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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막내를 살펴줘야 할 것 같아서 지회 활동에 결합하는 것은 포기했어요." 만남을 위해 찾아간 홍순희 교사(홍)는 전학생 자료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칠판 옆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가방을 바라보는 기자에게 가방 주인은 이 학교 3학년에 다니는 자신의 막내 아이고, 무던하게 학교 생활하는 첫째와 제 할 일 꼼꼼하게 해내는 둘째 아이와는 달리 보살핌이 필요한 녀석이라 엄마가 데리고 있으려고 전학시켰다는 이야기를 술술 풀어놨다.
은정주 교사(은)는 올해 지회장을 맡으면서 담임에서 빠졌다. 충실히 지회장 역할을 하면서 담임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아직은 엄마 손이 필요한 중학생 둘째까지 챙기는 것은 어렵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은 교사는 "월요일 지회 집행부 회의, 화요일 지회 주관 연수, 수·목요일 지구 모임에 토요일 교육주체결의대회까지 이번 주는 좀 바쁘다"면서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아이 밥을 챙겨주고 다시 지회로 뛰어가는 일도 간혹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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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정주 교사 |
'1박 2일'은 부담스러워
교사들은 모두 분회나 지회 단위에서는 조직 활동이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지만 지부 집행부, 선출 대의원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고 입을 모았다. 자정을 넘어서까지 계속되는 회의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것. 간결한 회의 문화 정착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은) 지부집행위나 대의원대회에 가면 조직 사안이 많다보니 회의가 길어지죠. 밤이 깊어지면 그때부터는 애들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은 이미 집에 가있어요."
"(염) 1박 2일이 되면 부담스러워지는 거죠. 애들이 엄마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조직은 여성할당제 등 여성을 배려한 제도 마련에는 앞장서 왔지만 아직은 친여성적 문화까지 뒷받침 되지는 못한 것 같아요."
"(홍) 저도 대의원하면서 회의가 밤늦도록 이어지니까 너무 졸리더라고요. 중요한 조직사업 결정하는데 이렇게 흐릿한 정신으로 해도 되나 싶어서 아예 시간을 길게 잡고 쉬면서 토론에 집중할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럼 회의는 더 길어지겠죠?"
미안한데 아닌 척 한 적 있었다
"집에서는 애 키우고 살림하고, 학교에 오면 아이들 가르치고 쌓인 잡무 처리하느라 정신없다. 여기에 전교조 하느라 또 한 번 용쓰면 바로 넉다운 된다."는 염경미 교사(염)는 여성 조합원의 고충을 '삼중고'라는 한 마디로 정리했다. 출산과 동시에 '어머니'라는 이름을 얻고 삶의 반경이 '아이'로 좁혀지면서도 이들은 여전히 '전교조'에 곁을 내주고 있었다.
"(은) 아이를 아빠한테 맡기고 늦게 들어갈 땐 너무 미안하고, 아이 생각이 떠나질 않는데 막상 집에 가면 아닌 척 하는 거예요."
'미안하다'는 말이 '잘못했다'로 들릴까봐 두려운 맘. 두 교사는 "(염·홍)어떤 마음인지 알겠어, 알겠어."라며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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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경미 교사 |
니들이 전교조 엄마를 알아?
양육이 여성의 고유한 의무와 책임이 되는 사회에서 남들이 말하는 '성공한 아이'로 키우기 위한 극성 엄마가 될 것인지 전교조 활동가답게 아이를 키워야하는지에 대한 여교사의 고민은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홍) MB 정권 들어서고 1년을 보내면서 생각이 싹 정리됐어요. 극성 엄마는 제 마인드(교육철학)가 용납하지도 않을뿐더러 체력적·경제적으로도 불가능한 일 같더라구요. 게다가 멀쩡한 아이가 자살을 선택하는 것을 보면서 그저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정신이 건강한 아이로 자라주기만을 바랄 뿐이죠."
"(은) 우리반 아이들에게는 경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라고 해놓고 내 자식은 학원으로 돌리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에 큰 아이는 사교육도 시키지 않았어요. 헌데 '엄마가 옆에서 돌봐주고 사교육도 시켰다면 이 아이가 다른 꿈을 꾸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최근 들었어요. 그래서 중학생인 둘째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는 여전히 고민중이구요."
"(염·은) 그래도 아이들이 전교조 활동 열심히 하는 엄마를 보며 '멋지다', '엄마 같은 교사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해주면 힘이 나요."
전교조, 즐겁게는 안 되겠니?
"(염) 햇빛 작렬하는 야외,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구호를 외치는 투쟁은 여교사의 집회 참여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집회 프로그램에 마당놀이, 연극, 무용 등의 문화마당을 더 많이 포함시켜 집회를 한바탕 축제로 만들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지요. 지회 연수를 기획할 때도 아이와 함께 혹은 가족과 함께하는 내용으로 준비하면 여교사들의 참여율이 더 높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고."
"(홍) 헌데 아이와 함께하는 체험활동을 준비해도 여교사들이 잘 안 올 때가 있어요. 친분 있는 동료 교사 없이 나 혼자 달랑 애 데리고 가는 게 민망하잖아요."
"(염) 그러게 분회장이 끊임없이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맛을 보여줘야 한다니까요. 조합원들이 혼자 나서지도 못하는데다가 활동을 안 해봤으니 그게(연수나 지회 활동 참가 등) 얼마나 재밌는 일인지를 몰라서 못 가요."
전교조가 준비하는 모든 사업에 여성 조합원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서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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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희 교사 |
서로를 격려하는 전교조였으면
교사들은 전교조가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실천 활동과 열정'을 당연시 하는 문화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합원을 독려하고 실천의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에 대한 기대감도 숨기지 않았다.
"(염) 여성 조합원들이 육아로 인해 조직 활동에서 멀어질 때 전교조가 기다릴테니 아이 잘 키우고 오라고 격려해줬으면 좋겠어요.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여교사들도 자기만의 활동영역을 고민하게 되잖아요. 그때가 되면 다시 돌아오라고 강하게 끌어주고. 이처럼 연륜이 쌓인 여교사의 열정을 후배 교사와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조직이 자리를 만들어주고 끌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은) 조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해봤지만 조직이 나를 배려하고 끌어줘야 한다는 생각은 사실 못해봤어요."
"(홍) 전교조는 사람이 그리운 조직이잖아요. 활동을 잠시 접었다가 다시 시작해도 처음의 서먹함만 극복한다면 언제든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도 간간히 힘들어 잠시 쉬었다 조직에 결합 할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마다 선배, 후배가 따뜻하게 맞아 주었어요."
조합원도 좀 더 적극적이 되길
이들은 여교사가 전교조의 미래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를 격려하는 조직 문화와 세심한 배려가 여교사의 적극적 자세와 어우러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홍) 조합에서 따낸 권리들을 누리는 것에도 교사들은 상당히 소극적이에요. 관리자 앞에서 당당히 주장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고."
"(염) 전교조 연수 참석하는 것 어려운 일 아니거든요. 내용도 참 좋고 시간을 많이 뺏는 것도 아니고. 헌데 전교조에 가입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가입은 하는데 아무것도 못해요'란 말이에요. 전교조 활동에 겁을 먹고 지레 발을 빼죠. 조합비 냈으니 그만큼 가져가는 것도 있어야 할 것 아니겠어요? 전교조는 여타 다른 노조보다 여성이, 엄마가 마음만 먹으면 참여할 수 있는 조건들을 참 많이 만들어놨는데 아쉬워요."
사진 유영민 기자 minfoto@paran.com




은정주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