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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은 아이들 용돈을 주는 날이다. 그러나 정신없는 엄마는 용돈 주는 날을 제대로 지켜 본 적이 없다. 며칠 전엔 딸아이도 화가 났던지 작은 벽걸이용 칠판에 이렇게 써서 퇴근해 현관을 들어서는 내 눈앞에 들이 밀었다.
"밀린 용돈 당장 지급하라!" "딸내미 용돈 안주니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단결투쟁! 전국의 딸내미들이여 제 때에 용돈받자" 미안한 마음과 아이의 행동이 깜찍하기도 해서 세 번의 설거지 값 3000원과 용돈을 한방에 줘버렸다.
그러나 그 다음에 그냥 농담처럼 한마디 한 것이 실수였다. "엄마가 해임됐는데 용돈 좀 깎자" 그러자 옆에 있는 작은아이까지 눈이 동그래지며 "그럼 이제 선생님 아닌 거야?" 아이들은 서로 멍하니 바라보며 곧 울 듯 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를 자리에 앉히고 순식간에 몇 가지를 따지듯 물었다. 사무실에 나가는 거 끝나도 학교에 다시 갈수 없는 거냐? 그때 다른 사람들도 시국선언 많이 했는데 왜 그걸 갖고 선생님을 못하게 하느냐? 할머니께도 알려야 하는 거 아니냐? 심지어 월급은 어떻게 하느냐까지.
아이들의 그런 반응은 사실 충격이었다. 참으로 원초적이고 직설적으로 엄마의 해임을 받아들였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직장은 용돈이었고 매일 먹는 밥이었고 따뜻한 잠자리였고 그리고 자존심이었으며 그 모든 걸 통틀어 바로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그에 비해 나의 해임은 나에게 다소 복잡했다. 책상위에 던져진 누런 봉투가 해임통보서임을 알면서도 바로 뜯어보지 못했다.
우습게도 너무 바빠서였다. 내가 단장인 제2참교육운동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가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고, 지부 참실대회를 방문하는 일도 만만한 일정은 아니었다.
조합비 원천징수가 불가능해져 조합원들에게 동의서를 받는 일은 발등에 떨어진 핵폭탄이었다. 나의 해임을 문제로 받아들이기엔 진행되는 상황들이 너무 복잡했고 절박했다. 시국선언으로 두 번씩의 경찰·검찰조사를 받았지만 다른 나라의 언어를 듣는 기분이었다.
나의 징계사유는 국가공무원법의 성실의무와·복종의 의무, 품위유지의 의무, 집단행위의 금지 그리고 교원노조법의 정치활동의 금지 위반으로 되어 있다. 그동안 조합원의 일상적인 노조활동 대부분을 이 법들로 징계를 해왔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16개시도 지부장들과 본부·지부 전임자들의 이번 징계는 다소 다른 의미가 있다. 전임자라 함은 합법적인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해 학교업무가 아닌 노조활동을 전담할 수 있도록 근무지를 옮겨 일할 수 있도록 정부가 허가한 사람들이다. 노동조합의 일상 활동인 선언을 기획·결의하고, 서명참여를 유도하고 기자회견, 집회 등을 조직하는 일은 전임자들의 고유업무라는 건 상식이다. 그런데 노조활동을 위해 파견된 전임자들의 행위를 노조법이 아닌 국가공무원법을 적용하여 징계를 결정한 것이다. 노동조합을 부정하고 탄압하는 정도가 교묘하고 치졸하기까지 하다.
많은 분들이 언론에 나온 해임기사를 보고 위로·격려전화를 해주셨다. 그 안타까운 말씀들과 다르게 내가 너무 담담한 것이 이상하기도 했다. 사실 너무 어이없는 일을 당하면 한동안 그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기도 하다.
해임은 여전히 나의 일이 아니며 나의 일로 받아들이기 전에 내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게 될 것임을 나는 믿는다.
이 모든 불편부당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전국의 모든 조합원 선생님이 함께 나서 주시기를 부탁한다. 조합비 동의서 작성은 물론 말동무하는 옆 자리 선생님까지도 이번 기회에 조합원의 이름을 갖도록 말이다. 그래서 서로 다리가 되고 등받이가 되어 이 무지막지한 시절을 함께 헤쳐나가자고.… 다음 주엔 엄마의 해임을 엄마보다 더 걱정하는 아이들을 위해 용돈이라도 조금 올려줘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