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11월 3일과 12일 광주에서 연이어 일어난 대규모 항일 학생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11월 3일 오전 광주고등보통학교학생들은 광주중학교 일본인 학생들과 시내에서 충돌한 데 이어 오후에는 가두로 진출, 시위투쟁에 들어갔다. 조선 학생에 대한 일본 군국주의의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며 학생들이 광주를 시작으로 저항에 나선 전국적인 대규모 학생저항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이를 기념하여 '학생의 날(학생독립운동기념일)'이 제정되었다. 오는 11월 3일은 광주에서 학생들의 저항운동이 일어난 지 80돌이 되는 날이다. 학생들의 대규모 저항운동이 일어난 지 80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암울했던 1929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학생들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억압은 여전하며, 교육 현실은 학생들을 차별과 경쟁의 한가운데로 몰아넣고 있다. 학생들의 권리와 정당한 주장이 어른들에게 외면당하는 세상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기를 바라며 <교육희망>은 80돌 학생의 날을 기념한다.
내게 지난 79회 학생의 날은 희망으로 시작해 좌절로 끝난 걸로 기억한다. 내가 총학생회 부회장으로 재임하고 있던 당시 우리 학교는 개교 이래 단 한 차례도 학생의 날 기념행사가 없었다.
실망스러웠던 과거를 청산하고 우리들 손으로 직접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학생의 날을 만들어 보겠다는 목표 아래 임원들과 함께 학생의 날을 알리는 대자보를 만들고 그 안에 과거 학생들의 요구사항과 현재 학생들의 요구 사항을 함께 넣었다. 과거의 여러 문제들이 8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은 점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학생의 날 기념 버튼을 주문하고 학교에 학생의 날 관련 행사를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였다. 심한 반대가 있을 것 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행사를 진행해도 좋다는 답변을 들었다. 주말 밤 잠을 물리면서까지 준비했던 행사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호응을 얻었다.
등교시간을 기해 대자보를 게시하고 학생의 날 기념 버튼과 함께 작은 간식들을 학우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교문에서 실시되는 아침 정문지도로 적발된 학우들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것은 잠시 뿐이었다.
행사로 인해 몸은 피곤했지만 첫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냈다는 기쁨과 함께 많은 학우들의 격려 속에 즐거운 마음으로 첫 수업을 청강하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수업을 듣던 중 생활(지도)체육부에서 호출이 왔다. 순간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날 것 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과목 담당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생활(지도)체육부로 들어가자마자 "나랑 한번 해보자는 거야?"라는 호통을 들었다.
문제는 다름 아닌 학생의 날 기념 버튼 이었다. 각 버튼에는 11월 3일 학생독립기념일이라는 내용 아래 '두발자유', '독도는 우리 땅', '입시지옥', '힘내라'를 비롯해 주입식 교육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문구들이 있었다.
"누구 마음대로 이런 것들을 나누어 주느냐", "네가 입시지옥을 겪어보기나 하고 이런 버튼 나누어 주는 것이냐", "승인받지 않은 버튼을 배부해 뭐하자는 것이냐", "너희 때문에 교장 선생님께서 아침부터 얼마나 심기가 불편하셨는지 아느냐, 무슨 시위하는 줄 알았다"
여러 선생님들께 이런저런 말씀을 1교시부터 4교시까지 들었다. 한 선생님께서는 이럴 시간에 영어단어나 하나 더 외우라고 말했다.
당시 학생들은 자치권과 동시에 식민 노예교육이 아닌 민족에게 맞는 교육, 또 학내의 집회·결사·언론·출판·시위의 자유, 그리고 직원회의에 학생 대표자 참석과 경찰의 교내 진입 반대를 요구했다.
하지만 80년이 지난 지금 단어들의 변화를 제외하면 달라진 부분을 찾을 수 없다. 내가 재학 중인 학교가 사학이기에 그런 것일까?
총학생회가 정당한 절차를 통해 학우들을 대변해 학교에 무엇인가 요구해도 교장 선생님의 방침과 맞지 않으면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그게 상식이라도 묵살되기 일쑤다.
학교 입맛에 맞지 않은 활동을 하면 다음 학기에는 어떠한 임원도 하기 힘들다. 더 올라가서 서울시 공정택 교육감은 당선무효형에 굴하지 않고 공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에게 영어몰입경쟁교육을 강요한다.
80년 전과 달라진 점은 일어가 영어로 바뀌었다는 것과 일제 강점은 끝났지만 이상한 시험 하나가 생겨났다는 것 그 뿐이지 않은가, 헌법으로 보장된 국민의 권리인 집회·출판·언론·시위의 자유도 교칙으로 인하여 제한을 받는다.
교내에서 허가받지 않은 모임을 가질 수 없다는 어느 한 공립학교, 학교 내에서 부당함에 항의하는 시위를 가진 다음 날 학생임원들을 모아놓고 집시법 위반이라고 으름장을 놓는 어느 한 사립학교.
재미있는 사실은 그 학교의 규정들은 교육청에서 내려준 모범규정을 사용하는 것 이라고 한다. 아주 이례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생회장의 운영위원회 참여는 고사하고 참관도 용인하지 않는다.
촛불집회로 수입 쇠고기 재협상을 실시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식품위생조건을 만들어 냈지만, 국민여론을 귀 담아 듣지 않던 정부에 제동을 걸어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정작 그것들을 이끌어 낸 주역인 우리 학생들은 수업 도중 학교까지 찾아온 경찰의 조사에 응해야 했고 크고 작은 보복들에 시달리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20년이 지나 학생의 날 100주기가 되더라도 1929년의 외침은 그대로 일 것이다. 경쟁만을 추구하는 기형적 사회분위기는 이 문제의 당사자인 학생들이 도저히 상황을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없도록 만들어가고 있다. 더군다나 교육당국은 이 상황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들을 대화의 상대로 보지 않는다.
이제는 이러한 태도에 변화를 주었으면 한다. 교육 3주체 중에 가장 중요한 가장 중요한 주체는 학생이라고 믿는다. 학생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존중해 주었으면 한다. 훈육하고 통제해야만 하는 대상이 아닌, 공부하는 기계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주었으면 한다.
학생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인권을 존중받지 못하는 분위기라서 당장에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번 학생의 날에는 성적과 빈부에 관계없이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체벌이 무서워 학교 가는 것이 두려운, 학교 수업이 끝나도 강제 보충과 야간학습 때문에 즐겁지 않은, 자정은 고사하고 새벽까지 이어지는 사교육 때문에 잠 못 자는 그런 학생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욕심이라면 실망과 함께 학교를 그만두는, 힘에 겨워 삶을 포기하는 학생이 없었으면 한다.
79회 학생의 날에서 1년이 지난 80회 학생의 날, 올해 나의 학생의 날은 어떨까? 학교의 제지로 인해 나는 더 이상 학생회 임원이 아니다. 그러나 새로 구성된 학생회가 또 다시 학생의 날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또 다시 버튼을 나누어 줄 것이라고 한다.
지난 6월 학교로부터 피선거권을 박탈당해 학우들과 함께 교내에서 촛불을 들었던 뒤로 집시법 위반이라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데 있어 부족함이 있었다고 인정하기도 했던 학교.
그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아마 그 반응에 따라 더 큰 실망을 갖게 될 수도, 작년의 실망이 덜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더 이상 실망하는 사람이 없는 날을 감히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