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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가 기승이다. 따뜻한 봄날에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는 한바탕 시위라지만 많은 눈까지 내리니 꽃을 탄압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더욱 든다. '산수유'. 3월 중순부터 꽃망울을 틔워 봄이 왔음을 먼저 알린다. 그러니 추위 입장에서는 산수유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겠다.
산수유가 모여 있는 군락지인 전남 구례군 산동면으로 차를 몰았다. 이 날(3월16일)도 추위는 매서웠다. 남원과 구례를 잇는 19번 국도 밤재터널을 빠져나오니 산동에 도착했다는 걸 바로 알았다. 창 너머 마을과 나지막한 산 곳곳에 보이는 화사한 노란색 때문이다. 산수유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대표적인 나무꽃이다. 지난해 가을에 생긴 꽃눈이 겨울을 견디고 따뜻한 봄에 피니 잎보다 먼저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남원 쪽에서 산동면 들머리에 위치한 계척마을에 있는 '산수유 시목(山茱萸 始木)'을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꽃망울과 생명을 틔우는 잎눈, 지난해 생을 마감한 열매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수유 시목은 우리나라 산수유들의 시조로 '할머니 나무'라 불린다. 1000년 전 중국 산동성의 처녀가 구례 지리산 자락으로 시집을 오면서 이 나무를 가져와 처음으로 심었다고 알려져 있다. 산동면이라는 동네 이름도 여기에서 따왔다고 한다. 오래된 세월을 말하듯 시목은 여러 곳에 치료를 받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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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척마을 입구에 핀 매화 [출처:교육희망] |
36개 마을이 뭉쳐져 이룬 산동면 일대는 전체가 산수유 마을로 불릴 정도로 눈이 가는 곳에 있는 나무는 모두 산수유다. 산동면사무소에 따르면 100.27㎢ 면적에 대략 30만 그루의 산수유가 자라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이 최소 50년 이상 된 고목들이다. 언뜻 봐도 주름이 깊게 배인 듯 하고 사람이면 각질이라 할 수 있는 수피가 상당히 많이 떨어져 나갔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무의 세포가 팽창한 탓이다.
산수유는 자신의 생명력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가지 한 쪽이 떨어져 썩는 곳에 초록색 곰팡이가 피어있는 부위는 스스로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껍질로 그 곳을 덮으려는 움직임이 진행 중이었다. 사람도 피부에 상처가 나면 주변의 살들이 힘을 합쳐 아물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공영순 숲해설가는 "지금은 최소한의 양분만 가지에서 사용하고 나머지 모든 힘은 꽃을 피우는 데 사용하는 시기"라며 "지금과 같은 때에 청진기를 나무에 대면 물을 끌어올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는 설명을 보탠다.
가장 많이 산수유가 심어져 있는 구례군 산동면 상위마을로 들어서는 길 이름은 아예 '산수유 꽃길로'다. 상위마을 높은 곳에 올라서니 산동면이 한 눈에 들어온다.
소설가 김훈이 수필집 <자전거여행>에서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퍼져 있다. …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라고 묘사한 이유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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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마을 계곡의 버들강아지[출처:교육희망] |
천천히 걸어 내려오면서 어린 잎은 나물로 무쳐 먹거나 쌈을 싸 먹고 뿌리는 약재로 쓰이는 소루쟁이와 매화, 버들강아지, 계곡 물가에서는 수질을 정화시켜 미생물이 살 수 있게 환경을 만드는 달뿌리풀 등 다양한 야생화와 들풀은 덤으로 즐겼다.
4월10일경까지 구례에서는 산수유를 만날 수 있다.
도움말 공영순 숲해설가
사진 유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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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척마을에 있는 저수지 '계척제'둑에서 봄볕을 즐기는 견공들[출처:교육희망] |




계척마을 입구에 핀 매화 [출처:교육희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