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전교조 20년 중 더 특별했던 순간은 없었습니다"

그때 그 사진 속 <인제고 분회>를 찾아서

1999년 당시 분회 결성모습.


"인천에서(오신 선생님이) 왜 강원 지역 분회창립 사진을 사세요?"

 

지난 달 23일 교육주체 결의대회가 열린 여의도 문화마당 한쪽에서는 '사진으로 보는 전교조 20년'이라는 주제로 사진전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전시한 사진을 팔기도 했는데 '99년 인제고 분회 창립'사진을 사겠다고 나선 이가 인천지부 소속 황보근석 교사였다.

 

'인제고는 강원도 인제가 아닌 인천에 있는 학교'라는 그의 말에 머쓱해진 기자에게 황보 교사는 "제가 분회장인데 이건 분회에도 없는 사진"이라며 흔쾌히 사진 값 3만5000원을 내밀었다.

 

그리고 한참 뒤 "이 사진 팔렸습니까?"라며 누군가 물어왔다. "여기 꽃다발 들고 서 있는 사람이 접니다. 똑같지요?"라며 웃던 민병운 교사는 자신이 당시 분회장이라고 소개했다.

 

분회 창립 10년. 여전히 교사대회로 달려올 준비가 된 그들을 보며 <교육희망>은 인제고 분회가 궁금해졌다. 사진을 가져가며 손전화 번호를 남긴 황보근석 교사에게 '분회 취재를 가고 싶다'며 전화를 걸었다.

 

'분회 창립일에 맞춰 조촐한 기념식을 했기 때문에 신문 마감엘에 맞춰 또 모이기 힘들다'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현재 분회장인 황보근석 교사와 분회창립 당시 분회장이었던 민병운 교사를 함께 만났다.

 

"결국 판매하려고 안 주신 겁니까?"

 

지난 27일 고 노무현 대통령 시민추모제가 열리기로 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만난 민병운 교사는 '왜 분회 창립 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웃으며 되물었다. 지금까지 전교조가 진행한 몇 번의 사진전에 이 사진이 단골로 등장했는데 그때마다 '달라'고 했으나 감감무소식이었단다.

 

사진 속에는 없는 황보근석 교사에게 '합법화 이후 조합에 가입해서 없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카메라 앵글 밖에 있었다"고 답했다. 사진 속 인물 6명 가운데 4명은 학교를 그만두거나 다른 학교로 이동했다고 했다.

 

1999년 5월 14일. 이미 분회 창립을 예고했지만 학교 측에서는 끊임없이 만류했다. 당시 <전교조 신문> 보도에 따르면 '인제고는 지역 사립법인협의회 회장이 이사장이어서 전교조 활동에 많은 제한을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분회 창립까지 이르렀다.…(중략)… 원래 예정지였던 학교 강당 문을 잠궈 운동장에서 행사를 진행했다'고 전하고 있다. 교내 분회 창립식을 끝까지 반대하던 학교 측은 교문 앞에 철책을 치고 분회 창립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인천지부 조합원들을 막았다. 창립식은 분회장이 분회창립선언문을 읽는 것으로 간단히 끝났다. 카메라 앵글 밖(사진 밖)의 조합원들은 학교 측에 항의하며 이 같은 과정을 지켜냈다.

 

인천 지역 사립학교로는 두 번째 창립식이었다. 인근 교회에서 창립식을 했던 첫 사립분회와는 달리 교내 분회 창립을 이뤄냈다. 당시 분회창립선언문을 썼다는 황보 교사에게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냐고 묻자 "사소한 것들은 떠오르지 않을 만큼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분회창립선언문은 지부에서 제공한 내용을 바탕으로 문구를 다듬는 수준으로 작성했어도 작업하는 내내 치열했던 기억만 있다고도 했다.

 

"창립식 이후에 긴장이 확 풀려서 그런지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며 미안해하던 그에게 쥐어짜듯 "뒤풀이 자리에 같이 간 사람이 40~50명쯤 됐다"는 대답까지 듣고는 질문을 민병운 교사에게 돌렸다.

 

하지만 그 역시 "기억이 별로 안난다"는 실망스런 답을 줬다. 기자의 불만을 눈치 챘는지 민 교사는 "분회 창립이 기억 속 커다란 사건의 한 장면이었으면 기억이 날 텐데 그게 아니거든요. 89년부터 20년 동안 전교조를 해오면서 더 특별했던 날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는 말을 덧붙였다.

 

전교조의 전신인 전국교사협의회 시절 24명이었던 회원은 전교조가 출범한 89년에는 26명으로 늘어났다. 전체 교사 37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숫자였다. 7시 출근에 7시반 퇴근.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았던 비민주적 학교 운영에 대한 불만이 이들을 모이게 했다.

 

이 가운데 8명이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해직됐다. 자신을 '해직 1순위 교사였다'고 회고한 민병운 교사는 "학교가 당초 활동가 8명을 해직시키겠다는 방침을 바꿔 활동가 6명과 전교조에 가입한 젊은 교사 2명을 해직자 명단에 올렸다"고 전했다. 젊은 교사들에게는 괘씸죄를 적용한 것.



지난 1999년 5월 역사적인 분회 결성의 기쁨을 맛보았던 인제고등학교 조합원들이 당시를 회상하며 교문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유영민 minfoto@paran.com


그는 20년을 한결 같이 전교조 조합원으로 살았다. 해직된 이들과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남아있던 조합원들은 3년간 독서 모임을 계속했다. 해직 교사들은 공립특채 형식으로 교단에 다시 섰고, 학교를 그만 둔 이들도 있지만 당시 함께 근무했던 교사 17명은 여전히 친목 모임을 갖는다.

 

어떤 활동을 했는지 묻자 "해직된 선생님의 복직을 요구하며 교문 앞에서 전경들과 싸우던 아이들은 민주적 학생회 운영을 요구하며 교무실 농성도 마다하지 않는 열정적인 학생으로 변했어요. 아이들을 변화 시킨 건 우리가 아니었을까요?"민 교사가 되물었다.

 

황보 교사는 96년 4월 임용이 확정되면서 전교조에 가입했다. "교사가 되면 당연히 전교조 선생님이 될 것"이라고 마음먹었던 그는 인천지부 행사장을 직접 찾아 조합 가입 의사를 밝혔다.

 

"조합원 수의 변동은 계속 있어왔지만 학교를 그만두거나 공립으로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조합원이었다가 비조합원이 된 선생님은 한 명도 없다"면서 분회 자랑을 시작한 그는 조합원 결속의 비결을 "분회의 모든 일을 분회원들의 토론을 통해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분회가 민주적 학교 운영을 요구하며 일주일간 교내 농성을 진행했던 2001년에도 싸움 방식에 대한 이견이 있었지만 논의를 통해 수위를 조절했다.

 

황보 교사는 "아픔을 슬기롭게 극복했기 때문"이라면서도 "40대인 자신이 분회의 막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숙제로 남는다"고 덧붙였다.

 

"잘 나가는 분회가 하는 건 다 하고 있다"는 이들은 조합비 외 월 1만5000원의 분회비를 걷어 매년 여름엔 친목모임, 겨울은 1박2일 분회총회 형태의 모임을 계속하고 있다. 매년 분회창립기념식도 열었고, 전 조합원이 성과금에서 사회적 기금 10만원을 떼서 인천지부 통장에 입금했다.

 

전교조 창립 10년 뒤에는 분회를 창립했고, 이제 분회 창립 10년이 지났는데 어떤 각오를 하게 되는지를 물었다.

 

민용운 교사는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며 슬그머니 후배에게 기회를 넘겼다. 잠시 고민하던 황보근석 교사는 "우리 모두가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워 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더 이상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비판의 말들에 상처입지 말고 당당하게 나섰으면 한다"고 했다. "전교조가 참교육의 큰 그림을 그려 조합원을 이끌었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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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 인제고 , 분회창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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