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아이들 포기해야 승진할 수 있어요"

매관매직으로 대표되는 교육비리 사례가 연일 폭로되면서 교육계의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뒤틀린 승진 구조에서 '교장'의 꿈을 쫓는 교사와 그렇지 않은 교사는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부 출세를 쫓는 자의 부도덕이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더 많은 교사들이 여전히 새 학기 준비와 아이들을 향한 치열한 고민 속에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모든 아이를 안아주는 김 교사
 
올해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은 김해경 교사(서울 공덕초)는 아침을 분주하게 시작한다. 교실에 가장 먼저 도착해 등교하는 꼬마들을 맞이한다. 악수하기, 눈 맞추기를 한 뒤 짧은 대화도 이어간다.
 
급식 시간에는 아이들과 밥을 먹으면서 편식 습관을 바로잡아주기도 한다. 4시간 수업은 김 교사가 놀이와 교과를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를 고민해 재구성한 내용으로 채워지고, 그날 배움이 부족했던 아이는 방과 한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몰랐던 내용을 익힌다. 가르치는 아이도 배우는 아이도 열심인 이 시간은 채 10분을 넘지 않지만 매일 계속된다.
 
 
학교 폭력 해결에 올인한 박 교사
 
학교폭력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온 박종철 교사(경기 부명정보산업고)는 올해 처음 담임을 맡지 않고 학교폭력 관련 업무를 전담하기로 했다.
 
업무를 맡은 그의 첫 숙제는 학교폭력 예방교육이다. 문건 한 장으로 대체되는 예방 교육이 아닌 학교 폭력 징후 발견 시 대처 방안,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해 담임이 할 수 있는 일 등 구체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짜서 동 학년 협의회에 제안할 계획이다.
 
"정부가 학교폭력 막겠다고 CCTV 늘리고, 문자 메시지로 귀가 정보 보내는데 예산을 쓰는 것을 보면 답답하죠.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 학교에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올 한해 교내 학교폭력을 줄이기 위해 담당자가 할 수 있는 일과 한계를 찾고 학급 담임 지원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했다.
 
 
교육활동과 함께 떠올릴 수 없는 승진
 
"그렇게 지내면 승진할 수 있나요?" 기자의 물음에 자신의 근황을 열심히 설명하던 교사들이 멈칫했다.
 
"당연히 승진에는 도움이 안 된다"며 머쓱한 웃음을 짓던 박종철 교사는 "학교폭력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많지 않으니 이렇게 열심히 해서 전문가가 되면 나중에 교원평가가 전면화 되더라도 교단에서 퇴출되는 일은 없겠다는 생각은 잠시 해봤습니다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 교사의 새로운 학교, 새로운 시작
 
지난 해까지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던 김명선 교사(경기 봉일천중)는 올해 처음 중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고교 담임 시절에는 매일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 남아 집단 상담을 하거나 다음 날 수업을 준비했다. 학급 자치 강화를 위해 학급회의를 일상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였다.
 
하지만 중학교는 고등학교와 다른 점이 많아 열심히 적응 중이라고 했다. 퇴근 시간은 빨라졌지만 일과 시간은 빡빡해졌다. 시간을 쪼개 방과 후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들과 상담할 계획을 세우고 학급 자치의 방향을 어떻게 잡을지 고민하는 김 교사의 마음은 함께 바빠진다.
 
 
일제고사 대안 찾는 이 교사
 
서울 신현초 3학년 담임인 이영주 교사 역시 빈 교실에 도착해 조명을 켜고 환기를 시키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아이들은 교실에 도착한 순서대로 매일 궁금한 내용을 찾아 공책 한 면을 채워오는 '내 공부'숙제를 담임에게 제출한다. 학습은 아이의 호기심에서 출발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이 과제물에 아이들의 호응도는 높은 편이다. 담임과 아이가 숙제 검사를 빙자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다른 아이들은 한바탕 놀이를 즐긴다. 아침 독서 시간에 아이들은 120권 상당의 학급 문고를 20분씩 읽는다.
 
일제고사는 아이들의 성장발달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교육 방식이라 믿기에 시험 없이 학업 성취를 올리는 것이 최근의 화두라는 그는 "학습 효과를 끌어올리기 위해 놀이, 체험학습 등 시험지를 제외한 모든 방식을 동원하고 있다"고 했다. 교재 연구 시간은 길어졌고 7시까지 교실에 있는 날도 많아졌다.
 
 
교육 활동 포기 종용하는 승진 제도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면서 연구학교, 선도학교 등의 업무를 맡고 보고서까지 쓰는 건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결국 아이를 내팽개쳐야 승진을 할 수 있습니다. 소중한 아이들까지 포기하며 선택한 길인데 그분들이 무슨 일인들 못할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서울시교육청 인사 비리에 대한 생각을 묻자 "놀랄 것도 없다"는 반응을 보인 이영주 교사의 말이다.
 
김명선 교사 역시 "교육에 대해 고민보다 보고서와 연구 실적만 평가하는 지금의 승진 구조는 경쟁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경쟁만 강조하는 분위기가 학교 전반에 걸쳐 확산되니 협동과 공동체성에 기반을 둔 학교 분위기 자체가 사라지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학교'라는 공간에 함께 있지만 교감-교장으로 이어지는 승진의 길이 아닌, 아이들을 택한 것이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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