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희망칼럼]'우리'라는 이름속에 감춰진 과잉 애국주의

- 2PM 재범의 경우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지난 9월 20일, 같은 지역을 연고로 하는 맨체스터 시티를 4-3으로 꺾었다. 맨유의 '사양'에도 불구하고 맨시티는 이 호화 군단을 '지역 라이벌'로 여겨왔는데, 그만 맨시티는 종료 직전 96분에 마이클 오언의 골로 허용하고 말았다. 맨유의 선수들과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숨막히는 접전을 승리로 장식하면서 기쁨에 넘치는 환호를 터트렸는데, 이로써 맨유 역시 맨시티를 사실상 지역 라이벌로 인정해왔음이 입증되었다.

 

그건 그렇고, 경기 종료 후 퍼거슨 감독은 "오늘 우리는 7-0으로 이길 수도 있었다. 최고의 더비(지역 라이벌 대항전)에서 우리가 이겼다. 우리의 진정한 힘을 보여줬다. 시끄럽게 하는 동네 이웃에게 우리의 진가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짤막한 인터뷰에서 퍼거슨 감독은 '우리'라는 단어를 네 번이나 사용했다.

 

'마이홈', '마이하우스', '마이파더'… 어릴 적에 영어를 배울 때 영어 선생님이 이런 단어를 나열하면서 개인주의가 만연한 서구에 비하여 '우리집', '우리아빠', '우리나라' 이렇게 호명하는 '우리'의 단결된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역설하신 적이 있다.

 

그런데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경우를 보면 '우리'를 강조하는 어법이 비단 우리만의 일은 아닌 듯싶다. 물론 승부를 다투는 스포츠나 전쟁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서로 힘을 모아 경쟁을 해야만 하는 단위에서는 '우리'라는 단어가 중요한 힘을 발휘할 것이고 그 점에서 피 말리는 접전에서 승리한 축구 감독이 '우리'라는 말을 여러 차례 썼다고 해서 그들이나 '우리'나 마음의 무늬는 엇비슷하다고 넘겨짚기에는 곤란하다.

 

아무래도 '우리'로 시작하는 어법의 일상화는 '우리'의 경우이지 바다 건너 서구의 일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이 '우리'의 강조가 언어 환경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한 시대의 집합적 정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이 '우리'라는 말은 대체로 남성적, 가부장적, 권위적 상황의 환기와 강조로 쓰인다. 드라마를 보면 중년 남자 배역들이 식사를 하거나 일을 결정하면서 다소 건들거리는 어투로 '우린 그런 거 안 먹습니다요', '우리 말이야, 그런 짓은 안 한다구' 식의 말을 종종 한다. '우린 말이야…' 하는 어법은 단순한 또래의식의 강조가 아니라 권위적 남성 문화의 한 단면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정치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정치인들만큼 '우리'를 흔하게 쓰는 집단은 따로 없다. 지난 1997년 대통령 선거 때 후보 간 텔레비전 토론이 처음으로 열렸는데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등 주요 후보들은 입을 열 때마다 '우리'를 꺼냈다. '우리나라'나 '우리당' 같은 말은 예사이고 심지어 이회창 당시 후보는 경쟁 상대에 대해서도 '우리, 김대중 후보의 의견을 보면…'하는 어법을 썼다. 단일한 목표를 향해 강고한 결속력을 추동해야 하는 정치인들의 무의식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그런데 바로 이 '우리'가 특정 국면에서 예민한 문제를 일으킨다. 인기 그룹 2PM의 리더 박재범과 관련된 일 역시 이런 맥락의 결과다. 미국에서 태어나 17년 동안이나 현지에서 성장하다가 18살 때 댄스그룹 멤버로 국내 활동을 시작한 그는, 그러니까 4년 전에 자신의 일기장이나 다름없는 미니 홈피에 '우리'의 심경을 건드리는 말을 몇 마디 한 것이 빌미가 되어 결국 소속 팀 탈퇴와 미국행이라는 결말에 이르고 말았다.

 

'우리'의 과잉된 애국주의가 4년 전 18살 때의 낙서를 증거로 삼아 이십대 초반의 청년을 태평양 건너편으로 추방시켜 버린 것이다. 당분간 그는 귀국하기도 어렵고 무대에 서기도 어려워 보인다. 해명의 기회도 주지 않고 이주와 직업의 권리까지 빼앗아버린 것이니 이 정도면 가히 명예 살인에 가깝다. 아무래도 우리는 '우리'를 너무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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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주의 , 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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