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군부독재 시절에도 징계권 남용 판결 났다"

<인터뷰> '1991년 시국선언 해임 무효' 판결 받은 서수녀 교사

"시국선언 대열에 동참하는 것은 당시에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교과부가 교사 시국선언에 참여한 1만7000여명 교사에 대한 징계 방침을 밝혀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군사 독재 시절 교사 시국선언에 이름 석 자를 올렸다는 이유로 해임됐으나 대법원에서 해임 무효 판결을 받아 복직한 서수녀 대구 성산중 교사(민주노총 대구본부 수석부본부장)를 전화 인터뷰했다.

 

교사들의 첫 시국선언은 1991년 고 강경대 열사 사건에서 시작됐다. 당시 서명에 참여한 교사 5726명은 △내각 총사퇴, 책임자 처벌과 대통령 사과 △악법 철폐, 민주교육법 제정 △획기적 민주개혁 단행 △해직교사 복직, 학교자치 보장을 촉구했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서명 교사 징계 방침을 밝혔고 서울, 대구, 충남, 경기 교육청이 교사 20명의 징계를 결정했다. 그 가운데 7명은 해임 통보를 받았고 여기에 서수녀 교사(당시 대구북중 근무)도 포함됐다.

 

“강경대 열사의 죽음에 모든 이들이 분노했습니다. 게다가 우리 제자들이 군부 독재에 항거하며 죽어나가고 있을 때였어요. 선언은 더 이상 아이들을 죽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 정권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시국선언이 계속되는 것과 다르지 않았어요."

 

학교 관리자가 서명 철회를 촉구하며 계속 회유했지만 그는 끝까지 응하지 않았다.

 

당시 시국선언에 더해진 서 교사의 징계 사유는 학습지도안 제출 거부, 애국조회 불참, 학생 소란 방치로 옆 교실 수업 지장 초래, 체력장 검사에서 양산 착용 등이었다.

 

"징계 사유란 게 누가 봐도 황당하잖아요. 징계위가 열리면서 동료 교사들이 모두 들고 일어났어요. 교장실 앞 피켓 시위도 하고, 지부에서 항의 방문도 하고, 언론에 공개되면서 파장이 커져 해임 통보를 받은 것 같아요."

 

하지만 2년 뒤인 1994년 2월 대법원은 "교사가 시국선언에 참여 서명하였다고 하더라도 시대 상황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해 민주사회를 건설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교사로서 신분을 박탈하는 내용의 이 사건 처분은 원고들의 비위 정도에 비해 지나치게 무거운 것으로서 징계권을 남용하였다 할 것이다"는 요지의 해임 처분 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함께 해직됐던 임성무 교사와 서수녀 교사는 약 2년 4개월 만에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군부 독재 시절의 사법부조차 우리의 선언은 정당하다고, 징계 양형이 과하다는 판결을 내놨다. 지난 해에도 광우병 관련 학교 대표자 선언이 있었고, 지난 정권에는 더 많은 내용의 시국선언이 있었다. 민주화 시대에 민중들이 할 수 있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국선언을 불편하게 여기는 이 정권이 또 다시 초법적 중징계 엄포를 놓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서 교사는 차라리 담담했다. "활동가들은 이런 시국에 징계 대상자가 아닌 것이 되려 창피하다는 우스개를 하지만 대다수의 교사들은 교과부의 징계 위협에 위축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퇴보를 염려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해야 아이들 앞에 떳떳한 교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1500명이 넘는 교사가 전교조라는 이유만으로 교단에서 쫓겨나던 1989년에도,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었던 암흑 같던 그 시절에도 옳은 일이었기에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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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선언 , 해임 , 강경대 , 서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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