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희망칼럼]알 수 없어요

지난 일요일, 장항선 홍성역 대합실에서 플랫폼으로 올라가는 통로에서 저 시를 보았다. 한글 예서체로 반듯하게 씌여진 액자 속 만해 한용운의 시, 고등학생 시절 일기장에 꼭꼭 눌러적었던 저 시를 나는 뜻밖의 장소에서 만났고, 오랫동안 서서 되뇌었다.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때로는 시 한편을 읽는 짧은 시간에 영혼이 구원을 얻기도 한다. 볼 수는 있지만 만질 수 없고, 느낄 수는 있으되 표현할 수 없는 세계. 마음 속 염주알을 굴리듯, 나는 저 시를 되뇌었다. 지난 한달 보름 남짓, 알 수 없는 피로와 신경증으로 날카로운 심사가 되어 히스테리를 부리던 한끝이었다. 그랬을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견딜 수 없이 추하다는 생각, 말도 안 되는 일들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벌어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 날마다 부서지고 유린당하는 것들의 목록은 나열하기도 숨이 찬데, 위선과 기만의 협잡꾼들이 반성 없이 질주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한없는 무력감. 형상의 세계는 이토록 아름다운 것일진대, 삶은 왜 이토록 비루한 것일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을 나도 보았다. 1년 전, 6월10일 어쩌면 한국전쟁 이후 처음이었을지도 모를, 몇백명의 인파가 한데 모여 촛불을 들었던 밀양 영남루 앞 계단에서, 1년 전 6월 29일 새벽 서울 광화문 네거리,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함께 춤추며 놀던 어느 순간에 나도 그 하늘을 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숨이 막힐 것 같던 저 완강한 무쇠항아리에 균열이 잡힐 때, 저 악한들이 두려워 쪼그라드는 것을 느낄 때, 평범한 이웃들의 소박한 정의가 나래를 펼 때, 이제 뭔가가 제자리를 향해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는 연약한 깨달음이 일 때, 나는 그것이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보다 더 달콤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1년 뒤 우리는 이렇게 있다. 나는 2주 전에 서울에 다녀왔다. 4대강 사업 반대 집회가 있던 서울광장에 앉아 있다가 용산 참사 현장에서 몇 시간동안 어슬렁거리다 돌아왔다. 이제 저 어마어마한 강들의 바닥을 파헤치겠다고 한다. 포클레인의 삽날에 비명처럼 스러질 억조창생의 아픔이 이 깊은 좌절에 뒤척이는 우리에게 얼마나 육박해 올 것인가. 34도 염천의 날씨 속에서, 천명도 안 되는 인파가 서울광장을 꼭꼭 에워싼 경찰의 비아냥과 협박 속에서 집회를 치렀다. 열명이 넘는 국회의원이 있었는데 방송 차량이 들어오지 못해 책가방만한 앰프 한 개로 집회를 치렀다. 자결한 전직 대통령의 영결식 때, 어버이를 잃은 듯 서럽게 울부짖던 그 많은 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되는" 신앙의 신비를 나는 모른다. 다만, 강의 운명 앞에서, 그리고 용산 참사의 넋들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생각, 그리고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생각. 끝까지 싸워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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