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전교조 합법화 동반자 DJ를 보내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귀식·지도자문위원, 7대 위원장
'성직자인 교사가 어떻게 노동자냐'라는 논리가 일반국민들에겐 쉽게 먹혀 들어갔던 그 시절, 전교조 교사는 불량 교사로 매도하기에 어렵지 않았다.
 
전교조 출범 이후 보수 세력들은 바로 이 점을 이용하여 집요하게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전교조 교사는 의식화 교사 곧 빨갱이로 상징 조작 매도하며 탄압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하나의 이변이었다. 가뭄에 단비가 내린 셈이다. 모두 감격했다. 전교조 역시 합법화의 다시없는 기회가 왔다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국민의정부 김대중 정권은 너무나 허약했다. 그것은 선거 과정에서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 손을 잡은 것이 문제였다. 전교조 합법화가 국회에서 논의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자민련도 "전교조 합법화 절대 반대"의 당론이었다. 새천년민주당이 똘똘 뭉쳐도 한나라당+자민련의 구도를 깰 수는 없었다.
 
참으로 암담했다. 자민련을 우리 편으로 만들고, 그리고 한나라당에서 전교조에 우호적인 의원 한두 사람만 끌어오면 환경 노동위를 통과하고 본회의에 올라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조직의 역량을 총동원했다. 그러나 자민련을 한 달 동안 설득했으나 그 대답은 실망뿐이었다.
 
전교조의 목표는 오로지 "합법화" 그것뿐이었기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심정에서 요청한 것이 주효했다.
 
정치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것을 체험한 셈이다. 그 다음날 국회에 갔더니 역시 분위기는 상당히 호전되어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과제는 한나라당 의원 한두 사람을 어떻게 끌어 오느냐의 문제였다. 피눈물 나는 대국회 활동을 통해 환노위를 통과한 과정에서 한나라당의 강력한 만류와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고 이수인 의원이 전교조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본회의만 통과하면 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은 본회의를 무산시키려 온갖 방해를 놓았으나 99년 1월 6일, 드디어 전교조 합법화를 알리는 의사봉 소리에 우리는 모두 감격했다.
 
전교조 합법화는 김대중 대통령, 민주당 그리고 전교조 동지들의 간절한 열망으로 합법화시대를 열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이명박 정부가 전교조 말살의 칼날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김대중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우리의 심정은 참으로 착잡하기만 하다. 이제 그분은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이명박 정부의 탄압을 뚫고 이 땅에 참교육 실현을 위한 우리의 투쟁은 더욱 불타오를 것이다.

전교조 합법화를 요구하는 교사들 사이를 걸어가는 김대중 전 대통령(사진은 1997년 2월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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