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3>두꺼비

수업이 없는 빈 시간, 창문을 열고 운동장을 내다본다. 쉬는 시간 그렇게 시끄럽던 학교가 수업이 시작되니 고요 속에 가라앉은 성채 같다.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교사들의 목소리, 와그르 터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어느 먼 음역에서 울려오는 아련한 향수 같다.

 

그때 문득 "맹-, 맹-"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나는 곳을 돌아본다. 운동장 가 돌로 쌓은 축대에서 나는 소리이다. '맹꽁이인가? 두꺼비인가?' 그러다 맹꽁이일 거라고 혼자 속으로 생각한다. 소리는 단순하지만 갈라지지 않은 통음으로 내지르는 소리가 장쾌하기까지 하다.

 

어릴 적 장마 철 비가 오다 꺼끔해지면 그동안 집에 있느라 좀이 쑤신 악동들이 뛰어나와 물장난에 정신이 없었다. 고샅을 쏘다니며 일부러 흙탕물을 튕겨 옷을 다 버렸고, 냇가를 텀벙대고 다니다 신발을 물에 떠내려 보내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흙담 밑을 버르적거리며 기어가는 게 있었다. 두꺼비였다. 짙은 갈색 등에 오돌도돌한 돌기가 있고 몸통이 굵었다. 겉보기에 흉측했지만 그러나 이내 우리들의 놀잇감이 되었다. 악동들에게 에워싸인 두꺼비는 가던 길을 멈추고 죽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우린 두꺼비를 들어올려 나무 막대로 배를 간질키며 킬킬거렸고, 똥구멍에 보리 짚대를 꽂아 바람을 불어넣기도 하였다. 그러면 두꺼비는 괴로운지 버둥거리기만 할 뿐 배는 불러오지 않았다.

 

동네 어른들은 그런 우리에게 두꺼비 갖고 장난치지 말라고 했다. 두꺼비가 집에 복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그분들을 통해 '복두꺼비니' '떡두꺼비' 같은 말을 들은 것도 그 무렵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나중에 보니 우리나라 전래 동화나 설화에서 두꺼비는 용맹함과 의리를 나타내고 있었다. 어려서 모래밭에서 놀며 불렀던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하는 동요도 그렇고, 잘 알려진 '지네와 두꺼비'의 이야기도 그러했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우린 두꺼비를 죽인 기억이 없다. 허리를 끊어 튀겨먹고 볶아먹고 그것도 모자라 능지처참하여 닭에게 던져준 개구리에 비해 두꺼비는 그래도 선의로 대했던 것 같다.

 

낭설이지만 두꺼비는 능사(능구렁이)와 마주쳤을 때 자기를 잡아먹으라고 능사를 잔뜩 약 올린다고 한다. 머리를 바닥에 낮추고 까닥거리며 약을 올리면 참지 못한 능사가 두꺼비를 덥석 잡아 삼키는데, 그렇게 뱃속에 들어간 두꺼비는 뱀의 뱃속에 새끼를 낳고 죽어가며 독을 내뿜는다고 한다. 결국 능사는 죽고 새끼들은 구렁이를 파먹으며 자라나 밖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이 같은 설은 실제로 두꺼비는 알을 낳아 올챙이가 되고 올챙이가 자라 두꺼비가 된다는 사실에서, 그리고 또 두꺼비가 위험에 처하면 부포톡신이라는 독을 몸에 퍼뜨려 포식자의 구강이나 점막에 염증을 일으키고, 신경 중추를 마비시킨다는 과학적 사실에 의해 낭설로 밝혀졌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바로 그 낭설이 갖는 힘이다. 두꺼비와 능사의 대결에서 최후의 승자는 결국 두꺼비라는 이 '설'은 과학적 사실과는 아무 연관이 없다. 그런데 이 '설'이 그야말로 낭설에 그치지 않고 많은 이에게 하나의 신념으로, 신화로, 당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집단적 정서로 자리한 적이 있다. 엄혹했던 80년 대 민주화 투쟁에서 탄압받는 민중들이 가슴에 품었던 낙관주의의 요체가 바로 이 두꺼비 신화였던 것이다. 끝내 싸워 이기는 승자는 너희가 아니라 우리라는 것! 그리하여 능구렁이에 잡아먹히는 두꺼비. 구렁이의 뱃속으로 자진해서 기어들어간 두꺼비. 그렇게 긴 세월을 참으로 숱한 희생 속에 싸우며, 먹히며, 그러다 끝내 이겼는데….

 

그런데 다시, 능사와의 싸움이 시작되고 있다. 똬리를 틀고 혓바닥을 낼름거리는 능구렁이 앞에 아우성에 거품을 문 두꺼비들이 머리를 까닥거리고 있다. 능사는 두꺼비를 집어삼킬 것이고, 두꺼비는 능사의 뱃속에 독을 뿜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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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도 , 두꺼비 , 가리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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