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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서 쓰는 법 |
친절한 정부가 내 월급을 남들이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도록 공무원보수규정까지 손질하셨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내년부턴 상조회에서 상조회비를 걷거나, 학교에서 부장 회비 등을 걷을 땐 1년 단위로 동의서를 받아야만 한다. 물론 전교조 조합비와 교총의 회비도 마찬가지다.
우리 살림살이가 어려워진 이유를 정부는 아마도 여기저기 보수를 뜯겨서라고 판단한 것 같다. 이렇게 살가운 정부의 보호 아래 공무원으로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격스럽다.
그런데 한편으론 걱정이 된다. 전교조와 함께 나란히 교육계의 양대 산맥으로 우뚝 자리 잡은 교총은 이번 보수규정 손질로 회원수에 타격을 입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말이다.
우리 전교조야 태생부터 탄압으로 시작해서 아직도 끊임없는 와해 시도로부터 단련이 될 만큼 됐으니 이 정도의 조치로 조합원 수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교총은 이번 정부의 조치가 분명 시련일 것이다.
나는 우리 학교 분회장이다. 나이는 40대, 중학생 딸이 있어 바깥 활동은 잘 못하고 그냥 분회장 정도의 일만 한다. 내년 1월부터는 조합비 원천 징수 동의서를 조합원 개개인에게 받아야 월급에서 원천 징수가 된다는 소식을 듣고 내일 당장 분회 총회를 잡아놓았다.
개인에게 돌아다니며 설명하려니 입도 아프고 다리도 아픈데 5층까지 오르내리며 동의서를 어찌 받겠나 싶어 그냥 분회 총회에서 한꺼번에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고마운 정부다. 올해 일이 바쁘고 마음이 느슨해져서 분회 총회를 몇 번 하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학교 일이 많아져 근무 시간이 길어지는데도 같은 학교에 있는 교사들과 소통이 힘들다. 그러다 보니 같은 조합원인데도 한 교무실에서 말 한 번 나누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회식만 해도 그렇다. 3년 전만 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분회 회식을 했는데 올해는 딱 2번 밖에 하지 못 했다. 다 분회장의 게으름 탓이다. 이 게으름을 벗어나라고 정부는 동의서를 받으라고 했나 보다. 그러면 적어도 분회 총회를 1년에 한 번은 꼭 할 거니까 말이다.
오호~ 그러고 보니, 이 동의서는 전교조 가입을 망설이는 분들에게 특효를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생님들 중에는 전교조에 가입하라고 하면 잠시 망설이는 분들이 계신다. 특히 신규 선생님들의 경우 "한 3년은 지켜보라고 하시더라구요." 이런 대답을 잘 한다.
그래서 내가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하고 물으면, 친절한 교육청 장학사님들이 연수 시간에 "학교에 가면 전교조도 있고, 교총도 있다. 그런데 즉시 가입을 하는 건 너무 성급하다.
쭉~ 지켜보다 한 3년 후에 마음에 드는 단체에 가입을 해라. 그게 현명한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러게 늘 지나친 친절이 문제다. 한 3년 지켜보다 보면 그냥 그 자리에서 푹 썩는다. 3년 동안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다 보면 전교조고 교총이고 싹 다 잊는다.
무엇 때문에 바쁜지, 왜 바빠야 하는지 생각할 겨를 없이 컴퓨터만 치고 있다. 아이들이 곁에 와서 말을 걸어도, 도와 달라고 해도, 눈은 모니터를 응시하고 손은 끊임없이 자판을 치면서 아이와 눈 한 번 맞추지 못하면서 "내가 좀 바쁜데, 그래 무슨 일이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망설이다 "아니예요. 그냥 갈래요." 하고 돌아간다.
그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며 '자식, 싱겁긴' 이렇게 생각하는 선생님들 많다. 내가 만일 이렇다면, 반쯤 썩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선생님들한테 내가 깜찍하게 웃으며 전교조 조합원 가입 원서를 내밀면, 그 분들은 한결같이 "좀 더 지켜보려구요"라고 배시시 웃으면 답한다. 하하하.
바로 이럴 때, 이 좋은 제도 덕에 나는 앞으로 이렇게 말하면 된다. "일단 일 년만 해 보세요. 그러고 나서 괜찮으면 계속 하시구요, 아니면 내년에 동의서 내지 않으시면 되죠." 아~ 왜 진작 이런 좋은 제도를 정부는 만들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이렇게 규정을 손질해 주니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지금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일단 한 번 써봐. 일 년만 해보라니까. 더도 말고 딱 일 년만. 괜찮으면 쭉 가는 거고. 아니면 내년에 동의서 안 쓰면 그만이야" 이렇게 동의서 받고, 같이 가는 거다. 함께 머리 맞대고 고민하고 책 읽고 이야기 나누다 보면 다시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그때 그 시절의 첫마음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아, 고민이다. 우리 학교는 교총 분회장도 없는데 그냥 아무나 교총 회원 중에 한 사람이 공문만 철하던데. 이렇게 회비 징수 방식이 바뀌면 우리의 이웃 교총은 동의서 한 장도 못 받을 텐데.
회비 징수가 되지 않으면 교총이 망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전교조 분회장인 내가 교총 회비 징수 동의서를 받을 수도 없고. 아, 걱정된다. 교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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