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희망칼럼]그래서, 슬펐다

생각해 보니, 그때가 좋았다. 페스탈로치·일리치·간디·함석헌 이런 거인들의 글을 복사해서 친구들과 나눠 읽고, 토론하고, 교육 관련 강좌 쫓아다니며 선생이 되고 싶어 마음 들뜨던 예비교사 시절 말이다. 그때 읽었던 글들을 생각하고, 그때 내게 던진 다짐의 언어들을 지금 떠올리게 되노라면 손발이 다 오그라들 지경이다.

 

그때 벌인 토론들의 결론은 대개 '공교육 현장은 우리가 갈 곳이 못 된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나 또한 '새로운 학교'를 꿈꾸었지만, 모임을 끝내고 뒤풀이를 하러 시내로 나오면 그 결심은 금세 풀이 죽곤 했다. 버스 안에서, 시내 곳곳에서, 교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재잘되는 모습에 금세 마음이 설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교육사랑방'이라는 멋진 모임의 말석에서 이런저런 심부름도 했는데, 거기 출석하는 선생님들은 나보다 더 공교육에 대해서 비판적이었지만,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는 자기도 모르게 행복감으로 얼굴들이 붉어지곤 했다. 이런 것들이 나를 공교육으로 이끌어주었다.

 

그런데, 내가 시절을 잘못 타고 난 것일까. 교사가 되고 지난 10년 동안 나는 단 1년도, 아니 단 한 학기도 책 읽고, 토론하고, 아이들 이야기 나누며 여유있게 시간을 보낸 기억이 없다. 늘 쫓기면서 허둥지둥 살았다. 무언가 자꾸 무너져내리는 느낌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이명박 집권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자율형 사립고, 고교선택제, 입학사정관제, 미래형교육과정, 그리고 일제고사와 성적공시. 이 모두는 우리 교육을,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을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지옥의 수렁으로 밀어 넣을 폭주기관차들이 아닌가.

 

올 여름, 나는 틈날 때마다 일제고사에 관해 공부했다. 작년 겨울, 14명의 선생님이 해직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일제고사가 우리 교육 현장을 불과 반년 만에 거의 완전히 초토화시키는 것을 보고서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달 전부터 경남지부 일꾼들과 함께 지역을 돌아다니며 일제고사에 관해 강의했다. 모두들 많이 지쳐있었고, 또 두려워하고 있었다. 일제고사 바로 전날, 남해 강의를 마치며 돌아오다가 지부장님이 전어회를 사주셨다. 소줏잔을 기울이면서 지부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권 선생님이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그래도 '무슨 희망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면서….

 

희망이라. 솔직히 말하면, 공교육 학교로 들어오면서 나는 별스런 희망 같은 건 품지 않았다. 그저, 아이들과 놀고 싶었다. 법이 정한 만큼만 수업하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학교. 때리지 않고, 차별하지 않는 학교를 꿈꾸었을 뿐이었다. 학교에서 농사짓는 법을 가르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욕심을 품어보기는 했지만. 그러나, 이 모든 평범한 희망도 완전히 불가능한 꿈이라는 것을 느낀다. 이명박 정부 5년 뒤에 이 교육 현장에서 과연 누가 제정신으로 선생 노릇을 할 수 있을까.

 

지난 13일, 나는 하루 종일 하늘을 바라보았다. 손톱으로 꾹하고 누르면 파란 물감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면서 지난 두어 달 일제고사를 향해 달려온 시간을 생각했다. 모든 것이 너무 여전한데, 하늘이 너무 파랗고 맑았다. 공교육 학교로 들어온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고, 그래서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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