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빨래'는 삶의 희망을 확인하는 행위

<연극평> 몽골 청년 솔롱고와 강원도 처녀 나영의 사랑

"빨래요?" 동파 방지용 스티로폼을 덧대어 고무줄로 칭칭 동여맨 수도꼭지, 빨간 고무 함지, 불편한 자세로 쭈그려 앉은 아낙에서 '새물내'라는 타이틀로 발행됐던 조잡한 편집의 대학시절 학과 소식지까지. 기능별 세탁은 물론 건조까지 버튼 하나로 해결되는 세탁기가 일상화된 요즘 '빨래'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낡고 비루한 것이었다.

 





하숙 구함, 이삿짐센터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골목길에 위치한 다세대 주택에서 뮤지컬 '빨래'는 시작한다.

 

고향 강원도를 떠나 서울의 한 서점에서 근무하는 나영, 5년째 서울의 공장을 전전하지만 번 돈 보다 떼인 돈이 더 많은 몽골 청년 솔롱고. 이야기의 주축은 서울의 가장 높은 동네에서 만난 두 사람의 사랑이지만 극이 끝날 때쯤엔 40년째 딸의 기저귀를 빨며 사는 주인 할머니, 돈 많이 벌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10만원인 '번듯한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이 꿈인 희정 엄마 등 달동네 소외 계층의 고단한 삶의 무게가 남는다. 이들에게 빨래는 저마다의 희망을 확인하는 행위이다. 빨래를 비비며 삶의 고단함을 녹이고 빨래처럼 바람에 몸을 맡겨 자유롭고 싶다.

 

서울생활 5년차 여섯 번째 직장에 다니며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받고 끈적한 사장의 일상적 성추행과 손찌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여성 노동자, 처음 배운 말이 '때리지 마요', '돈 주세요'인 이주 노동자를 보면서도 한 없이 심각해 질 수 없는 것은 극 곳곳에 쉴 새 없이 배치된 웃음 때문이다.

 

하지만 처절한 삶의 무게와 웃음 사이에서 방황하던 관객들은 마흔 된 딸의 기저귀를 억척스럽게 빨며 "빨래는 (딸의 혹은 자신의)삶을 확인해주는 행위"라는 노래를 부르는 할머니 앞에서 참았던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불과 1미터 거리도 안 되는 무대와 객석. 시도 때도 없이 객석으로 넘어와 장난을 치고, 거침없이 술주정까지 해대는 배우들로 인해 관객은 이들의 엄마, 동생, 친구가 될 수밖에 없다.

 

극의 막바지 취객들에게 두들겨 맞은 솔롱고가 몽골로 추방될까봐, 급여를 받지 못할까봐 참았다는 그러다보니 사람인 것을 잊었다는 노래를 부르며 눈물 흘릴 때는 객석의 엄마, 동생, 친구들도 함께 울었다. 사람들은 생각하고 싶지 않겠지만 우리도 사람이라는 나영의 노래에도 마찬가지였다.

 

결론은 나영과 솔롱고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다는 것이다. 함께 빨래를 널며 '돈도 많이 벌고 집도 사고 아이도 낳자'는 행복한 다짐을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 좀처럼 벗어날 수 없다는 아침 신문의 기사가 생각났다. 예쁘게 포장하려 노력했지만 이들의 삶에 변화된 것은 없었다.

 

"극이 끝났으니 나가셔도 됩니다." 배우들의 커튼콜과 앵콜 무대가 끝나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60여명 관객들에게 극장 스텝들이 익숙한 듯 말했다.

 

극이 진행되는 150여분 동안 마음 편하게 울고 웃고, 극이 끝난 뒤에 남는 여운을 함께 나누고 싶다면 누군가와 함께 극장을 찾기를 권한다.

덧붙이는 말

알림 주간 <교육희망>과 전교조 문화국이 조합원들께 뮤지컬 <빨래>공연 티켓을 무료로 나누어 드립니다. 관람을 원하는 조합원은 전교조 문화국(02-2670-2453 담당:고진오 문화국장)으로 선착순 신청 바랍니다. 1인 2매, 관람가능 기간은 9월 17일부터 30일까지(월요일 공연 없음). <교육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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