병동청소, 말벗, 안마, 식사조력 등 봉사활동을 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광양 지역의 많은 학생들이 학력을 이유로 자존감이 부족하고 자아정체성을 형성하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마음 속 깊이 인격적으로 존중받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학생들의 마음 속에 선한 삶에 대한 의지가 있기에 교사가 좀 더 관심을 갖고 학생들에게 다가간다면, 학생들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을 것이다. 학생들은 공동체에 정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다.
 
한 줄기 물이 메마른 대지를 적시듯 이웃을 향한 따뜻한 사랑 나눔이 각박한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든다는 것을 우리 학생들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이 돕는 행위는 미약하지만 여러 사람의 힘이 보태졌을 우리 사회를 살 만한 세상으로 바꾸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 믿고 열약한 현실에도 봉사활동 지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당선소감>
"교사의 손에는 정과 끌이 들려져 있습니다"
 
교사는 거대한 돌덩이를 눈앞에 둔 조각가라고 어떤 이는 말했습니다. 그 돌덩이 속에는 장차 세상을 향해 포효하며 뛰쳐 나갈 사자도 갇혀 있고 푸른 창공을 날갯질하며 날아갈 독수리도 갇혀 있다고 했습니다. 교사의 손에는 정과 끌이 들려 있습니다. 이 정과 끌로 조심히 돌덩이를 다듬어 가는 일이 교사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인내와 사랑이 없으면 이 돌덩이 다듬는 일 쉽지가 않습니다. 쉽게 포기해 버리고 마구 돌덩이를 휘두르다 보면 사자의 앞발이 상하기도 하고 독수리의 날개가 다치기도 합니다.
 
교사의 길은, 세상 그 어떤 일보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오르막길입니다. 대중 문화의 유혹 속에 학생들은 교사의 지도 영역 저 너머로 달음질쳐 달아나고 있습니다. 인격을 가르친다는 것, 때로는 어림없게 느껴져 교사는 무너지기도 합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인성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은 나눔과 베풂의 삶을 배우지 못하고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학생들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삶이 무너지면서 파편화되어 가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학생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나눔과 베풂의 삶을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봉사활동을 통해서 우리 학생들이 나밖에 모르는 이기성을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손길 건넬 때 그 따뜻한 손길로 먼저 우리 학생들 내면 상처가 치유되고 자존감이 회복된다는 것을 알게도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학생들의 사랑의 손길이 머무는 곳에 병동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이웃들이 환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 학생들은 알게 되었습니다. 교사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손에 들린 정과 끌을 가지고 돌덩이를 다듬어 가다 보면 조금씩 독수리의, 사자의 형태가 드러나게 되어 보람과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게 되어 감사가 내면에서 물결칩니다. 봉사활동을 지도하면서 힘든 일은 많았어도 그 길을 걷게 된 것 정말 감사합니다. 내게 다가온 많은 학생들의 삶 속에 작은 느낌표를 안겨주며 희망의 증거자로 교단을 지키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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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 전교조결성기념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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