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희망칼럼]내가 울적했던 것은

어느 작가는 "한 시대가 갔다"고 했고, 어느 칼럼니스트는 '무사(武士)의 죽음'이라 썼다. 어느 시인은 '순교'라 했고, 또 어떤 네티즌들은 "다음 세상에서 당신이 대통령이라면, 기쁘게 그 나라의 백성이 되겠다"고 했다. 이 '말들의 성찬'끝자락에 달라붙을 공허함을 다들 어떻게 견딜지 걱정이다.

 

'퇴임한 지 1년 3개월 된 전직 대통령의 자결'이 이 사건의 요체다. 공권력은 얼마 전까지 자신의 총수였던 이를 물어뜯었고, 욕보였고, 끝내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 사건은 이를테면 어제까지 호프집을 하고 한정식집을 하던 평범한 중년들이 졸지에 '도심 테러리스트'가 되고, 공권력에 의해 불에 타 죽고, 그러고도 사과 한 마디를 받아 내지 못해 150일째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국가권력의 사악함, 집요함, 그리고 권력을 가진 자가 갖지 못한 이들을 대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나는 그가 자연의 수명을 다하면서 열정적인 인권변호사의 삶과, 실패한 대통령의 행적과 퇴임 후의 사회 활동까지 온전하게 평가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기회를 빼앗기고 말았다. 이 사건은 지난 시절 권력자들이 정적을 제거하는 방식과 닮았다. 저들은 자신의 반대편에 선 이들, 자신들의 도덕적 열등감을 자극하되 물리적인 힘은 갖추지 못한 이를 갈가리 물어뜯고 끝내 죽여버리는 역사를 이어왔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는 권력의 반대편에 잠시 서는 것도, 하다못해 주류에서 잠시라도 이탈하는 것조차 존재를 걸어야 하는 모험이 되었다.

 

그 속에서 민주정부 10년이 지나갔다. 이 시기를 사람들은 민주화라 불렀고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저들은 지난 10년을 훌쩍 뛰어넘어 그 앞자리 시간대에 현재를 이어 붙여 버렸다. 돌이켜 보면 지난 10년의 변화조차도 참으로 가녀린 것이었다. 아이들을 보아도 이 사회 어디를 보아도, '나 아니면 적'이라는 단세포의 생존 논리는 지난 10년 동안에도 기승을 부렸고, 폭력과 야만의 지배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요컨대, 지난 시절 우리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야만의 이빨은 전직 대통령이라고 피해가지 않았다.

 

지난 보름여동안 나는 울적했는데, 바로 그 추모 열기 때문이었다. '과공비례'(過恭非禮)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그를 추모하는 이들이 쏟아내는 가파른 말들을 신뢰할 수 없었다. 그의 과오를 적시하는 정직하고 기품 있는 글들에 덧붙는 섬뜩하고 날선 공격들에 화가 났다. 그들은 극심한 난독증을 보였고, 이 땅의 민주주의는 자신들이 지켜온 것인 양 허장성세를 떨었고, 또 모든 게 조·중·동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은 역사적 교훈으로부터 배울 의사도,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이 거대한 폭력과 야만의 구도 속에서 바라 볼 역량도, 이 땅에서 어떻게 무사히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냉정한 계산도, 본질적으로 유사한 슬픔 속에 놓여 있을 용산의 유가족들과 연대할 의사도 없어보였다. 그들은 다만 '바보 대통령 노무현'에게 투사된 제 서푼짜리 정의감을 사랑할 따름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울적했던 것은 이런 일을 겪고도 사회가 별로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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