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8]어제 하루

드디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일제고사가 치러졌다. 고 1,2,3과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해서이다. 이름도 지난해에는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시험'이었다. 올해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이다. 명칭에서부터 틀이 더 공고해졌음을 느낀다. '전국'보다는 '국가'라는 말에 무게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무리들의 입에 재갈을 콱 물리고 싶어 하는 국가 차원의 지엄한 사고가 엿보인다. 그러나 그래봤자 일제고사다. 성적에 따라 줄 세우기, 그에 따른 우민화 교육. 그래, 우민화 교육이다. 나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의 본질은 우민화 교육이라고 본다. 오로지 '학력 향상' 하나에 모든 것을 몰아부쳐 일체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도록 만드는 게 우민화 교육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 이상의 내용을 끄집어낼 수 없는 것이 바로 일제고사다. '국가'라는 말에서는 파쇼적 기미마저 엿보인다.

 

과연 국가 수준답게 시험이 치러졌다. 교감과 학교 직원들이 교육청에서 문제지를 받아왔고, 시험 당일 평가 업무를 맡은 교사들은 아침 6시까지 출근하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감독교사는 미리 공개되어서는 안 되며, 한 교실에 두 명, 복도에 한 명씩 배치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시험 전날 전교사와 해당 학년을 대상으로 일제히 시험에 대한 연수도 있었다. 가히 수능 시험에 버금가는 삼엄함이었다.

 

맑았던 날이 차츰 흐려졌다. 천둥이 치고 질금질금 비도 내렸다. 가을비였다. 어깨를 웅크리고 시험지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아이들의 교실 유리창에 빗방울이 사선을 그으며 떨어졌다. 빗방울마다 '비애 비애' 하는 것 같았다. 퇴근 후 중앙시장 순대국집에 갔다. A와 함께였다. 다른 일로 만나자는 선약이 있었다. 막걸리 잔이 오갔다.

 

A도 교사였다. 그도 일제교사 시험 감독을 했다고 했다. 그가 새우젓에 순대를 찍으며 말했다.

 

"시험 감독하는데, 감독 교사들한테 교감이 문자를 한 거예요. 자는 애들 모두 깨우라고. 그 문자를 받고 같이 감독하던 선생이 엎드려 있는 승연이 등짝을 손바닥으로 내리친 거예요. 얼마나 세게 쳤는지 정말 교실이 쾅하고 울렸다니까요. 그러니까 애가 부스스 일어나 넋이 나간 얼굴로 문제 푸는 시늉을 하는데, 그 순간 눈물이 핑 돌더라구요."

 

그러면서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선생이 전교조 선생이에요. 어떻게 전교조 한다는 사람이 그럴 수 있어요?"

 

그가 숨을 몰아쉬며 술잔을 들이켰다. 그는 전교조 교사들이 학교에서 더 문제가 될 때가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승연이를 보니까 그 큰 덩치가 책상을 꽉 끌어안고 고개를 숙인 채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더라고요. 얼마나 놀랐을까 하는 생각에 제가 가서 말없이 그 아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어요. 그러면서 보니까 이 녀석이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시험지에 그림을 그리고 있더라고요."

 

"그림? 어떤 그림인데?"

 

내 말에 그가 가방을 열어 시험지를 꺼냈다.

 

"시험 끝나고 나서, 이 그림 나 달라고 해도 안 주길래 겨우 얻어왔어요."

 

그림을 보는 순간 불콰하던 술기운이 싹 가셨다. 정수리에 대침이 꽂힌 것 같은 전율마저 일었다. 그림 속 벌레들이 튀어나올 정도로 선명하게 보이고, 잠시 후 이것들의 발이 꼼지락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수한 벌레들이었다. 똥무데기 주변에 움씰거리는 벌레들. 날아오르는 파리 떼. 어느 문학보다 거대한 상징이었다. 어느 풍자보다 날카로운 일침이었다.

 

"오늘 술 그만 먹고, 집에 가서 이 그림 스캔해서 나한테 좀 보내줘."

 

우린 자릴 털고 일어섰다. 사그라지는 하루 문턱에 비는 여전히 내렸다. 나는 내일 새벽 일어나 쓸 글의 얼개를 생각하며 시내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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